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예산협상이 첩첩산중인 이유…초유의 '준예산' 사태 치닫나
이재명 vs 윤석열 비판하며 여야 신뢰 부족
여소야대 국면에서 예산 심의권과 증액 동의권 등 충돌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내년도 예산안이 준예산 위기로 치닫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데드라인을 어긴 여야는 예산안 처리 시점을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올해 예산안 심사 왜 이렇게 난항일까.
20일 현재 여야는 국회의장이 중재한 법인세 최고세율 1%포인트 인하와 행정안전부 경찰국, 법무부 인사정보단 예산을 예비비로 지급하는 방안을 중심으로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법인세 등 쟁점외에도 세부 사업에서도 여전히 이견…첩첩산중 예산협상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예산이 법정기일을 넘긴 지 오래됐지만, 오늘도 어제와 달라진 상황이 없다"면서 "(양당 원내대표 회동은) 현재 계획은 없지만, 국회의장을 통해 중재 요청을 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주 원내대표는 여야 간 이견으로 법률 개정 없이 시행령으로 설치된 경찰국, 인사정보단 예산과 관련해 "정부조직법 범위 안에서 합법적으로 설치된 기관으로, 예전에 그 일들을 대통령 민정수석실에서 다 근거 없이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여러가지 폐단을 낳았기 때문에 정부조직 안에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기 위해 만든 제도"라며 "이것을 부정하고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장 중재안 수용’을 원칙적으로 내세웠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힘은 이제라도 ‘의장 중재안’을 전면 수용해야 한다"면서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밝히고, 떳떳하게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간의 여야에서 밝혀왔던 내용 등을 종합하면 구체적인 접점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법인세 등에서 이견은 좁혀졌다. 다만 경찰청·인사정보단 예산은 여전히 쟁점이다. 법 개정 없이 시행령으로 만든 기구에 야당은 그동안 법률을 위반한 기구라는 입장을 펼쳐는데, 중재안에서처럼 예비비로 예산을 조달할 경우 이같은 야당의 주장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여야 지도부의 발언만 보면 법인세, 경찰청·인사정보단 등 핵심 쟁점을 두고서 공방전을 펼치는 것 같지만, 내부 사정은 보다 복잡하다. 구체적인 예산안 역시 쟁점이다. 국민의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은 이철규 의원은 MBC 라디오에 출연한 자리에서 "경찰청·인사정보단 예산외에도 몇 가지 쟁점이 있다"면서 "청년원가주택 예산 등 몇 가지 부분에서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쉽게 이뤄지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기자간담회를 통해 "지역화폐, 임대주택, 노인일자리 예산 등 복원하는 게 숙제"라면서 "전체 예산이 의장 중재안 수용 여부 때문에 진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부 사업에 대해서도 힘겨루기가 계속 이어지는 셈이다.
여야는 일단 일괄타결 해법을 노리고 있다. 큰 줄기의 합의가 있으면, 세부적인 주고받기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예산안 처리 목표를 번번이 어긴 상황이라서, 자칫 연말 더 나아가 준예산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이재명 방탄 vs 용산 아바타, 여야 간 신뢰부족
예산안을 두고 여야간 정쟁은 그동안 있었지만, 이번 상황은 예전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래로 예산안 처리 시점이 이처럼 늦어지는 것도 처음이다.
협상이 가장 어려운 점은 양측간의 신뢰가 없다는 점이 일차적 이유다.
여당은 야당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방탄을 위해 예산안을 이용한다는 논리를 그동안 제기해왔다. 지난 15일 김미애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이 단독 감액 수정안을 강행한다면 이재명 방탄을 위한 ‘의회 독재’, ‘대선 불복’이라는 오명을 헌정사에 남기고 말 것"이라며 "이재명 방탄이 아니면 도저히 해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반대로 예산안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은 대통령실이 개입한 탓이라고 비판한다. 박 원내대표는 "한번, 두 번, 세 번 어겼으니 ‘네 번도 상관없다’는 듯, 이미 세 차례나 기한을 어긴 집권 여당을 향해 윤석열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원칙을 지키며 내년도 예산안 처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지시했다"면서 "‘용산 아바타’로 전락한 여당과 도돌이표 협상을 해봤자 대통령 거부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교착 상황이 길어지면서, 연일 부정적 민심만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예산 심의권을 거론하며 "윤 대통령도 더는 국회의 헌법적 권한을 침해하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권교체가 맞물려지면서 악순환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는 여야 정권교체 이후 첫번째 예산심사다. 정권교체가 있을 경우 통상적으로 예산안 심사가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 정설이다. 여기에 여소야대 국회 속에서 예산안과 관련해 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권한이 충돌한 점도 예산 처리의 발목을 잡았다. 우리 헌법과 국회법은 예산안의 안정적 처리를 위해 정부·여당에 더 유리한 구도를 제공한다. 가령 예산안에 법정기한을 부여하고, 예산안 부수법안의 경우 자동 부의 조항 등을 뒀다. 야당 등이 발목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또한 예산을 늘리거나 새로운 비목 등을 설치할 때는 정부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과반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은 예산안 처리의 가부를 결정할 수 있는 함을 갖고 있다. 또한 정부 예산안에 대해 증액은 불가능하지만, 감액은 할 수 있다. 정부 원안에 일부 예산안을 삭감하는 형태의 수정안을 처리할 힘과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입법권과 예산 심의권을 국회, 특히 야당과 증액 동의권과 예산 편성권을 가진 정부(+여당)이 충돌하는 상황이다.
초유의 준예산 사태 벌어질까
여야 예산안이 해법을 찾지 못함에 따라 준예산 우려도 커졌다. 준예산이 시작되면 국정운영 차질은 물론 경제에 대한 부담 역시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헌법은 예산안 통과가 되지 않을 경우에 준예산 제도를 도입했지만,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다. 준예산이 도입되면 의무지출과 공무원 급여 등 최소비용만 집행이 가능해 예산의 절반가량인 재량지출 집행이 불가능해진다. 복지사업 중단 가능성 때문에 저소득층이나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타격도 우려된다.
문제는 예산이 집행되지 않는 문제를 넘어, 악화 일로 상황의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내년도 경제 전망이 암울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예산조차 합의 처리하지 못했음을 대내외에 드러낼 경우 경제 전반에 악영향은 불가피하다.
다만 준예산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희박하다. 민주당은 "준예산 편성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준예산이 불가피하다면 국회의장과 협의해 야당 단독으로 정부 예산안에 감액을 적용한 수정안이라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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