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의 겨울, 벌새 위해 설탕물을 준비했어요 [자연과 가까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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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기자]
눈이 펑펑 내렸다. 밴쿠버는 원래 눈이 이렇게 많이 오지 않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눈이 와서 쌓이기 시작했다. 원래는 밤새 눈이 내리고 나면 아침부터 비가 오고, 오후가 되면서 싹 마르는 것이 전형적 밴쿠버 날씨인데 말이다. 한국에서나 만나던, 길 옆으로 쌓인 눈이 밴쿠버에서도 이젠 어렵지 않게 보인다.
▲ 눈 쌓인 뒷마당 텃밭 |
ⓒ 김정아 |
식물들은 잠을 잘 자고 있겠지만 동물들은 먹거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동네 곰들은 겨울잠을 자지 않아서 눈 속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다닌다. 과연 뭘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쓰레기통이라도 뒤질 것이다.
▲ 새모이통을 흔들어 쏟아놓고 신나게 먹다가 들킨 청설모 |
ⓒ 김정아 |
새들은 겨울잠을 자지 않을 텐데 지금 같은 날씨에 먹이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특히나 눈이 내리면 정말 아무것도 구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여름에는 대충 넘기던 씨앗 모이통도 겨울에는 열심히 챙긴다. 비어 가면 바로바로 채워둔다. 그러면 새들도 열심히 날아들어 챙겨 먹는다.
씨앗을 먹는 새 말고, 꿀물을 먹는 새도 있으니, 우리 집 단골손님 벌새도 챙겨야 한다. 여름철에는 집안 마당에 가득한 꽃을 찾아다니며 여기저기서 즐겨 먹는 벌새. 그러나 겨울이 시작되면 꽃이 전부 사라지고 먹을 꿀이 없어진다.
▲ 설탕물을 타서 걸어 놓으면 즐거이 와서 먹는 벌새 |
ⓒ 김정아 |
벌새용 설탕물은 설탕:물=1:4의 비율로 충분히 녹여서 사용한다. 끓였다가 식혀도 되고, 그냥 잘 섞어도 된다. 그리고 설탕이 녹고 나면 상하기 쉬우므로 남은 것은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깨끗하게 제공하여야 한다. 설탕물 통이나 새 모이통은 모두 깨끗하게 관리를 해야 한다. 병이 발생하고 전염되기 안성맞춤인 곳이기 때문이다.
▲ 설탕물을 먹고 나서 앉아서 쉬고 있는 벌새 |
ⓒ 김정아 |
어쨌든 이 추운 겨울철에는 별달리 먹을 것이 마땅치 않으므로 설탕물을 내놓으면, 벌새가 너무나 좋아하며, 종일 살다시피 한다. 눈 내린 날 사진을 찍자니 추워서 밖에서 오래 못 버티는 덕에 설탕물 먹는 순간은 포착하지 못했지만, 벌새는 계속해서 날아와서, 먹다가 쉬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창가에 앉아서 노트북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계속 창밖을 힐끔거린다. 한 녀석이 오고, 또 다른 녀석이 날아왔다가 가고, 큰 녀석도, 작은 녀석도 분주히 움직이며 영하 9도의 날씨에서도 체온을 유지하느라 애를 쓴다.
▲ 모이통을 찾은 박새 |
ⓒ 김정아 |
눈이 와서 꼼짝도 못 하는 추운 날씨에, 어디를 가지 않아도 그저 부엌 창가에서 누릴 수 있는 자연은 겨울에도 우리에게 위안과 평화를 준다. 우리의 이 보잘것없는 손짓이 그래도 이 자연이 유지되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짜 도움은 늘 우리 인간이 받고 있으므로,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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