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나’ 박증환의 수적석천(水滴石穿)
지난 1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프레딧 브리온의 원거리 딜러 ‘헤나’ 박증환을 만났다. 서머 시즌 종료와 함께 기나긴 오프시즌을 맞았던 그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기자의 질문에 “솔로 랭크를 하며 지냈다”고 답했다. 가장 그다운 답변이었다.
수적석천(水滴石穿). 물방울이 모여 돌을 뚫는다. 꾸준히 노력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 박증환은 LCK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유독 솔로 랭크 연습량이 많다. 이미 프리시즌에만 200게임 이상을 플레이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무리 휴가 기간이어도 게임을 완전히 놓으면 불안해서, 연습을 통해 챔피언 폭이 늘어남을 느끼면 뿌듯해서. 하지만 무엇보다 여전히 “게임이 재밌어서” 그는 매일 새벽까지 큐를 잡는다.
LCK의 노력가는 최근 프레딧과 재계약을 체결했다. 일각에서는 해외 리그 진출을 점치기도 했으나 그는 결국 자신을 처음 빛내준 팀에 잔류하기로 했다. 그와 함께 프레딧의 지난 1년을 되돌아보고, 차기 시즌에 대한 포부를 들어봤다.
-서머 시즌 종료 후 긴 휴가를 받았다. 어떻게 지냈나.
“솔로 랭크를 많이 하면서 숙련도가 부족한 챔피언들을 연습했다. 나는 걱정이 많은 성격이어서 오프시즌에도 게임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하루에 최소 다섯 판 이상은 해야 마음이 놓인다.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친구들도 만나고 왔다. 친구들의 응원을 받은 만큼 내년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현재 자신의 챔피언 폭에 아쉬움을 느끼나.
“솔로 랭크에서 루시안과 케이틀린의 성능이 좋다. 두 챔피언이 내년에 LCK에서도 그대로 나올 것 같아 열심히 연습 중이다. 케이틀린으로 라인전은 괜찮게 할 수 있는데, 게임을 이기게 만드는 플레이가 잘 안 된다.
케이틀린을 할 땐 무리하지 않고 적당히 상대를 가둬놓고 답답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내가 너무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다 제 발에 넘어지는 경우가 아직 많다. 고쳐야 한다. 케이틀린이 잘 성장하면 팀이 할 수 있는 플레이의 가짓수가 많아진다. 미드 푸시 주도권을 잡을 수 있고, 시야를 장악하거나 덫을 활용해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도 있다.”
-2022년은 박 선수에게 어떤 한 해로 기억에 남을까.
“스프링 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을 때 정말 행복하고 기뻤다. 그런데 서머 시즌엔 아쉬운 모습을 보여드렸다. 개인적인 챔피언 폭 문제도 나왔다. 당시 팀들 사이에서 블루 1픽으로 루시안을 가져가는 전략이 유행했는데, 내가 루시안을 잘 못 다뤄서 밴픽이 어려워졌다. 데뷔 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루시안과 케이틀린으로 바텀 라인전을 이기는 게 중요한 메타에 적응하지 못했다. ”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LCK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언더도그 반란’의 비결은 무엇이었나.
“프레딧의 주전 5인 모두 라인전이 센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로를 믿었다. 최우범 감독님께서 늘 ’실력과 메카닉(피지컬)이 부족해도 다섯 명이 한 곳을 바라본다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강조하신다. 나는 이 게임에서 팀워크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서머 시즌엔 메타 변화의 흐름을 타지 못했던 게 패인이다.”
-올해 가장 기뻤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을 각각 하나씩 꼽는다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순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프로게이머 데뷔 후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스스로 기량도 만족스러웠다. 힘들었던 순간은 딱 하나 꼽긴 어렵다. 서머 시즌에 상대는 쓰는 챔피언을 내가 쓰지 못해서 힘들었다.”
-드레이븐이나 코그모를 데뷔 후 처음으로 선보이기도 했는데.
“스크림에서 잘 다뤄서 대회에서도 활용해봤다. 나만의 메타 픽을 만들고 싶었는데 결과가 아쉬웠다. 드레이븐은 라인전을 이겼을 때 얻는 스노우볼이 커서 매력적인 챔피언인데, 라인전을 져버리면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
꼭 코그모를 골랐던 경기에만 한정해서 하는 얘기는 아닌데, 올해 프레딧이 원거리 딜러 하이퍼 캐리 조합을 골랐을 때 운영 방향을 잘 잡지 못했다. 나 또한 주도적으로 게임을 풀어나가지 못했다. 스크림에서만큼 과감한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던 점이 아쉽다. 나는 늘 마지막 시즌을 맞는다는 각오로 새해를 준비한다. 내년엔 더 열심히 해서 내가 가진 모든 걸 보여주겠다.”
-2022년을 보내며 배운 점이 있다면.
“팀원이 다 같이 잘해나간다면 강팀들이 즐비한 LCK에서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반대로 그런 목표에만 너무 매몰되어도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서머 시즌엔 우리를 향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반드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꼈다. 그게 부진으로 이어져서 아쉬웠다.”
-스토브리그 얘기를 해보자. 팀과 계약을 종료했다가 재계약을 맺었다.
“팀에서 나갈 생각이 크진 않았지만, 프레딧에만 3년을 있었다 보니 해외 진출이나 새로운 도전도 고려는 해봤다. 하지만 박정석 단장님과 최 감독님께서 나를 좋게 봐주셨다. 나도 늘 프레딧을 좋아했다. ‘나를 믿어주신다면 남겠다’고 말씀드린 뒤 잔류를 결정했다. LCK라는 리그에 대한 욕심과 프레딧이란 팀에 대한 애정이 컸다.”
-탑라이너를 제외한 3개 포지션은 새로운 얼굴로 바뀌었다.
“생각보다 새로 온 친구들의 피지컬이 좋다. 운영만 다듬으면 좋은 팀이 될 것 같다. 다들 성격이 착하고 순둥순둥하다. 다섯 명 모두 MBTI 유형이 내향형인 ‘I’로 시작하더라.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늘 뒤에 있는 걸 좋아했다. 학창시절 반장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리더십 있는 친구가 팀에 새로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맏형이니까 예년보다 어른스럽게 행동하려 한다. 사실 올해는 팀에서 나이가 있는 편이었는데도 애처럼 굴었다.”
-‘에포트’ 이상호가 새로운 바텀 파트너로 낙점됐다.
“나는 원래 상호의 라인전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같이 연습해보니까 라인전을 잘하더라. 피드백을 할 때 ‘티키타카’도 이뤄져서 호흡을 잘 맞춰나가고 있다. 상호의 특징인 미드 로밍 플레이도 여전히 잘한다.”
-최근 본격적인 스크림에 돌입했다. 치르면서 느낀 바가 있나.
“여전히 바텀 라인 주도권이 아주 중요한 메타다. 게임을 풀어나가는 운영 능력이 중요한 메타이기도 하다. 우리도 운영 능력을 보완해야 한다. 스크림 상대 중에는 담원 기아가 운영을 가장 메타에 맞게 잘했다. 많이 배우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난 2년 동안 스크림에서는 담원 기아가 가장 까다로웠다.”
-차기 시즌 목표 성적은.
“스프링 시즌이든, 서머 시즌이든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는 게 목표다. 그리고 스프링보다는 서머 시즌에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싶다. 바텀 듀오로 LCK 올-프로 서드 팀 안에 드는 게 개인적인 목표다. 개인적으로 나와 상호가 잘하는 바텀 듀오라 생각한다. 열심히 한다면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솔로 랭크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렇게 많이 하는데도 솔로 랭크 1위를 찍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1등을 찍고 싶은 욕심이 가장 큰 동기부여다. 챔피언 폭이 늘어남을 느끼면 뿌듯하고, 무엇보다 게임이 재밌어서 한다. 원거리 딜러의 솔로 랭크 점수는 곧 자신감과 직결된다.
솔로 랭크를 안 할 땐 대회 경기를 보며 운영을 공부하거나, 상호와 스크림 녹화 영상을 보면서 의견 공유를 한다. 강팀들의 티어 정리 결과가 우리 것과 다를 때가 종종 있다. 최근에는 한화생명e스포츠와 담원 기아가 티어 정리를 잘했다고 느꼈다.”
-끝으로 인터뷰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다면.
“주전 멤버가 바뀌어서 팬들께서 걱정도, 기대도 많이 하실 거로 생각한다. 새로운 팀원들과 열심히 호흡을 맞추고 있다. 올해보다 잘하겠다. 꼭 한 번 인터뷰를 통해 임우택 대표님께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다. LCK 어워즈 드레스코드가 정장이다. 대표님께서 선수단 전원의 정장과 구두, 넥타이까지 새로 맞춰주셨다. 꼭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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