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미국은 전쟁 중

전웅빈 2022. 12. 21.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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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우리 동맹, 파트너가 부과한 강력한 기술 제한으로 러시아는 식기세척기 칩을 군사 장비에 사용해야 했다. 기술 수출통제 조치가 단순한 방어용 도구 이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9월 비영리재단 특수경쟁연구프로젝트(SCSP) 주최 '글로벌 신흥 기술 서밋'에서 한 연설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수출통제 조치의 의도와 활용법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해설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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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웅빈 워싱턴특파원


“미국과 우리 동맹, 파트너가 부과한 강력한 기술 제한으로 러시아는 식기세척기 칩을 군사 장비에 사용해야 했다. 기술 수출통제 조치가 단순한 방어용 도구 이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9월 비영리재단 특수경쟁연구프로젝트(SCSP) 주최 ‘글로벌 신흥 기술 서밋’에서 한 연설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수출통제 조치의 의도와 활용법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해설서로 꼽힌다. 설리번은 수출통제가 ‘견고하고, 지속가능하며, 포괄적인 방식’으로 구현되기만 한다면 미국의 ‘새로운 전략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출통제를 공격용 신무기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수출통제 조치 얼개를 구상한 케빈 울프 전 차관보는 “냉전 종식 이후 미 고위 행정부 관리가 국가안보의 전략적 도구로 수출통제 조치를 이처럼 명확하게 확인한 건 처음”이라고 놀라워했다.

미국은 러시아를 상대로 실전 테스트를 마친 이 새로운 전략 자산을 중국을 대상으로 전개하고 있다. 14㎚(나노미터) 이하 시스템반도체 생산장비 등의 중국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고,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주요 중국 반도체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직접 제재 효과도 내고 있다. 대량살상무기(WMD)나 재래식 군사 장비에 직접 관련이 있는 영역 위주로 통제해 왔던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새 통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일방적인 방식이고, 오로지 중국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개발·생산·공급망 전체에서 상업 품목을 대상으로 해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중국과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지만 갈등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바이든 발언은 총만 내려놓고 한판 붙자는 말과 다름없다. 중국은 “노골적인 경제 강압이자 기술 분야의 왕따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정확한 표현이지만, 그것이 미국이 의도한 바다.

중국의 기술 개발을 틀어막는 동안 미국은 자국 기술력 향상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설리번은 “우리는 특정 핵심 기술에서 경쟁국에 ‘상대적’ 우위를 유지한다는 전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또 “몇 세대만 앞서 나가면 된다고 말해온 그동안의 접근 방식은 우리가 처한 전략적 환경에 맞지 않는다”며 “고급 로직과 메모리칩 기술 특성을 고려할 때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리드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감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기술 우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적의 기술력 확보를 저지하고 자신은 아무도 넘보지 못할 수준이 되겠다는 것, 그것이 이번 조치의 핵심이다.

최근 만난 미 전현직 당국자나 정치인 중 이런 조치를 비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당장 매출 감소가 불가피한 기업들이 볼멘소리를 낼 뿐 여야 할 것 없이 공감하고 있다. 공화당 일각에선 경제 디커플링도 필요하다는 과격한 주장까지 나온다. 첨단 기술력 확보는 이제 국가의 생존 문제라는 공감대가 탄탄히 형성돼 있다는 의미다. 자국 이익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동맹 전략에 해가 될 것이라는 비판은 전쟁 중인 미국에 한가한 소리다.

미·중이 적당한 선에서 갈등을 봉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은 비슷한 기술력을 지닌 일본과 네덜란드까지 동참시켜 자신과 같은 통제 조치를 발표토록 유도했다. 첨단 반도체 분야를 전구(戰區)로 연합군을 형성 중이다. 설리번은 얼마 전 “반도체 기술 문제에 깊은 이해가 있는 국가를 비롯해 동맹·파트너와 우리의 맞춤형 제한 조치 이유와 내용 등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첨단 반도체 기술 경쟁력이 미국의 동맹 전략 우선순위라는 말로 들린다. 한국은 준비가 돼 있는지 궁금하다.

전웅빈 워싱턴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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