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14명, 15억 쓴 전태일기념관…서울시, 민노총 예산 칼질

문희철 2022. 12. 2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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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에 위치한 전태일기념관. 서울노동권익센터도 이 건물 5층에 입주해 있다. [사진 서울시청]

노동조합 회계를 두고 불투명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의회가 내년도 노동단체 위탁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인건비 비중이 높고, 특정 단체가 장기간 위탁운영을 독점해온 예산이 대상이다.

서울시의회는 지난 16일 본회의를 열고 내년도 서울노동권익센터 운영 예산(올해 35억8200만원)을 24억7000만원으로 10억원 이상 깎았다.


서울시의회, 노동조합 등 위탁 운영 예산 40% 가까이 축소


줄어든 2023년 서울시의회 노동 관련 위탁 예산. 그래픽 차준홍 기자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위탁운영하는 서울노동권익센터는 근로자 권익 보호와 복지증진 사업을 추진한다. 서대문구·성동구 등 자치구가 운영하는 노동복지센터와 연계해서 노동법률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휴(休)서울노동자쉼터’라고 부르는 5개 노동자 휴게공간을 운영한다. 이곳 직원은 37명이며 민주노총 관련 여러 인사가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곳은 자치구가 운영 중인 노동복지센터와 기능이 중복된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노동자 휴게공간 이용률도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5개 서울시 휴서울노동자쉼터 이용자 수는 4만2430명으로 하루 평균 35명 수준이다.

이에 대해 김세규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허브사업단 전문위원은 “노동복지센터가 주민·노동자와 상담한 뒤 소송·권리구제 등 법률적 지원이 필요하면 서울노동권익센터가 나서는 방식으로 운영했다"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노동민간위탁분회가 서울시의회에 발송한 사과문. [사진 서울시의회]

전태일재단이 운영하는 종로구 전태일기념관 내년 예산도 6억6800만원으로 절반 이상 깎였다. 이곳 올해 운영비는 15억8400만원이었다. 2018년 개관한 전태일기념관은 노동 관련 전시·공연예술 사업을 지원한다. 이곳 직원은 14명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이 건물 5층을 사용 중이다.

전태일기념관은 서울시 재정평가에서 ‘매우 미흡’ 평가를 받았다. 장태용 서울시의회 의원(국민의힘·강동4)은 행정 사무감사에서 “예산을 고무줄처럼 집행하고 있다”라며 “방만하게 운영하면서 세금을 낭비한 것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가 장 의원에게 줄 간격(160%)·서체(함초롬돋움)·크기(11포인트)·여백(기본여백)·분량(A4 2매 이상)을 지정하며 사과문을 작성해 홈페이지·블로그·페이스북에 게재하라고 요구했다.

서울시의회는 이를 의회 모욕으로 규정하고 예산 전액 삭감을 추진했다. 하지만 전태일기념관 관계자가 의회에 사과문을 보내자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일부 예산을 복원했다. 이에 대해 장태용 의원은 “예결위의 최종 결정은 존중하지만, 당초 강모 전태일기념관 팀장이 개인 명의로 막도장을 찍어 사과문을 보낸 걸 공식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의회, 비정상의 정상화 추진”


서울 마포구 아현동 소재 강북노동자복지관. [사진 서울시청]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이 위탁 운영하는 강북노동자복지관도 예산이 줄었다. 이곳 운영비는 올해 7억7100만원에서 2억4000만원이 됐다. 강북노동자복지관은 서울 지역 중소·영세 기업 노동자의 노동권·복지 향상을 위해 지었다.

하지만 건물 상당 부분을 노동자 복지 시설 대신 민주노총 사무실로 사용해 논란이 됐다. 또 서울시 지원 예산의 절반 이상(53.4%)을 인건비로 사용했다(1~3분기 집행금액 기준).

2023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서울시의회가 이를 지적하자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14일 서울시의회에 “민주노총 사무공간으로 사용되는 비율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그간 노조에 위탁한 복지관 운영 내용을 실질적으로 들여다본 건 이번이 사실상 처음일 정도로 노조 상대로 적극적으로 의정활동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며 “민주노총이 직인을 찍어서 공문을 제출한 건 이번이 처음으로 안다”고 말했다.

인건비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노동 관련 위탁 예산. 그래픽 차준홍 기자

이번에 예산이 삭감한 세 기관 모두 서울시가 한 기관에 장기간 위탁운영을 맡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강북노동자복지관은 2002년, 서울노동권익센터는 2014년, 전태일기념관은 2018년부터 수탁운영 기관이 바뀌지 않았다.

김지향 서울시의회 의원(국민의힘)은 기획경제위원회에서 “민주노총이 강북노동자복지관을 사유화해서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며 “세금 70억원을 들여 민주노총에 건물을 지어주고 운영비까지 내준다는 지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자치단체도 유사한 상황이다. 예컨대 대전시 노동권익센터는 2015년 설립 이래 민주노총이 위탁운영 중이다. 인건비 등 예산(7억3000만원)을 전액 대전시가 부담한다. 3년에 한 번씩 센터 운영 단체를 공모했는데 대부분 민주노총이 단독으로 지원·선정됐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정무부대표를 맡은 허훈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은 “서울시의회는 시민 이익에 반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고, 이번 예산 조정 과정에서 이행했다”며 “앞으로도 성과가 부실하고 불합리한 관행은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가 제315회 정례회 제6차 본회의에서 안건을 표결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의회 캡쳐]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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