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실상 금리 인상'에 아시아 금융시장 요동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통화긴축 행렬에도 꿈쩍 않던 일본은행이 20일 기습적으로 통화완화 정책을 축소했다. 사실상의 금리 인상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아시아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쳤다.
일본은행은 19~20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를 통해 장기(10년물 국채) 금리 변동 허용 폭 상한을 기존의 0.25%에서 0.5%로 높이기로 했다. 지난해 3월 0.2%에서 0.25%로 올린 이후 1년 9개월 만에 통화완화 정책을 수정한 것이다. 다만 단기금리는 시장의 예상대로 -0.1%의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했다.
이번 결정은 시장의 예상을 완전히 깼다. 일본은 미국·유럽 등 주요국이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고강도 통화 긴축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초저금리 기조를 꿋꿋이 고집해왔다. 하지만 미일 금리 차가 커지면서 엔화 가치가 폭락하고 40년 만의 기록적인 고물가 현상이 지속하자 일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변동 폭 확대는) 장단기 금리 조작이 더 안정적으로 기능하도록 한 것이지 금리 인상이나 금융 긴축을 한 것은 아니다. (완화정책 재검토는)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미 시장은 ‘사실상의 금리 인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오전에 달러당 137엔대였던 엔화 가치는 일본은행 정책이 알려진 직후 133엔대로 치솟았다. 엔화 급등 영향에 원화도 동조화 현상을 보이면서, 달러 대비 원화가치도 13.3원 오른(환율은 하락) 1289.6원에 마감했다.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10년물 국채 금리는 0.25%에서 장중 한때 0.46%까지 뛰었고, 일본 닛케이 지수는 전장 대비 2.46% 떨어진 2만 6568.03에 마감했다. 일본의 긴축 움직임에 다른 아시아 증시도 요동쳤다. 한국의 코스피(-0.80%)를 비롯해 중국 상해종합지수(-1.07%)와 선전종합지수(-1.58%), 홍콩 항셍지수(-1.33%), 호주 S&P/ASX 지수(1.54%) 등이 일제히 하락 마감했다. 일본의 금융완화 정책이 세계적으로 차입 비용을 낮추는 데 간접적으로 기여해왔기 때문에 주변국까지 여파가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지난 10년간 일본의 통화완화 정책을 이끌어온 하루히코 총재가 내년 4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면 일본도 글로벌 긴축 행렬에 본격적으로 동참할 것으로 전망된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새 총재가 임명되는 시점에 맞춰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3년 1월 정부와 일본은행이 발표한 공동 성명을 처음으로 개정할 방침을 세웠다. 이 성명은 그동안 초저금리 기조의 근거로 작용했으나, 내년에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예고되면서 정책 수정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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