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크리스마스를 기린다는 것

2022. 12. 21. 03: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쥐어짜고 비틀고 박박 긁고 꼭 움켜쥐며 남의 걸 넘보는 늙은 악당” “내면의 한기 때문에 늙은 얼굴은 얼음장처럼 굳고” 남들에게 매몰차기 이를 데 없는 사람. 이 사람은 누구인가.

눈 밝은 독자는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이 냉혈한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다. 작가는 갈색 대기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런던을 배경으로 크리스마스의 참 의미를 묻고 있다. 모든 일은 7년 전 세상을 떠난 동업자 말리 영감의 유령이 찾아오면서 시작됐다. 그는 허리께에 쇠사슬을 둘러 감고 있었는데 그 쇠사슬에는 돈궤, 열쇠, 맹꽁이자물쇠, 금전출납부, 각종 증서, 돈 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말리는 아주 쓸쓸한 목소리로 자기 허리를 휘감고 있는 쇠사슬은 한 고리 한 고리 자기가 살면서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말리의 유령은 교회 종소리가 들릴 때마다 크리스마스의 유령 셋이 차례로 찾아올 것이라고 말하고는 자취를 감춘다.

12시를 알리는 묵직한 종소리가 울리자 첫 번째 크리스마스 유령이 등장한다. 그 유령은 스크루지를 데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스크루지는 불우했던 소년 시절의 자기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친다. 장년 시절의 그의 얼굴은 지금처럼 완고하고 모질지는 않지만 근심과 탐욕의 흔적이 자리잡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 맞춰 사는 동안 고결한 꿈은 다 사라지고 오직 돈만 바라보고 사는 자기 모습에 스크루지는 깊은 비애를 느낀다.

두 번째 크리스마스 유령은 주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그를 인도한다. 자기 사무실에서 악조건을 견디며 일하고 있는 밥 크래칫의 집은 크리스마스 만찬을 준비하며 즐거운 흥분상태 속에 있다. 밥의 막내아들 팀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스크루지는 그에게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 유령은 그를 데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광부들, 등대지기, 선원들에게로 데려간다. 그리고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삼촌을 끝까지 존중하고 아끼는 조카 프레드 가족의 유쾌한 일상을 보게 한다.

세 번째 크리스마스 유령은 스크루지에게 어느 낯선 사람의 죽음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게 한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도 그를 동정하거나 애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그는 섬뜩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지금 이 남자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 맨 먼저 무슨 생각을 할까.” 스크루지는 어느 순간 어둡고 텅 빈 집에 홀로 누워 죽어 있는 것이 실은 자기라는 사실을 알고 소스라쳐 놀란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무한히 감사한다. “황금빛 햇살, 근사한 하늘, 달콤하고 신선한 공기, 경쾌한 종소리. 오, 즐거워라, 즐거워라!”

인색하고 모질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노래다. 그는 가난한 서기 밥 크래칫의 집에 커다란 칠면조를 보내고 자선 단체에 거액을 후원한다. 조카 프레드의 집에 가서는 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긴다. 소설은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기릴 줄 아는 이가 있다면 단연 스크루지”라고 말하며 끝난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던 부자는 자기 집 대문 앞에 앉아 있던 거지 나사로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죽음이 찾아왔을 때 부자는 지옥에 떨어졌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고통 속에 있던 부자는 나사로를 시켜 자기 혀에 물 한 방울만이라도 찍어달라고 아브라함에게 청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싸늘한 대답을 듣는다. 부자는 나사로를 이승에 남아 있는 형제들에게 보내 그들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 달라고 청하지만 그 또한 거절당한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의 소설적 변형인지도 모르겠다. 스크루지는 자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봄으로 변화를 경험했다. 떨어져서 바라보아야 비로소 삶의 전모가 보인다.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기린다는 것은 자기 삶을 살피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를 내는 것이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