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눈 내리는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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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바람, 안개 등 공원을 변주하는 여러 기상요인이 있지만 눈은 지극히 특별하다.
함박눈이 덮이는 순간 공원은 달라진다.
컬러가 사라진 흑백 세상에서 눈은 공원의 새로운 지배자이며 주인공이다.
눈 내린 공원은 갑작스러운 축제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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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바람, 안개 등 공원을 변주하는 여러 기상요인이 있지만 눈은 지극히 특별하다. 함박눈이 덮이는 순간 공원은 달라진다. 컬러가 사라진 흑백 세상에서 눈은 공원의 새로운 지배자이며 주인공이다. 순백의 공간은 이 세상이 아닌 것처럼 비현실적이고, 자질구레한 지저분함마저 덮여 한층 단순해진다. 뽀드득뽀드득 보드라운 질감과 야릇한 소리는 어디든 다가가 발자국을 남기고 몸을 뒹굴어도 안전할 것 같은 쿠션감을 준다. 어슷하게 뻗은 나뭇가지에 쌓인 흰 눈은 수묵화의 유려한 선 그 자체고, 성근 나뭇잎과 마른 꽃마다 얹어진 뽀송한 눈송이는 꽃송이보다 풍성하다.
눈 내린 공원은 갑작스러운 축제 분위기다. 예고나 준비 없이 불현듯 시작되는 눈축제. 모두 뛰쳐나와 구석구석 발자국을 남기고 넘어지고 구른다. 서로 또 같이 눈사람을 만든다(요즘은 눈집게로 만든 눈오리가 대세다. 오리뿐인가? 눈사람, 눈펭귄, 눈하트, 눈축구공, 눈곰도 있고 심지어 눈싸움용 눈뭉치도 눈집게로 만든다). 언덕에선 미끄럼을 타고, 평지에선 눈썰매를 탄다(루돌프는 바빠 부모님이 끈다). 눈에서 하면 모두 바뀐다. 눈에서 축구를 하니 눈축구가 되고, 싸움을 하니 눈싸움이 되는 식이다. 눈 속에서 장년층은 영화 러브스토리나 말괄량이 삐삐를, 청년층은 뽀로로나 엘사의 겨울왕국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잊었던 동심을 회복한다.
도로에 내리면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제거하지만, 공원과 숲에 내리는 눈은 그 자체로도 소중하다. 기후재앙으로 매년 심해지는 겨울 가뭄 때문이다. 겨우내 눈이 내리지 않으면 봄에 대형 산불을 피하기 어렵고 많은 나무들이 잎을 틔우지 못하고 스러진다. 연이은 서설이 반가운 이유이고, 겨우내 눈축제를 흠뻑 즐기길 소원하는 이유다. 게다가 축제를 마친 눈은 천천히 녹아 땅에 스며들기에 조금도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 시대와 우리 생활이 반추해야 할 짙은 교훈이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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