대법 "종로 국유지 위 공영아파트 소유자 토지 사용료 안 내도 돼"

최석진 2022. 12. 2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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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공사)가 1960년대에 국유지 위에 신축된 공영 아파트의 소유자들을 상대로 토지 사용료를 받겠다며 소송을 냈다가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공사가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아파트의 현재 소유자들과 과거 소유자들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공사는 61명의 피고를 상대로 아파트 보유기간에 따라 적게는 66만여원부터 많게는 1430만여원까지 총 7억여원의 부당이득금과 이에 대한 이자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앞서 1심과 2심은 공사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에서 결론이 뒤집혔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부당이득에 대한 증명책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서울시는 종로구에 있는 국유지 3274㎡(약 990평)의 사용 허가를 받은 뒤 공영 아파트를 신축해 1962년 분양했다. 아파트 수분양자들에 대한 등기는 1973년에 이뤄졌는데, 전유부분인 건물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만 이뤄졌을 뿐 애초 분양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토지에 대해서는 지분이전 등기가 경료되거나 별도의 사용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

이 사건 토지는 원래 행정재산이었는데 1989년 7월 용도폐지되면서 관리청이 내무부에서 재무부로 변경됐다가 다시 기획재정부로 변경됐다.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국가 소유인 이 사건 아파트 대지에 대한 관리·처분 권한을 위탁받은 공사는 2010년 아파트 수분양자와 이들로부터 아파트를 양수한 사람들을 상대로 '토지를 점유권원 없이 사용했다'며 변상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아파트 소유자들이 낸 변상금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2012년 최종 패소했다.

법원은 서울시가 국유지인 이 사건 토지 위에 이 사건 아파트를 지어 수분양자들에게 분양함으로써 수분양자 등에게 이 사건 토지의 점유 또는 사용·수익을 묵시적으로 승낙했고, 용도 폐지 이후로도 국가가 수분양자 등에게 이 사건 토지의 점유·사용을 묵시적으로 허락했다고 판단했다.

공사는 2018년 다시 부당이득금반환청구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에서는 앞선 행정소송 결과와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1심 재판부는 "피고들은 이 사건 아파트 중 각 전유부분만을 분양받거나 매수했을 뿐이므로, 피고들에게 이 사건 토지를 무상으로 점유·사용할 권한이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들은 원고에게 이 사건 토지의 사용료 상당의 손해를 입게 하고 동액 상당의 이익을 보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들은 원고에게 이 사건 토지의 사용료 상당의 부당이득금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공사의 청구를 모두 인용했다.

재판에서 피고들은 ▲분양계약서상의 분양대금과 매도증서상의 매도대금 사이의 차액을 이 사건 토지의 분양대금 또는 그 사용료로 볼 수 있고 ▲아파트 신축·분양 사업주체인 서울시는 국가로부터 아파트 신축을 위한 택지조성권을 부여받으면서 아파트 수분양자들의 토지에 대한 무상 점유·사용권을 포함해 이 사건 토지를 불하 또는 임대받았을 것으로 보이고 ▲'을(수분양자)은 주택 분양금을 전액 완납할 때까지는 타인에게 그 주택을 양도할 수 없다'는 분양계약서 내용을 볼 때 이 사건 아파트 수분양자들 또는 매수인들에게는 토지에 대한 무상 점유·사용권이 인정될 수 있고 ▲이 사건 아파트 수분양자들 또는 매수인들은 그동안 국가로부터 토지사용료나 변상금을 부과·징수당한 적이 없는데, 이는 토지에 대한 무상 점유·사용을 묵시적으로 승낙받았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 법원의 결론도 같았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부당이득반환청구 사건에서의 입증책임에 대해 상세히 판시했다.

재판부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 발생하는 경우는 급부부당이득과 침해부당이득 등 두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이번 사건처럼 타인의 재산권 등을 침해해 이익을 얻었음을 이유로 부당이득의 반환을 구하는 침해부당이득 유형에서는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상대방(이번 사건에서는 피고 아파트 소유자들)이 그 이익을 보유할 정당한 권원이 있다는 점을 증명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들이 토지를 무상으로 점유·사용할 정당한 권원을 갖고 있다는 점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원심은 피고들은 전유부분(건물)만을 분양받거나 매수했을 뿐 이 사건 토지를 매수하거나 임차한 것이 아니므로 이 사건 토지를 점유·사용할 권원이 없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였고, 이 사건 토지를 무상으로 점유·사용할 권원을 부여받았다는 피고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그러나 원심의 판단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아파트는 서울시가 무주택인 저소득 시민에게 공영주택을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함으로써 국민의 주거생활의 안정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기여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국유지인 이 사건 토지 위에 신축해 분양한 것"이라며 "국가는 이를 위해 서울시에 국유지인 이 사건 토지에 관한 사용·수익을 허가했으므로 서울시가 이 사건 아파트를 신축해 최초 수분양자들에게 분양했을 때 수분양자들이 이 사건 토지를 점유하고 사용·수익하는 것까지 승낙했고, 그러한 승낙의 효력은 최초 수분양자들로부터 이 사건 아파트의 전유부분을 양수한 사람에게까지 미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다면 이 사건 아파트의 수분양자 등인 피고들은 이 사건 토지를 정당한 권원에 의해 점유하고 있어 원고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또 재판부는 "사정이 이러하다면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아파트의 분양 경위, 관련 법령의 제정 목적과 입법 취지 및 이 사건 아파트의 분양을 전후로 해 국가와 서울시가 취한 태도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해 국가가 이 사건 아파트의 수분양자 등에게 이 사건 토지를 무상으로 사용·수익할 것을 승낙한 사실이 있는지, 그러한 사실이 있다면 사용·수익의 효력이 원심 변론종결일 현재까지 유지되는지 등을 심리해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의 인정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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