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빼가며 싸워도, 도서관 4층서 만났다…지금 여야가 할 일 [김성탁 논설위원이 간다]
"신뢰 쌓인 여야 인사끼리 협상 채널 가동해야" 과거 협상 주역들의 조언
대선에서 이긴 윤석열 정부가 첫 예산안 처리에 애로를 겪는 것은 국회가 '여소야대'이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 체제에서 실시된 9차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보면 여소야대(5차례)가 여대야소(4차례)보다 많았다.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여당이던 민주당 계열이 180석을 얻는 대승을 거뒀는데, 대선 패배로 여야가 바뀌었으니 여소야대가 더 잦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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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총선 여소야대가 더 많아…여대 만들려 3당 합당, 의원 빼오기까지
DJ정부 때 야 사무총장 신경식 "실업 아픔 나눴던 한화갑과 막후 협상"
"대통령, 국회 문제 당에 일임 필요…정무장관 부활해 야당 가교 맡길 만"
88년 4당 합의 김원기 전 의장 "어려움 해결 위한 진실한 성의가 열쇠"
」
‘분점 정부’로도 불리는 여소야대는 강력한 권한을 지닌 대통령과 행정부를 다수당인 야당이 견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여야 간 대립이 격화하면 국정 운영이나 정책 시행이 교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역대 정권은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바꾸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노태우 정부에선 3당 합당이 이뤄졌고,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선 야권 의원 빼 오기나 의원 꿔주기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여대를 달성했다.
임기 내내 '여대' 이명박 대통령 뿐
역대 정부에서 임기 5년 내내 여소야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유일하다. 박근혜 정부도 여당이 다수당이었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 야대로 바뀌었고 탄핵으로 이어졌다. 제1야당인 민주당 의석만 169석에 달하고 여당인 국민의힘 의석이 115석에 불과한 지금의 국회 구조는 역대 여소야대 중에서도 가장 야당의 영향력이 강한 상태다. 이런 교착 상태를 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여야 대립이 극심했을 당시 협상을 통해 조율에 성공했던 주역들에게 협상의 노하우를 들어봤다.
신경식 전 헌정회장은 1997년 역대 최초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김대중(DJ) 정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사무총장을 맡았다.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자유민주연합 김종필 간 DJP 연합으로 DJ가 집권했을 당시 국회 의석은 한나라당 163석, 국민회의 79석, 자민련 43석이었다. 여소야대에서 김종필 국무총리 임명안이 거야의 반대로 무산됐다. 편법으로 ‘국무총리 서리’ 임명을 강행한 DJ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빼 와 여소야대를 허물었다. 당연히 야당의 반발이 극심했다.
신 전 회장은 지난 19일 본지 인터뷰에서 “당시 DJ의 카리스마가 절대적인 시기여서 야당으로서도 강력한 당 총재(대표)가 필요했는데 이회창 총재가 당선됐다”며 “당시 국회 문제를 놓고 여당과 협상을 벌이면서 총재가 지킬 것과 양보할 선을 어느 정도 정한 후 막후 협상 채널이 가동됐다”고 소개했다. 야당 사무총장으로서 그는 소통 통로를 열기 위해 국민회의 한화갑 사무총장과 국회 도서관 4층 조용한 방에서 만났다고 한다.
“여야 협상에 나서는 사람은 상대방과 이미 쌓인 인간관계가 있는 게 중요합니다. 한화갑과 나는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시절 모두 실업자였어요. 미래가 불안해 점 보는 집에 갔는데, 거기서 딱 만난 거예요. 도서관 협상장에서 ‘우리가 국회의원이 돼 이렇게 만날 거라고 꿈이라도 꿔 봤냐’면서 서로 어깨를 두드려줬죠.”
원내대표는 당 입장 대변하니 강한 주장
국회 협상은 통상 원내대표가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신 전 회장은 “원내대표는 당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니 대외적으로 강한 주장을 할 수밖에 없다”며 “조금만 양보를 해도 당내에서 비난하는 얘기가 나올 수 있고, 양 원내대표단 사이의 협상 내용이 비밀로 지켜지기 어려운 경우도 잦기 때문에 별도의 협상 채널을 가동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사무총장 간 회동에서 그는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의 청와대 회동과 국회 문제 해결 등을 놓고 한 사무총장과 접점을 찾았다. 신 전 회장은 “예산안을 두고 교착이 발생한 지금도 여야 양쪽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막후 협상을 하는 게 필요하다”며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유화적인 인물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당 입장에서는 정무장관을 부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한국당 시절 정무제1장관을 맡았던 그는 “과거엔 정무장관이 대통령실과 야당과의 가교 역할을 했다”며 “정부 입장을 야당에 설명하고, 야당 입장도 대통령에게 잘 알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 대통령실에 정무수석이 있지만 공무원이고 대통령 비서라는 타이틀 때문에 아무래도 야당이 부담스러워한다”고 덧붙였다.
타결 후 대통령, 여야 초청해 만나길
민주당은 최근 예산안 협상이 난항을 보이는 데 대해 여당이 대통령의 의중만 신경 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신 전 회장은 “국회 문제는 대통령이 국회에 일임할 필요가 있다”며 “정무 수석을 통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는 받되, 대통령이 협상과 관련해 직접적 언급은 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신 전 회장은 “예산안 협상 등이 끝난 뒤 여야 협상 대표와 여야 상임위원장 등을 대통령실로 초청해 만찬 등을 하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 13대 총선 결과도 여소야대였다.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125석에 불과했고 평민당, 통일민주당, 공화당 등 야당이 다수인 4당 체제였다. 그런데도 당시 13대 국회는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 특위 구성, 5공 비리 청문회, 국정감사제 부활, 헌법재판소 설치 등 쟁점 법안을 4당 원내총무 간 합의로 통과시켰다. 당시 협상의 주역들이 고 김윤환 민정당, 김원기 평민당, 이기택 민주당, 김용채 공화당 원내대표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여야 간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묘수가 딱히 있는 게 아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결국 여야에서 정치를 책임진 사람들이 난제를 풀기 위한 진실된 성의를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시대적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엄중했다"며 "4당 원내총무 등이 날을 새며 토론하고 큰 소리도 냈지만, 서로서로 어려운 고비를 풀어내려는 진정성을 갖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전 의장은 “대통령이나 당 대표 등이 협상에 나선 이들을 전적으로 믿고 맡기며 뒷받침해주는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합의가 가능했었다”며 “각 정당을 대표해 협상에 나선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역사적인 고비에서 소임을 다 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 "대결 정치 풀려면 선거구제 개편 필요"
「 여소야대는 대통령제인 미국에서도 흔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기 건강보험법 개정 문제를 놓고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이 충돌하면서 연방 정부가 폐쇄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 멕시코와의 국경 장벽 건설 문제로 여야가 대립하면서 연방 정부 폐쇄가 발생했다. 하지만 미국 정당에 보스 문화가 없고, 위계질서도 약해 의원들의 자유투표 경향이 국내보다 강하다.
국내에선 거대 야당이 국무위원 해임안을 밀어붙이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양상이 보인다. 이에 따라 한 표라도 이기면 제왕적 권력을 쥐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 구성에 따라 극한 대립을 반복하는 국내 정치를 개선하기 위해 제도적 해법 모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양당제에서 다당제로 바꾸자는 움직임인데, 한 선거구에서 한 명만 뽑는 소선거구제는 지역주의나 양당 체제를 심화시킨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원내 5당 소속 의원들이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장단과 가진 만찬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은 “선거법·정당법 같은 헌정 제도를 변화된 시대와 정치 상황에 맞게 고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중대선거구제 선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
김성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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