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의 나라서 캐낸 '하얀 황금'…포스코 '年10조 잭팟' 터진다

이희권 2022. 12. 2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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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살타 주(州)에 위치한 포스코의 리튬 염호 '옴브레 무에르토'에서 공사 차량들이 기반 조성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희권 기자


활화산과 만년설로 뒤덮인 해발 4000m의 안데스 산맥 중부. 극한의 기후 때문에 이곳에서 숨진 사람의 시신은 모두 썩지 않고 그대로 미라가 됐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이 일대 염호(塩湖) 지역을 ‘죽은 남자’라는 뜻을 가진 ‘옴브레 무에르토(Hombre Muerto)’라는 섬뜩한 지명으로 부른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찾은 아르헨티나 북서부 살타주(州)의 옴브레 무에르토. 풀 한 포기 찾기 힘든 황무지에 태극기와 함께 포스코 깃발이 펄럭였다. 기존 철강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리튬·니켈 등 2차전지 소재를 집중 육성하려는 포스코가 그룹의 미래를 베팅한 곳이다. 가장 가까운 마을조차 비포장도로로 8시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지구 반대편 고지대에서 ‘하안 석유’로 불리는 리튬을 채굴하기 위해 한국인·아르헨티나인 직원들은 고산병과 싸우며 밤새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살타 주(州)에 위치한 포스코의 리튬 염호에 위치한 공장. 'Sal de Oro Plant' (살 데 오로 플랜트)는 스페인어로 '황금 소금 공장'이라는 뜻으로 이번 리튬 자원 개발 프로젝트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희권 기자

전기차 시대…황금이 된 리튬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 원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양극재의 핵심 원료다. 전기차 배터리 1GWh(기가와트시·전기차 1만5000대 분량)를 생산하는데 700t가량의 리튬이 필요하다. 공급 부족을 겪으면서 탄산리튬 가격은 최근 1년 새 이미 세 배 가까이 올라 ㎏당 10만원에 달한다. 주요 자원개발 업체들은 리튬을 찾아 전 세계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포스코는 2018년 8월 호주의 자원개발 업체로부터 1만7500㏊(여의도 28배) 부지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 북쪽 부분 광권을 2억8000만 달러(당시 3300억원)에 사들였다. 광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지금이야 ‘신의 한 수’ 투자로 평가받지만 당시엔 의구심 또한 적지 않았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자원 외교’를 둘러싼 적폐청산 수사가 겹치면서 내부에서조차 “이제는 그만 포기할 때가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살타 주(州)에 위치한 포스코 아르헨티나 리튬광산 전경. 사진 우측 상단 파란색의 커다란 설비가 염호의 염수를 증발시켜 리튬을 추출하기 위한 염전 개념의 시설인 '폰드'다. 포스코.


반전은 지구 반대편에서 묵묵히 염호를 파던 현장 관계자들의 뚝심에서 시작됐다. 2010년대 초반부터 볼리비아와 칠레를 거쳐 아르헨티나 염호를 조사한 포스코 관계자들은 경제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을 했다. 이후 사업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염호 인수 직후 실제 매장량을 검증하자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인수 당시 추산했던 220만t의 6배인 1350만t(탄산리튬 기준)으로 매장량이 늘어난 것이다. 전기차 3억5000만 대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현장에서 리튬 생산 및 운영을 담당하는 오재훈 포스코아르헨티나 상무보는 “이곳 염호 물 1L에 리튬 0.9g 정도가 함유돼 있다”면서 “함유량과 질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절반 이상이 매장돼 있어 아르헨티나와 칠레, 볼리비아의 안데스 산맥 지역은 ‘리튬 삼각지대’로 불린다. 더욱이 이곳에선 소금물을 햇볕에 말리는 방식으로 리튬을 생산해 광석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방식에 비해 효율성과 환경성에서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살타 주(州)에 위치한 포스코 아르헨티나 리튬광산 폰드 전경. 포스코

“쏟아지는 리튬 가루 보며 울컥”


현장의 시험설비(데모플랜트)에선 새하얀 인산리튬 가루가 쏟아지고 있었다. 여기서 나온 인산리튬은 최종 배터리 제조에 사용되는 수산화리튬으로 가공된다. 포스코아르헨티나 관계자는 “테스트에서 실제로 쏟아지는 리튬 가루를 보면서 ‘이거 정말 되는 사업이구나’ 하는 마음에 울컥 했다”고 말했다.

포스코그룹은 현재 8억3000만 달러(약 1조700억원)를 들여 1단계 리튬 공장을 건설 중이다. 계획대로 2024년 상반기 완공되면 수산화리튬을 연 2만5000t 생산할 수 있다. 총 10억9000만 달러(약 1조4000억원)이 들어가는 2단계 공장 프로젝트도 연내 시작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2030년까지 3·4단계 증설 작업이 마치면 아르헨티나에서만 리튬이 연 10만t씩 쏟아져 나오게 된다”며 “현 시세를 고려하면 연 매출 10조원에 달한다. 염수 리튬 기준 세계 최대 생산자로 등극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살타 주(州)에 위치한 포스코의 리튬 염호 '옴브레 무에르토' 내 폰드에서 공사 차량이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희권 기자


포스코그룹은 가공한 리튬을 국내·외 배터리 기업에 공급할 계획이다. 이미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등이 포스코에 러브콜을 보내며 북미에 합작 공장을 세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발효로 인한 탈(脫)중국 공급망 구축, 소재·배터리·완성차 기업 간 합종연횡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포스코 관계자는 “우리에게 없는 자원을 찾아 개발하고, 가공·판매한다는 본질만큼은 리튬이나 철강이나 다를 게 없다”면서 “포스코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업을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살타(아르헨티나)=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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