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한장이 '시 황제'를 뒤흔들었다, 봉쇄사회까지 찢었다 [2022 후후월드③]
③중국 백지시위대
올해 중국 국가주석 3연임을 확정짓고 ‘1인 천하’를 구축한 시진핑(習近平) 체제를 뜻밖의 시험대에 올린 건 대륙을 뒤덮은 백지시위대 물결이었다. 중국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대한 작은 반발로 불붙은 백지시위는 삽시간에 중국 전역으로 퍼져 시진핑 지도부를 놀라게 했고, 결국은 당국의 봉쇄 일변도 정책 물줄기를 바꾸게 만들었다.
작은 불꽃의 시작은 지난 10월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개막 며칠 전 베이징(北京)시 고가도로에 붙은 ‘제로 코로나 반대’ 현수막이었다. 시진핑 주석은 제20차 전국대표대회와 제20기 당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를 거쳐 당 총서기로 재선출되며 마오쩌둥 이후 처음으로 세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시 주석의 ‘황제 대관식’에 임박해 거리에 나붙었다 바로 철거된 현수막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강력한 봉쇄 정책이 희생자 피해를 키운 우루무치(烏魯木齊) 아파트 화재 사고가 도화선이 됐다. 추모와 애도로 시작된 시위는 11월 말 베이징과 상하이(上海), 청두(成都), 우한(武漢), 광저우(廣州) 등 대도시로 들불처럼 번졌다. 시위대는 무언의 저항 의미로 백지를 들었고, ‘시진핑 하야’와 ‘공산당 하야’ ‘중국 해방’ 구호까지 등장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초유의 일이었다.
중국 당국은 공권력을 동원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시위대를 체포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섰다. 하지만 시위 장면을 찍은 영상이 SNS를 타고 해외로 퍼져나가 세상을 놀라게 했고, ‘제2의 천안문 사태’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저항의 물결을 끝까지 막을 수는 없었던 중국 정부는 결국 지난 7일 상시적 전수 유전자증폭(PCR) 검사 중단을 포함한 ‘방역 최적화 조치 10개 항’을 발표하면서 제로 코로나 해제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백지시위는 코로나19 방역 뿐 아니라 최근 수 년간 지속돼 온 통제와 검열에 대한 정면 반발이었다는 점에서 ‘백지혁명’으로도 불린다. 뉴욕타임스(NYT) 베이징 지국장 출신으로 수십 년 간 중국을 연구해 온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는 “용감한 시위대가 국가 정책을 바꾸었다. 그들의 권리에 대한 열망은 바이러스처럼 소멸할 수 없을 것이며 언젠가 공산당 지도부도 이 인간적인 열망에 응답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측근들로만 구성해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시 주석으로선 G2(미ㆍ중) 갈등 문제와 제로 코로나 이후 현저하게 둔화된 경제성장 동력을 되살려야 하는 과제 외에 통제와 억압에 지친 성난 민심을 수습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
중국 정부의 방역 완화 이후 백지시위는 소강 상태다. 하지만 백지시위로 일단을 드러낸 중국인들의 누적된 불만은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백지시위의 불꽃이 완전히 꺼졌다고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관측이 많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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