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보수의 품격

2022. 12. 2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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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소설가

보수와 진보는 왜 그렇게 다른 세상을 사는 것만 같을까. 한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갈라지는 것은 필연일까. 그런 갈등은 사회 발전에 어느 정도나 필요할까. 무엇보다 보수와 진보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랜 의문이었다.

어떤 진화심리학자들은 보수와 진보라는 성향이 오랜 세월을 거쳐 우리 유전자에 새겨졌다는 가설을 제안한다. 외부인을 경계하지 않는 부족은 기습 공격으로 멸족할 위험이 있다. 외부와 교류하지 않는 부족은 고립되어 멸망한다. 사회에 낯선 자를 경계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려는 성향이 적당히 섞여 있는 게 진화적으로 유리했다는 얘기다.

사람이 도덕 판단의 기준을 몇 종류나 가졌는지에 따라 정치 성향이 좌우된다는 도덕심리학 이론도 있다. 그에 따르면 진보주의자는 어떤 일이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지, 그리고 공정한지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보수주의자는 거기에 더해 공동체에 대한 헌신, 질서에 대한 존중, 고귀함을 향한 노력 같은 요소도 고려하는 것 같단다.

「 잘못 인정할 때 품격도 드러나
고립의 길 택한 듯한 정부·여당
공동체를 향한 헌신 보고 싶어

내게는 현대 심리학자들보다 20세기 정치이론가 러셀 커크의 말이 더 다가온다. 커크는 진보의 가치를 인정하는 보수주의자였다. 다만 커크에 의하면 보수주의자는 보다 신중하다. 사회가 복잡한 유기체임을 이해하고, 인간의 지혜가 불완전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모든 걸 걸지 않고 전통을 존중한다.

변화의 시대에 인기 없는 태도겠다. 그래도 불확실한 접근법보다 오랜 가치, 극적인 돌파구보다 흔들림 없는 원칙, 순간의 감흥보다 일관성을 중시하는 태도를 지닌 이에게 품격이 깃들 수는 있을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품격은 그가 가치·원칙·일관성을 위해 이익·자존심·감정을 억누를 때, 다시 말해 책임을 피하지 않으며 잘못을 인정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

서론이 길었다. 본론이 뭐냐 하면, 보수를 자처하는 지금 정부 여당에서 품격을 보지 못하겠다는 얘기다. 대통령실은 MBC와 드잡이를 하다가 MBC와 수준이 똑같아졌다. 전당대회를 불과 두 달여 앞두고 경선 룰을 바꾸려는 여당의 모습에서 어떤 원칙과 일관성을 보기는 한다. 계파 이익이 우선이라는 거. 나는 정부 여당이 품격만 잃고 있는 게 아니라, 고립되어 가는 중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비상경제민생회의나 국정과제점검회의 같은 대통령 주재 회의를 TV로 생중계하는 모습이 특히 민망하다. ‘쇼다’ ‘아니다’ 하는 정치권 설전이 무색한 게, 애초에 정치 지도자가 여는 ‘국민과의 대화’는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모두 쇼 아닌가. 그런 행사를 왜 자꾸 여는 걸까. 무슨 극적인 돌파구를 기대하는 걸까. 요즘 TV 보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그나저나 대통령은 친한 의원들과 계속 텔레그램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을까.

서울 한복판에서 참사가 벌어지자 대통령은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를 열고 경찰을 호되게 나무랐다. 이때는 생중계는 아니었지만, 1만자 분량이나 되는 대통령의 발언을 대통령실에서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당연하게도 그 의도가 훤히 보여 효과는 반감되었다. 내부 질책을 공개하는 일이 품격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대통령은 그 회의에서 “책임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라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나는 경찰이 잘못했다면 경찰청이 소속된 행정안전부나 행안부 장관을 임명한 대통령은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장관이 대통령 측근이면 괜찮은 건가. 그 부처 이름에는 안전이라는 단어가 왜 들어 있는 건가. 야당 대표의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 아무래도 다 상관없어지는 걸까.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있잖아. 그걸 조치를 안 해요?” “현장에 나가 있었잖아요.” 국가안전의 ‘시스템’을 점검하는 회의에서 대통령은 ‘현장’을 여러 번 탓했다. 어쩌면 정말 현장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그날 그 시각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아무것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인명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대통령이 뭘 했느냐고 따지는 것도 이상한 풍경이다.

그렇다면 현장이 잘 돌아가게, 현장에 있는 이들이 힘을 갖게 사회 시스템을 뜯어고치자. 대통령과 장관의 권한을 줄이자는 얘기다. 다음 총선이나 지방선거에 맞춰 분권형 개헌을 추진하자. 필요하다면 대통령 임기를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대통령실과 내각에 율사 출신이 많으니 개헌 추진에 가장 적합한 정부 아닐까 한다. 지금 무엇이 진정으로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고 고귀한 일일까.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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