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캐노그래피 아티스트 카테리나 젭의 크리에이티브 아틀리에
바스티유 광장에서 멀지 않은 파리 12구 아틀리에에서 만난 카테리나 젭(Katerina Jebb)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카테리나 젭은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국 태생의 종합예술가다. 1989년부터 파리에 거주하는 그녀는 사진과 영화, 설치미술 작업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영역에서 창작에 몰두하고 있으며, 전매특허 같은 스캐노그래피(Scanography; 스캐너로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를 통해 의복과 신체, 사물을 문서화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혁명을 일으켰다. 덕분에 전위적인 패션 브랜드와 셀러브리티를 매료시킨 그녀는 포토그래퍼를 넘어 아티스트로 발돋움할 수 있었고, 그렇게 탄생한 이미지들은 패션 비주얼 제작 분야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 빠르게 완성되는 수많은 인스턴트 이미지의 시대,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카테리나의 작업은 오랜 관찰을 통해 조심스럽게 이어가는 조각 작품 같아서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있다.
카테리나 젭은 2014년 이전까지는 주로 주거공간에서 작업했다. 아이들이 생기고 그녀의 작업이 집 안 이곳저곳에 놓인 것을 본 가족들이 불평하기 시작했을 때 생활과 작업공간을 분리하기로 한 것.
스캐노그래피를 통해 작가 반열에 오른 그녀가 이 작업을 시작한 건 오래전에 있었던 교통사고의 영향이 컸다. 사고 후유증으로 한참 동안 카메라를 들기 힘들었을 때 마침 스캐너에 닿은 피사체와 그 피사체를 옮겨놓은 디지털 작업 프로세스에 매료된 것.
카테리나 젭의 작업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많은 작업이 공존하면서도 완벽하게 정돈돼 있었다. 아카이브 룸과 뮤지엄의 중간 정도랄까. 이곳에서 주로 하는 작업은 오브제나 인물 내면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많은 시간과 물리적 에너지를 요구하는 스캐너 작업은 그 다음 과정. 카메라를 통해 피사체의 이미지를 확보하는 작업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스캐노그래피는 하나의 이미지를 위해 100번 넘는 근접 스캔을 하고, 작업당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
고된 노동과 감정 소모를 동반한 결과물은 박물관에 걸리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그녀의 노고를 위로한다.
1998년 〈Warhol Look〉 세계 순회 전시의 일환으로 휘트니 박물관에 전시된 그녀의 작업은 2016년 프랑스 아를에 있는 레아튀 뮤지엄(Muse′e Re′attu) 개인전으로, 2018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Heavenly Bodies: Fashion and the Catholic Imagination〉 전시 공동 작업으로 이어졌다. 또 런던 빅토리아 & 앨버트 뮤지엄, 파리장식미술관, 레아튀 뮤지엄의 영구 컬렉션에 포함돼 있다.
다소 그로테스크한 작업과는 달리 카테리나 젭을 매료시키는 작업실의 진풍경은 바로 다락방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이다. 아티스트가 되지 않았다면 정원사나 조향사가 됐을 거라는 그녀는 스스로를 “아임 언 오픈 북(I’m an open book)”이라 부르며 아직도 꾸준히 배우고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2023년 3월 5일까지 파리의상박물관(Palais Galliera)에서 열리는 〈Frida Kahlo, Beyond Appearances〉전에서 그런 그녀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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