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노조 깜깜이 회계방지법', 또 다른 노조혐오 전술?
[이경태, 곽우신 기자]
▲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남소연 |
'노조 깜깜이 회계방지법.'
국민의힘이 20일 민주노총을 겨냥해 내놓은 법안(노동조합법 개정안)이다. 노동조합의 회계감사원 자격을 공인회계사 등 법적 자격을 보유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300명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 노조의 회계자료 행정기관 제출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주된 골자로 삼았다.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긍정적 취지를 앞세웠지만 실질적인 속내는 '민주노총 힘빼기'에 가깝다. 당장 노조는 현행 관련법에 따라 매해 2회씩 회계감사를 실시, 공개하고 있고 행정관청 역시 노조의 회계감사 자료 등을 요구하면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른바 '노조 깜깜이 회계방지법'란 명명법에서 확인할 수 있듯, 마치 '민주노총이 막대한 조합비를 거둬서 불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반(反)노동' 혹은 '노동혐오' 프레임을 만들었다.
해당 법안 발의가 예고된 시점도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노동개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정치도 망하고 경제도 망하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곧장 정부·여당의 응답으로 이어졌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고위당정협의회 때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벌써부터 정부의 노동개혁안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 여당이 노동개혁에서 믿을 것은 결국 국민의 뜻, 민심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같은 자리에서 "그간 노조 활동에 대해 햇빛을 제대로 비춰서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는 한덕수 국무총리 한덕수 국무총리가 12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6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협의회에는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성일종 정책위의장, 김석기 사무총장,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정부에서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등이, 대통령실에서는 김대기 비서실장과 이관섭 국정기획수석, 이진복 정무수석, 김은혜 홍보수석, 최상목 경제수석,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등이 참석했다. |
ⓒ 연합뉴스 |
주호영 "정부·지자체로부터 예산 지원도 받는 민주노총, 회계 공개해야"
여당 인사들이 20일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를 주장하면서 한 말들을 살펴봐도, '민주노총 혹은 노조를 국민 여론에게서 고립시키겠다'는 의도가 확인된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노총은 더 이상 헌법 위에 설 수 없고, 치외법권에 설 수 없다"면서 관련 법안을 강조했다.
먼저 그는 "노조의 재정 투명성 문제는 높은 사회적·정치적 위상에 걸맞지 않게 사실상 외부로부터 감사의 눈길이 전혀 미치지 않은 영역으로 남아 있다"며 "민주노총은 조합원이 113만 명에 이르며 연간 조합비가 무려 17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이 된다. 본부 예산만 200억 원이 넘는다. 뿐만 아니라 노조들은 정부로부터 또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수십억 원 이상의 예산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거액의 돈이 외부감사의 눈길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국들은 대부분 독립적인 외부 회계 기관의 감사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단지 결산 내역만 공개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법률 정비를 통해서 노조의 회계가 정부 혹은 독립적 외부기관의 감사를 받도록 해서 노조의 재정 투명성을 높여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그동안 민주노총이 자신들의 주장처럼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해왔다면 정부의 이런 조치가 두려울 것도 없고, 먼저 자신들이 이런 조치를 요구해야 할 것"이라며 "사측에는 투명한 회계와 운영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의 장부는, 더구나 국가 예산이 투입된 회계를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도 주장했다.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따로 기자회견을 열어 "노조는 자치조직이라는 이유로 회계는 성역화돼 왔고 현행법은 노조의 '깜깜이 회계'를 부추겨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행법상 노조 회계에 대한 행정관청의 감독과 관련해 "행정관청의 요구시에만 회계자료를 제출토록 하고 있어, 행정관청이 회계비리를 사전에 인지하지 않는 이상 노조의 부정행위를 발견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현행법상 노조원의 회계자료 열람권에 대해서도 "열람은 허용하나 열람 목록이 규정돼 있지 않아, 노조 지도부가 허용하는 것만 볼 수 있다. 노조 지도부의 반민주적 운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과 농민, 학생, 시민들이 12월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민중대회에 참석해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민생파탄 국가책임 인정, 민생개혁입법 쟁취, 쌀값 정상화, 이태원 참사 대통령 사과, 민주주의 파괴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
ⓒ 유성호 |
민주노총은 이날 한상진 대변인 명의의 입장문에서 "노동조합은 자주성을 기반으로 권력·자본의 간섭을 배제하고 조합원의 노동조건 개선과 사회정치적 지위 향상을 그 목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며 "(여당의 개정안은) 노동조합의 독자적인 회계감사권을 박탈해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민주노총이 정부·지자체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는 주 원내대표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민주노총이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은 현재 입주해 있는 경향신문사 건물의 임대보증금 약 30억 원밖에 없으며 민주노총은 정부로부터 보조금 수령을 거부해 왔다는 것. 이에 따르면 "국가 예산이 투입된 회계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 원내대표의 주장은 명분을 잃게 된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은 "(정부 보조금 수령 거부) 이는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지키려는 민주노총의 기본 원칙으로, 외부 감사의 필요성이 전혀 없다"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속이 뻔한 음해와 거짓 선동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당 역시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노조 재정운영에 대한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다면서 여당을 비판하고 나섰다.
위선희 정의당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금속노조의 경우 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 감사들이 일상적 감사를 진행하고, 결산보고서를 매년 전 조직에 배포하고 있다"며 "노조의 회계 감사 자격 등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해도 노조의 재정 운영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를 위협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일찍이 국제노동기구 ILO가 경고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그는 "국민의힘의 이번 법안 발의는 법안 보완의 취지보다는 '노동개혁'이라는 명분을 핑계로 정부 여당의 치부로부터 국민들의 눈길을 돌리기 위한 일이라 의심된다"며 "이번 법안 발의 과정에서 노조의 회계를 '깜깜이 회계'라 선동하는 행태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라고 꼬집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덕수 분향소 방문날, 어머니는 쓰러졌고 아버지는 무릎을 꿇었다
- 마을사람 모두 줄 서서 사먹는 음식, 매년 12월의 진풍경
- 교육관계자 어리둥절하게 만든 윤 대통령의 실언들
- 일본 덕분에 한국이 나아졌다는 진실화해위원장
- 시흥시, 한전 초고압선 소송 패소... 주민들 "울화가 치민다"
- 30인 미만 사업장 '주 60시간' 일하라는 윤석열 정부
- 밭 한가운데서 볼 일... 깻잎 한 장에 깃든 불법 노동
- '고발사주' 연루 검사 휴대전화, 포렌식 후 발견된 특이한 영상
- "여기 국밥 하나요" 음식만 주문한 게 아닙니다
- 대구시, 의무휴업 평일전환 반대 노조원들 고발... "홍준표 분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