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인 감독이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를 보는 방식

전혜진 2022. 12. 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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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바라본 모녀 관계.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라는 제목의 비밀.

Q : KAFA 졸업 작품이자 첫 장편인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발견 부문 대상은 물론,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관객상 등 5관왕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A : 개봉 전 여러 영화제에서 관객과 먼저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어서 감사했다. 개봉 후 만날 수 있는 관객층이 한층 더 확장될 텐데, 영화에 대한 여러 감상이 어떻게 부딪히고 움직일지 벌써부터 흥미롭다.

첫 장편 데뷔작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92년생 김세인 감독.

Q : 한국영화에서 모성애는 늘 탐구돼 왔지만 이 영화 속의 모녀는 낯설다. 다투는 지경을 넘어 엄마 수경의 차가 딸 이정을 덮치는 장면처럼 말이다

A : 나는 사회가 ‘모녀’와 ‘모성’에 관한 오해와 선입견 속에 여성을 가두고, 그 틈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을 오로지 여성만이 감당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한다. 모성에 개인이 감당하지 못하는 많은 역할을 부여하고, 그에 미치지 못하면 괴물인 양 손가락질하면서 말이다. 관객들이 그 외연을 봐주길 바라며 영화를 만들었다. 등장인물의 행동이 전부 옳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옳고 그름의 단두대에 세우는 대신,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주길 바란다.

Q : 전형에서 벗어난 모성애를 탐구하는 데 관심을 두는 이유는

A : 대부분 콘텐츠에서 모성애는 결국 가족애로 회귀하고 만다. 이에 의구심을 품었다. 모녀 관계도 일종의 ‘멜로’인데 이성애·동성애는 이별 요소가 있지만, 왜 모녀는 이별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죽지 않고서는 헤어질 수 없는 아름다운 관계로 그린 매체들을 보며 내가 경험했거나 주변에서 봐온 모녀의 모습과 다르다고 느꼈다. 좀 더 다양한 모녀의 모습으로 바라볼 필요성을 깨달았다.

Q : 관객은 스릴러처럼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여성을 보며 고구마 100개 먹은 듯한 답답함과 트라우마적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의도했을까

A : 환기를 위해 나름 유머들을 배치했는데 어두운 면이 더 강렬하게 다가 갔나 보다. 적당히 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 관계를 끝까지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럼 의도한 게 되는 걸까(웃음)? 인서트 찍을 때 본능적으로 수경의 집에 놓인 고구마를 많이 찍었더라. 편집 시사 때 ‘고구마 모녀이기 때문에 고구마를 찍은 거냐’는 말도 들었다(웃음). 동치미가 등장하는 장면도 있으니, 이 영화의 갖가지 맛을 느끼셨으면 한다.

11월 10일 개봉한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포스터.

Q : 제목이 특이하다

A : 모녀 이야기라는 걸 숨기면서도 두 사람이 내밀하게 공유하는 지점을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나는 엄마와 속옷을 따로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도 비슷했다. 반면 부자가 같은 속옷을 입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속옷을 공유하는 행위가 두 여성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포착하는 것 같았다.

Q :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관심 있는 이유는

A : 사회와 매체가 요구하는 여성의 모습과 내가 느끼는 나, 주변 여성의 모습이 다르다고 느꼈다. 그 괴리에서 우리 존재가 배제되고 삭제됐다는 생각에 외로움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사회적 맥락과 내가 느끼는 어두운 감정을 연결시키지 못했고, 그저 원래부터 내가 이상하고 유별난 사람이라며 자기혐오에 빠지곤 했는데, 이 감정이 외부에서 기인했음을 알고 나서는 해방감을 느꼈다. 나와 주변의 여성을 탐구하고, 관객들과 나누면서 사회적 요구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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