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동생 수장시킨 공범, 오빠 내연녀였다…동백항 살인 전말 [사건추적]

김민주 2022. 12. 2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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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보험금 수령 도구로 이용한 범행이다.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피고인은 사망한 공범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엄벌이 필요하다. 징역 5년을 선고한다.”


희대의 보험사기 사건, ‘피해자 의지’도 작용했다


20일 오후 2시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합의1부(최지경 부장판사)가 이같이 선고했다. 피고인 A씨(42ㆍ여)는 지난 5월 부산 기장군 동백항에서 일어난 이른바 ‘동백항 살인사건’과 관련한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5월 3일 오후 2시쯤 부산 동백항 사건 범행 직전 오빠 B씨가 차의 짐을 빼놓고 있다(원 안). 사진 현장 CCTV

동백항 살인사건은 친오빠가 뇌종양을 앓는 동생의 억대 보험금을 노려 동생을 숨지게 한 뒤 자동차 자살 사고로 위장했다는 의혹을 받은 사건이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오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숨진 친오빠와 내연관계 여성이다. 동백항 범행 현장이 기록된 폐쇄회로(CC)TV에서 A씨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살인 혐의로 구속된 뒤 이날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날 재판에서는 뇌종양 말기였던 여동생이 홀로 남게 될 자녀를 오빠에게 부탁했고, 차 사고를 꾸민 뒤 자신의 사망보험금을 오빠가 수령하는 데 동의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보험금 수익자 오빠, 현장 물색해 ‘예행연습’


사건은 지난 5월 3일 동백항에서 일어났다. 한적한 어촌 마을인 이곳에 바다를 바라보고 주차돼있던 경차 한 대가 오후 2시쯤 서서히 움직였다. 운전석에는 여동생(40)이, 조수석에는 오빠 B씨(43)가 타고 있었다. 느린 속도로 굴러간 차가 바다에 빠졌다. 조수석에 있던 B씨는 탈출했지만, 운전석 여동생은 빠져나오지 못한 채 차와 함께 가라앉아 숨졌다.
지난 5월 3일 부산 기장군 동백항에서 사람이 탄 차가 물에 빠져 소방대원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초기엔 뇌종양 악화 등 신변을 비관한 여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에 초점이 모였다. 하지만 사건을 수사한 울산해양경찰서는 추락 사고가 일어나기 전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오른 여동생 보험금 수익자로 B씨가 지정된 사실을 확인했다. B씨가 여동생을 사고 차량에 태운 채 인적이 드문 물가를 돌며 범행 장소를 물색했고, 사고 전날 똑같은 차를 몰고 동백항을 방문해 사고를 ‘예행연습’한 사실도 파악됐다. 해경이 재연한 자동차실험에서는 해당 경차 조수석에 앉은 상태에서도 몸을 운전석 쪽으로 기울여 차량 조작이 가능하다는 게 드러났다.

해경은 당일 차를 몰고 동백항에 들어온 B씨가 본래 조수석에 있던 여동생을 완력으로 끌어 운전석에 앉혔고, 자신은 조수석에 앉아 차를 조작해 사고를 꾸민 것으로 보고 B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런데 B씨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고 사라졌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B씨는 지난 6월 3일 경남 김해시 한 농로에 세워진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로 인해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장소 물색하고 차량 제공하며 공모” 법정서 드러난 진실


해경은 A씨도 공범으로 판단해 구속했다. B씨 사망으로 수사는 종결됐지만, 해경은 A씨가 B씨와 공모해 보험금을 가로챌 목적으로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봤다. 동백항 사건 때 여동생을 태운 채 침몰한 차도 A씨 소유였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A씨는 뇌종양을 앓아 의사능력과 신체 능력을 완전히 잃은 여동생을 적극적인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징역 10년 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A씨가 휴대전화 메시지를 이용해 범행에 적당해 보이는 장소 사진을 B씨에게 보내고, 여동생 자살 시도를 알면서도 이를 방조했다고 판시했다. 동백한 사건에 앞서 지난 4월 18일 일어난 ‘낙동강 차량 침수 사고’ 때 A씨 행적에도 주목했다. 이 사고는 B씨와 여동생이 탄 차가 부산 강서구 낙동강 둔치에서 물에 빠졌던 사고다. 이때 여동생은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 재판부는 이 사고를 A·B씨가 공모해 여동생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시도한 ‘1차 범행’으로 규정했다. 피해자인 여동생도 이에 동의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최 부장판사는 “1차 범행 때 A씨는 회사에서 조퇴한 뒤, 차를 몰아 B씨와 여동생이 탄 차를 뒤따라 운전했다”며 “범행 이후 A씨와 B씨는 질병으로 거동도 힘든 여동생을 물에 빠진 차에 남겨두고 일몰 직후 현장을 떠났다”고 했다. 이어 “뇌종양 재발로 기대수명이 3개월도 남지 않은 여동생에겐 자식이 있었다. 여동생은 친오빠에게 자신이 죽은 뒤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보이며, 자동차 사고를 위장해 친오빠가 사망보험금을 받게 할 동기가 충분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최 부장판사는 “1차 범행 실패에서 멈추지 않고 보험금 수령을 위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이는 차량ㆍ보험 명의 이전이 여러 차례 이뤄진 뒤 2차 범행(동백항 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며 A씨를 질타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 측은 “(B씨가 여동생을 차에 태워 돌아다닌 것은) 단순한 드라이브였으며, 평소 B씨가 조용한 것을 좋아해 놀러 갈 만한 한적한 장소 등을 찾아 사진을 보낸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 건강 상태를 잘 알고 있었던 두 사람이 스스로 걷거나 의사표현도 못하는 피해자를 데리고 매일 오랜 시간 장거리 이동을 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다. 예비 범행 장소 사진을 주고받을 때의 대화를 보면 놀러 갈 장소를 찾은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며 이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억대 보험금’ 父 사망 의혹은 미제로


지난해 7월 15일 부산 낙동강에서 소방대원이 강에 빠진 모닝 차량 인양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사고로 오빠 B씨의 부친이 사망했다. 사진 부산소방재난본부
한편 숨진 B씨의 부친 또한 지난해 7월 차를 몰던 중 석연찮은 이유로 낙동강에 빠져 사망했다는 사실이 동백항 살인사건을 계기로 새롭게 조명됐다. 부친의 1억원 넘는 보험금은 B씨가 수령했다. 부산경찰청은 이 사건 재수사를 검토하며 실제 B씨를 불러서 한 차례 조사했지만, B씨가 숨지며 의혹은 풀리지 않았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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