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의 경고 “내년도 고물가…상반기 경기 많이 어려울 것"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내년에도 물가 상승률이 높은 수준으로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 운영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당분간은 긴축의 고삐를 풀지 않겠다는 취지다.
다만 이 총재는 지난 11월 밝힌 금리 인상 종착점인 ‘연 3.5%’ 대해서는 “경제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폭과 한국 경제 상황 등에 따라 금리가 더 올라갈 수도, 반대로 내려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이날 이런 내용을 담은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총재는 “앞으로의 소비자물가는 당분간 5% 내외의 상승률을 이어가겠지만 국내외 경기 하방압력이 커지면서 오름세가 점차 둔화할 것”이라며 “내년에는 상고하저의 흐름을 나타내면서 점차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올해 1~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5.1%가 올랐다. 연간 기준으로는 1998년(7.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은은 내년에도 한은의 물가안정목표(2%)를 훌쩍 넘어서는 고물가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이 예상하는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이다. 특히 기저효과 등을 고려했을 때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2월까지는 5%대의 고물가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5% 이상으로 높았을 때는 좌고우면할 것 없이 물가를 우선 잡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가 고공비행 전망의 근거는 우선 공공요금 인상이다. 전기요금의 경우 누적된 원가상승 부담을 반영할 경우 예상보다 인상 폭이 더 커질 수 있다. 이 총재는 “정부가 올해 공공요금 인상을 자제해 (유가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낮췄다”면서 “다만 유가가 떨어질 때 다른 국가는 물가가 빨리 떨어질 수 있지만, 한국은 공공요금을 정상화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에 물가가 낮아지는 속도가 더딜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밖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등을 물가 상승의 변수로 꼽았다.
고물가로 인해 내년에도 당분간은 긴축 기조를 이어질 전망이다. 이 총재는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2%)를 웃도는 높은 수준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 운영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며 “한은이 물가를 우선으로 하는 건 바꿀 수 없는 의무”라고 설명했다.
다만 최종 금리 수준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크다. 이 총재가 지난 11월 밝힌 최종금리 수준은 연 3.5% 수준이다. 현재 기준금리(연 3.25%)에서 0.25%포인트만 인상하면 금리인상이 마무리된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시장과 소통을 위한 것이었지 정책 약속은 아니었다”며 “경제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Fed의 금리 인상 수준이나 부동산 가격 조정과 이에 따른 금융불안 등에 따라 금리 인상폭 등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는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해서는 “지금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선을 그었다. “물가가 중장기적으로 목표치에 수렴하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총재는 2%라는 수치가 ‘중장기적 목표치’라고 강조했다. 당장 2%대로 물가가 내려오지 않더라도 물가가 현재 5%대에서 상당폭 내려와 안정화되는 흐름을 보이면 통화정책의 방향을 돌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금리와 고물가가 이어지며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는 심해지고 있다. 한은은 내년 경제성장률을 1.7%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내년 상반기는 1.3%다. 이 총재는 “내년 상반기에는 경기가 많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며 “침체로 가느냐 마느냐는 경계선에 있다”고 진단했다.
고금리가 상당 기간 이어지며 물가와 성장 간의 상충관계도 심해지고 있다. 한은은 1970년대 경기와 물가를 모두 살피며 금리 인상과 인하를 오갔던 ‘스톱앤고(stop and go)’의 실패를 염두에 두고 있다. 물가가 잡혔다는 확실한 신호가 올 때까지 긴축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근거다. 다만 이 총재는 “고물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하면서 우리 국민께서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물가만 바라보는 통화정책을 하다 경제 상황을 외면하는 이른바 '가학적 통화주의'(Sado-monetarism)에 대한 우려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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