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정의 속에서 잊히고 있는 로힝야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하킴파라 캠프 비닐 천막과 대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쉘터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고, 그 사이로 자리 잡은 좁은 골목길 사이로는 오염된 하수가 흐른다. |
ⓒ 사단법인 아디 |
어느 새 5년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2017년 8월 25일 로힝야족이 미얀마 군부의 박해와 집단학살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피난한 지도. 흘러간 시간 만큼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길은 더 멀어지고, 국제사회의 지연되는 정의 속에서 로힝야는 점차 잊혀지고 있다.
미얀마독립조사기구(Independent Investigative Mechanism for Myanmar, IIMM) 설립,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의 수사 착수, 올해 초 미국 정부의 집단학살 공식 인정, 미얀마 군부의 예비적 반대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의 기각과 공판까지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잊혀지는 속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국제사회의 지원도 사그러 들고 있다. 매년 발표되는 로힝야 위기 공동 대응 계획(Joint Response Plan, JRP)는 2022년 목표 대비 도달 수준이 11월 기준 44.7%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다. 이중 14%가량은 정작 당사자인 로힝야 난민들이 원치 않고 인권단체들이 우려를 표하는 바산 차르(Bhasan Char) 지원으로 사용된다. 그러다보니 대다수 난민들이 거주하는 캠프 상황과 형편은 점점 궁색해지고 있다.
캠프에서도 계속되는 폭력과 억압의 굴레
희미해지는 관심과 지원 속에서 로힝야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생명 안전과 더 나은 삶을 찾아서 피신했지만, 캠프는 열린 감옥이라고 불릴만큼 열악하다. 장소가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방글라데시 캠프로, 가해 주체가 미얀마 군부에서 방글라데시 정부와 로힝야 무장단체로 바뀌었을 뿐 숨죽이며 살아야 하는 삶은 매한가지다.
로힝야 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면 여기가 미얀마 라카인주인 지 방글라데시 캠프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캠프에서도 이동의 자유, 교육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뿐더러 미얀마에서 로힝야를 극한의 고통으로 내몰았던 강제노역, 협박과 금품 갈취와 같은 폭력과 억압의 굴레는 캠프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특히 국제기구와 인도주의단체 직원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밤이 되면 캠프는 위협과 폭력의 공포에 사로잡힌다. 강경파 무장단체는 범죄 단체가 되었다. 지난 해 9월 말에는 난민 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외치던 로힝야 인권 활동가, 모히브 울라(Mohib Bullah)가 살해당했다. 배후로 알려진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akan Rohingya Salvation Army, ARSA)은 걷잡을 수 없이 흉폭해지고 있다.
캠프 안에서 마약을 밀매하고, 로힝야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다고 주장하며 난민 대상으로 돈을 갈취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와 협력하는 마지(Majhi, 캠프 지도자)들도 벌써 여럿 살해당했다. 무장단체의 폭력이 심각한 캠프에 거주하는 난민들은 살해 협박과 금품 요구를 피해 이웃으로 몸을 숨기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군부와 경찰의 전방위적인 인권 침해도 로힝야에게 가한 탄압 상황과 비슷하다. 무장단체 활동을 빌미로 로힝야 난민 모두가 마치 잠재적 범죄자인 양 취급하고, 모히브 울라 살해 사건 이후부터는 가구별로 5일마다 하루 오후 6시부터 오전 6시까지 12시간 야간 경비를 설 것을 요구하는 등 강제노역까지 시키고 있다.
군경이 검문소에서 통행 허가를 대가로 현금을 요구하고, 휴대폰을 수색하는 건 일상다반사다. 난민들을 인터뷰를 하면서 수색 과정에서 강경파 무장단체와 마약 밀매 연루 의혹을 제기하거나 바산 차르로 이주보내겠다는 협박으로 상당한 금액을 뇌물로 요구하는 사례들도 확인됐다.
신뢰할만한 보호 체계 부재, 이제는 재정착 희망
상황이 이렇지만 캠프에는 난민들이 신뢰할만한 보호 체계가 없는 실정이다. 로힘(가명, 35)은 "신고를 하면 오히려 신원이 노출되어 보복을 당할 위험만 높아진다"면서 "그런 경우를 보고는 신고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캠프 내 일상화된 폭력 속에서 불안감은 커지는데, 캠프에서 적절한 보호를 받을 수 없어 난민들은 실망을 넘어 절망하고 있다"면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보호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2017년 비극으로 가족들을 잃었다는 모하메드(가명, 48) 역시 "마음으로는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면서도 "악화일로인 미얀마 정치 상황과 격화되는 라카인주 내전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송환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된다"고 했다. 그는 "적어도 아이들만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면서 "미래를 위해 제3국 재정착을 희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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