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도 영어도 아닌 '일상'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 개봉(2023년 1월 12일)을 앞두고, 필수 노동이자 그림자 노동의 영역에서 고군분투 해 온 마을 방과후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심을 다해 일하고 계신 필수 돌봄 노동자들의 수고와 존재를 알리고자 8편의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기자말>
[박상민 기자]
▲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다큐 속 한 장면. 마을 방과후 선생님들이 줄을 잡고 아이들이 단체 줄넘기를 하고 있다. 마을 방과후에서 이 활동은 가르치고 배워야 할 과목이 아니라 놀이이고 일상이다. |
ⓒ 박홍열 |
사람들은 다양한 직업에 대해 특정한 이미지를 가지기 마련이다. '의사'라고 하면 흰 가운을 입고 진찰하는 모습이나, 긴장감이 감도는 수술실에서 수술을 집도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파일럿'하면, 제복을 입고 비행팀 무리 선두에 서서 공항을 걸어가는 모습이나 관제소와 교신을 주고 받는 모습을 그린다. 우리가 생각하는 직업에 대한 이미지의 실상은 직접적인 경험보다 다양한 매체를 통한 간접 경험으로 기억되기 쉽다.
▲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다큐 속 한 장면. 1학년 해냄 활동은 두발 자전거를 배워서 행주산성 라이딩까지 다녀오는 것이다. 학기 초, 1학년들이 두발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마을 방과후 교사들이 돕고 있다. |
ⓒ 박홍열 |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이다. 사람들에게 방과후 교사라고 이야기 하면 "무슨 과목을 가르쳐요?"라고 되묻곤 한다. 교사라고 하니 가르치는 사람인 것 같긴 하지만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기에서 나아가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저 사람이 가르치는 것의 구체화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부터 마을방과후에서 늘상 일어나는 몇 가지 장면을 그려보도록 한다.
색연필과 싸인펜이 한곳에 뒤섞여있다. 누군가 사용한 흔적이 가득한 책상 위에는 가위와 종이 조각들이 흐트러져있다. 마치 탐정 코난이라도 된 듯이 아이들과 현장을 살펴보며 이곳을 사용한 사람을 찾는다. 아이들이 주는 단서를 통해 몇 명으로 추려지면 거론되는 아이마다 다가가 말을 건넨다. 1학년일 경우 정리 방법을 몰라서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자기가 사용한 물건을 정리하는 법을 다시 설명해 주어야 한다. 3학년 이상일 경우엔 습관적으로 그럴 수 있으니 혹여나 어디에 정신이 빼앗겼는지 확인해야 한다.
▲ 마을 방과후 활동_자유 놀이 마을 방과후에서는 놀이가 일상이다. 터전(방과후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 주차장에서 "신발 도둑 잡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 모습. |
ⓒ 도토리 마을 방과후 |
이번 장면은 터전(방과후 공간을 이르는 말)밖이다. 신발 뺏기 놀이가 한창이다. 주변에서 놀이를 지켜보던 아이들도 재밌어 보였는지 한두 명씩 같이 하자고 다가온다. 놀이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목소리가 커지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점점 승부욕이 발동해 마음대로 규칙을 바꾸려 고집도 부린다. 함께 놀던 아이들은 중간에 규칙을 바꾸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문제 제기한다. 자기들끼리 서로 다른 의견을 수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본다.
그때 살며시 그 자리를 빠져나오는 한 아이가 보인다. 천천히 다가가 불편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본다.
"나는 규칙을 좀 바꾸자고 그냥 이야기 한 것뿐인데, 자꾸 형들이 나한테만 뭐라고 하잖아. 승철이는 지난번 자기도 그랬으면서… 나만 그랬다고 또 거들고 말이야."
지난 일까지 끄집어 내는 친구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논쟁보다 놀이를 그만두는 것을 선택한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다른 아이들에게 이미 지나간 일을 들추기보다는 지금 상황에 대해서만 논의할 수 있도록 중재한다.
피곤한 모습으로 연신 무기력하게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한 아이가 눈에 띈다. 책을 들고 읽다가 집중하지 못하고 몇 차례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내 한숨을 쉬며 북극(쉬는 공간 이름)으로 올라가 이불을 펴고 눕는다. 아이에게 다가가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지 묻는다. 마음이 불편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곤 하는 아이였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답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처음엔 머리가 아프다고 말하기 꺼렸지만, 조금씩 어제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아니… 어제 애들이랑 같이 놀았는데, 내가 조금 흥분해서 목소리가 커졌나봐."
"그랬어? 너는 기분이 무척 좋았던 모양이구만! 그랬는데 왜?"
"아니, 그랬더니 애들이 나한테 좀 조용히 말하라고 그러는 거야."
"너는 기분이 좋았는데, 친구들이 그걸 이해 못하고 되려 뭐라고 한 것 같아 속상했구나?"
"나만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닌데 나한테만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속상했어. 기분이 안 좋구."
"그랬구나. 어제 친구들이랑 어떻게 놀았는지 이야기 해줘 봐."
▲ 마을 방과후 활동_나들이 마을 방과후에서는 정해진 프로그램 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놀이를 나누고 함께 할 수 있기를 지향한다. 마을 방과후 나들이로 자주 가는 성미산 아지트에서 자기들만의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 |
ⓒ 도토리 마을 방과후 |
마을방과후 교사인 나의 일상 단면들이다. 이제 조금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무엇을 가르치느냐는 질문에 꼭 맞는 답이 없다는 걸 말이다.
나는 날마다 아이들과 만나며 일상에서 그들의 삶이 그 자체로 빛이 날 수 있도록 질문하고 또 고민한다. 아이들이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주체성을 발휘해 일상을 통해 배움이 일어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하는 일은 그저 아이들 앞에서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로만 채워지지 않는다. 일의 가치는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 되고, 일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마을방과후 교사가 하는 일은 그 방법보다 그것이 가진 의미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 바로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아이들이 무엇을 헤매고 있는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함께 질문하고 이야기 나눌 사람, 나는 그게 방과후 교사라고 생각한다. 우치다 다쓰루는 <좋은 선생도 없고 선생 운도 없는 당신에게 스승은 있다>에서 '스승은 발품을 팔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라 했다. 이 말처럼 방과후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이 스승을 찾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는 일상의 상황이 아이들에게는 늘 스승을 만나는 일인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살도록 돕기 위해 그들에게 삶을 가르치고 나 역시 배워 나간다. 배움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곳, 아이들이 마을방과후에서 서로를 통해 스승을 만나고 제 가치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글_박상민(별명:오솔길)
마음속에 늘 초록색 지붕 집 빨간 머리 앤을 품고 아이들과 우정을 나누는 일상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현)도토리 마을방과후 사회적 협동조합/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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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기사는 영화 속에 출연한 도토리 마을방과후 선생님들이 쓰고 엮은 책, <아이들 나라의 어른들 세계>에 실린 글 중 일부입니다. 1월 출간 예정. *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 1월 12일 극장 개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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