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대준 피살 사건’ 진실을 알고 싶다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북한의 총격에 살해된 해양수산부 산하 어업지도선 공무원 고 이대준씨 사건을 은폐할 목적으로 ‘보안 유지’를 지시하고, ‘자진 월북’으로 모는 등 허위 공문서 작성 및 배포 지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그가 입단속을 지시하자 청와대 일부 비서관들이 “미친 짓”이라며 반발했다니 충격적이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가 저지른 잘못이 많지만 두 가지는 반드시 법적으로 심판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이대준씨 피살 방조 사건이고, 둘째는 탈북 청년 어부의 비밀 강제 북송 사건이다. 두 사건 관련자들은 헌법 제7조 1항(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헌법 제10조(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준수와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헌법 69조의 ‘대통령의 취임 선서’를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
「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기소 충격
정부, 생존 시점에 무슨 조치했나
문 전 대통령 구체적 지시 밝혀야
」
서 전 원장의 기소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보다 정치적 이해를 우선했던 문 정권의 황당한 행태를 바로잡는 사필귀정 성격이 강하다. 2020년 9월 22일 밤 이대준씨가 처참하게 살해됐는데 그 다음 날 새벽 1시 26분부터 문 대통령이 북한에 종전선언을 제안하는 유엔 총회 화상 연설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서 전 실장 기소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은폐와 왜곡은 이씨가 이미 사망한 이후에 벌인 문 정부의 행각일 뿐이다. 사건의 핵심은 이씨가 살아있을 때 문 대통령과 정부가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의무와 책임을 다했는가다. 특히 국가안보실이 그해 9월 22일 오후 6시 30분쯤 당시 문 대통령에게 첫 서면 보고한 뒤 오후 9~10시 국정원 등이 이씨 피살 및 시신 소각 사실을 인지하기까지가 문제다.
여기에 대한 대답이 미궁에 빠져있는 한 문 정부의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 범죄 행태의 전모가 밝혀질 수 없다. 첫 서면 보고에서 어떤 내용이 당시 문 전 대통령과 서 전 실장 간에 오갔는지, 이후 두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 전 실장에 의한 사건 은폐와 왜곡이 대통령의 재가 또는 최소한 묵시적 동의 없이 서 전 실장 독단으로 행한 것이라 믿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문 대통령에 대한 조사와 법적 판단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1966년 8월 29일 서베를린 주민 하인츠 슈미트가 술에 취해 동서 베를린을 관통해 흐르는 강에 뛰어들었고 동베를린 관할구역에 들어가자 동독 경비대원에 의해 조준 사살됐다. 1983년 4월 10일 동독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서독 여행객 루돌프 부르케르트가 동독 국경검문소에서 검문받던 중 사망했다. 동독은 심근경색이라 주장했으나, 동독 세관원들에게 구타당해 숨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1966년 총격 피살 사건은 첨예한 동서 냉전기에 일어났기에 서독이 달리 취할 방법이 없었으나, 1983년 검문소 구타 사망 사건은 동서독 대화가 이뤄지던 시기여서 서독 정부가 강력하게 원칙적으로 대응할 여지가 있었다. 그랬다면 이후 약 350명이 희생된 유사 사망 사건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동독 공산당 서기장의 서독 방문을 추진하던 서독 정부는 강력한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서독 정부의 당시 행태에 대해 역사적 심판을 내려야 하고 우리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근본적 차이가 있다. 서독의 경우 사건을 인지했을 때 서베를린 시민과 서독 주민은 이미 사망한 뒤였다. 고 이대준씨의 경우 문 정부가 인지한 시점에 살아있었다. 문 전 대통령과 당시 정부의 노력 여하에 따라 살 수도 있었던 셈이다. 청와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대화할 핫라인도 남아 있었다.
서 전 실장 기소는 의혹을 풀 서막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예외 없는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정부·공무원을 다시 제대로 세우는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새 정부가 해야 할 법적 의무이기도 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픔 참다 치아도 부러져"…'희귀병 투병' 신동욱 최근 근황 | 중앙일보
- 얼마나 좋았으면...월드컵 우승 트로피 안고 잔 메시 | 중앙일보
- ‘무엇이든 숫자로 파악하라’…삼성맨 아빠가 63점인 이유 | 중앙일보
- 의붓딸 엉덩이 찌른 주사놀이…오은영도 놀란 그 장면 결국 삭제 | 중앙일보
- "우리 동네 아이스링크 됐다"…매년 반복되는 빙판길의 비밀 | 중앙일보
- 김고은, 손흥민과 열애설에 "국민으로 응원…일면식도 없다" | 중앙일보
- "마스크 쓸어간 中보따리상, 이제 감기약 노린다" 첩보…무슨일 | 중앙일보
- "같이 칼춤 춰줄 망나니 필요해"…달달한 송혜교는 사라졌다 | 중앙일보
- MB 광우병 때도 없던 일…尹퇴진 집회 간 장경태 "계속 갈 것" | 중앙일보
- 백지 한장이 '시 황제'를 뒤흔들었다, 봉쇄사회까지 찢었다 [2022 후후월드③]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