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억울하다? 대놓고 '술 권하는' 드라마와 광고들

신은진 기자 2022. 12.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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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담배 모두 1급 발암 물질… "술 방송 규제" 국회서 입법 논의
술과 담배는 모두 WHO 지정 1급 발암물질이나, 우리나라는 술 관련 규제 강도가 낮다. /하이트진로, tvN, 오비맥주 제공
금연을 권하는 광고는 수없이 많다.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 주위만 둘러봐도 금연을 응원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술은 다르다. 연말연시 금주 선언은 눈총을 받는다. 술은 인기 연예인이 광고하고, 술을 많이 혹은 맛있게 먹는 방법을 공유하는 음주 권장 콘텐츠가 넘친다. 친근한 캐릭터나 식품 브랜드와 협업한 신상품도 매일 쏟아진다. 술은 권장할만한 식품인 걸까, 아니면 담배가 억울한 규제를 받고 있는 걸까. 최근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개최한 음주폐해예방정책 국회 토론회에 모인 전문가들은 '술 권하는 사회'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같은 1급 발암물질, 취급은 천차만별 술과 담배
술과 담배는 모두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그래서 담배는 현행법에 따라 관련된 모든 광고가 강력한 규제를 받는다. 담배 광고의 경우, 국민건강증진법과 담배사업법 등에 따라 직·간접적으로 흡연을 권장 또는 유도가 불가능하다. 담배 광고에는 여성이나 청소년이 나와서도 안 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출판물과 행사에선 광고 자체가 불가능하다. 광고를 하더라도 '라이트(light)', '연한', '마일드(mild)', '순(純)' 등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나 위험을 가볍게 여겨, 담배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할 우려가 있는 모든 표현은 사용할 수 없다.

흡연이나 음주를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않아야 한다는 방송심의 규정에 따라, 흡연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거나 담배를 물고 있더라도 흡연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술은 다르다. 담배와 같은 방송심의규정이 적용되고,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음주행위 미화 표현 금지, 직·간접적 음주 권장 또는 유도 금지 등의 광고 기준이 있으나 음주 장면은 여과 없이 노출되고, 음주가 주제인 방송 프로그램이 다수 존재한다.

임산부나 미성년자의 알코올 17도 이상의 주류 방송광고 금지 등의 주류 광고 기준이 있긴 하나, 아동청소년에도 친숙하게 느끼는 식품, 생필품, 게임 등과 협업한 제품이 끊임없이 나온다. 소주 브랜드인 '진로'의 '두꺼비 젤리', 밀가루 브랜드 '곰표' 이미지를 사용한 '곰표 맥주' 등은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술 광고 규제는 해외 여러 국가와 비교해도 매우 관대한 편이다. 삼육대 보건관리학과 손애리 교수에 따르면, 해외에서는 광고를 통해 술이 긍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과 EU, 영국 등은 주류 광고에서 청소년에게 영향력 있는 모델을 활용하는 일 자체를 금지한다. 특히 영국은 18세 미만 연령에서 인기있는 모델이나 캐릭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와인을 물처럼 마신다는 프랑스는 주류 광고 내용 자체를 엄격하게 심의하고, 맥주가 물보다 저렴하다는 독일은 주류광고의 시간, 장소, 내용까지 규제한다. 독일은 유명인의 주류 광고도 금지하고 있다.

주류 판매시간·장소, 음주 장소를 규제하는 곳도 많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발표를 보면, 미국은 주류 판매요일과 시간을, 영국은 심야 주류판매를 금지한다. 태국은 11:00~14:00 또는 17:00~24:00에만 술 구매가 가능하다. 미국과 캐나다는 허가받은 판매점에서만 술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러시아와 태국의 경우, 개인 거주지나 클럽, 술집 외 공공장소 음주를 금지하고 있다.

◇'공익'의 문제… 주류 광고 규제 강화·인식 전환 한 뜻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너그러운 술·음주 규제가 성인은 물론, 아동청소년의 음주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음주폐해예방팀 나세연 팀장은 "우리나라는 미디어를 통해 스트레스 해소나 사회생활을 위해 술이 필요하고, 술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이미지를 갖게 한다"며, "반면, 관련 규제는 일관성이 없어 아동청소년까지 술과 음주에 무분별하게 노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건강증진개발원의 최신 연구를 보면, 미디어 속 음주 장면에 자주 노출될수록 음주를 통한 대인관계, 스트레스 해소 등 긍정적 효과에 대한 기대 정도와 음주계기가 증가하고, 과음이나 폭음, 알코올 의존 등 음주 문제는 커진다"고 말했다.

나세연 팀장은 이 같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주류광고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나 팀장은 "타 회사 협업 제품 생산 규제, 주류포장 방식 규제 확대 등 새로운 매체와 광고·마케팅에 대응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하고 강화된 주류광고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양대 보건학과 송기민 교수는 "40세 이후로 음주율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국내 연구결과를 볼 때, 신규 진입을 막는 방향이 효과적인 술·음주 규제가 될 수 있다"라며, "특히 아동청소년의 흥미를 유발하지 않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술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건강증진개발원 강창범 건강증진사업센터장은 "술은 공익을 침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대상임에도 단순 '상품'으로 인지해 미디어 등에서 노출이 쉽게 허용된다"라며, "개인과 사회의 건강이라는 공익적 차원에서 관련 규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는 주류광고 마케팅 규제 강화 관련한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남인순 의원은 "음주를 하는 '술방'이 늘어나고 있으나 방송통신심의위원에서 조차 이를 제대로 심의하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남 의원은 "음주폐해 우려가 커지는 만큼 이를 입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며, "관련 법제도 개선을 위해 법안 발의 등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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