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다”며 어떤 도움도 안 줘…"24개 국가서 제도 마련, 정책 서둘러야"

황수연 2022. 12. 2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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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스스로 잘해야만 했습니다. ‘네가 효자다’ ‘잘 컸다’ ‘조금만 더 고생해라’라는 말을 건네며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박다솜 가족돌봄청년 자조모임 n인분 활동가는 20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서 열린 ‘가족돌봄 아동·청소년 권리보장을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자신을 어릴 때부터 고령의 할머니를 돌봤던 가족돌봄 청년이라고 소개했다.

“아동은 부모의 보호와 돌봄이 필요한 존재이지만 역으로 부모가 아파서 돌봄을 제공하는 아동들이 가족돌봄아동·청소년”이라면서 할머니 식사 챙기기, 가사, 돈 관리, 진학 등을 오롯이 감당했던 지난 시간을 털어놨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자격을 얻으려 동 주민센터에 갔다가 해당 안 된다고 들었던 경험을 말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과 제도는 잘 마련돼 있는데 그 기준에 드는 게 왜 이렇게 힘든지 회의감과 절망감에 휩싸였었다”고 했다. “아픈 가족을 돌보며 내가 해야 할 인생 과업을 하나둘 놓치고 있다는 게 막막하고 쓸쓸했다”고도 전했다.

20일 오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가족돌봄 아동·청소년 권리보장을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 중앙포토.

최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조사에서 이런 가족돌봄아동·청소년이 최소 686명이고, 이 가운데 약 23%는 초등학생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한전복 재단 복지사업본부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정부가 이슈를 인식하고 지원방안 마련에 나선 건 고무적이지만 실태조사가 만 13세 이상부터 진행돼 초등생 이하 아동의 돌봄 현황이 파악 안 된다”라며 “실태조사 이후 서비스 연계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걸 의미할 수 있기에 누락돼 발굴되지 않은 아동에 대한 지원도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미 일본에서도 40% 이상 응답자가 초등학교 때부터 케어(돌봄)해왔다고 응답했다”라며 “조사 설계를 보완해 추가 조사와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 ▶관련 법 제정 ▶플랫폼 구축 ▶맞춤형 지원 등을 촉구했다.

권지성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돌봄 청(소)년의 경험에 대한 맥락-패턴 분석’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20여년 전 사라진 줄 알았던 소년소녀가장 제도가 여전히 존재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족돌봄아동·청년에 “돌봄, 생계, 진로의 중첩적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도움 요청할 곳이 마땅치 않아 고립 상태에 처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이들이 잘 발견되지 않는 이유로는 스스로를 영케어러로 인식하지 않고 서비스 정보가 부족하고, 지역사회에 대한 무지 등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특별법 마련에 대해선 “법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법을 만든 순간 돌봐도 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은 “대상자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원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제도에서 배제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한 가족돌봄 아동(8)이 설거지를 하고 있다. 사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제공.

또 “특별법은 기존 법의 상위법으로 작동하고 타법과의 정합성 부분서 문제 될 수 있어 관련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영국 등의 해외 사례를 소개하며 “24개 국가에선 영케어러 지원 위한 사회적 환기, 제도 마련 단계에 진입했다”며 “영케어러가 겪는 문제는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방관 시 미래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날 정부 대표로 참석한 김도균 보건복지부 인구정책과 청년정책팀장은 “전반적으로 아동 삶의 만족도가 낮고 가사 돌봄 부담이 높다는 점 등에서 복지부 조사 결과가 재단 결과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라며 “심층적인 실태조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정부 실태조사에서 초등학생이 누락된 것과 관련, “여러 형태를 통해 의견을 들을 창구를 마련하고 아동 쪽에서 별도 실태조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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