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V토크] 서울숲처럼 우리카드에 활력 불어넣는 황승빈
'서울숲'.
지난 1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삼성화재와의 경기에 나선 우리카드 세터 황승빈(30)의 등엔 이름 대신 서울숲이 새겨져있었다. 우리카드가 연고지 서울의 명소들을 이름붙인 크리스마스 에디션 유니폼이었다. 도심 속 녹지인 서울숲처럼 황승빈은 우리카드에 활력을 불어넣어 승리를 이끌었다.
황승빈은 올 시즌을 앞두고, 삼성화재에서 트레이드돼 우리카드 유니폼을 입었다. 세터 출신인 신영철 감독은 FA(프리에이전트) 취득이 불과 1년 남았지만, 팀에 큰 힘이 될 거라는 기대를 걸었다. 신 감독은 이어 황승빈에게 주장 완장까지 채웠다.
황승빈은 "감독님께서 생각하는 팀의 중심은 배구 코트 안과 밖 모두 세터다. 코트에 들어가서 구심점이 되는 건 물론이다. 감독님께서 주장직을 맡기면서 '세터인데다 고참급인 네가 해달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우리카드는 레오 안드리치가 무릎 부상을 당한 데 이어 대체 선수로 온 리버맨 아가메즈까지 부상을 입는 악재를 겪었다. 하지만 8승 6패(승점 21)를 거두며 4위를 달리고 있다. 1월 복귀 예정인 아가메즈까지 합류하면 순위 싸움을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황승빈은 2014년 대한항공에 입단해 군입대 기간(국군체육부대)을 제외하고 줄곧 한 팀에서 뛰었다. 그러나 2021년 삼성화재로 트레이드됐고, 다시 1년 만에 우리카드로 옮겼다. 황승빈은 "군입대했을 땐 편했다. 그러나 처음 이적했을 땐 한 두 달 동안 우울감도 느꼈다. 그러나 한 번 해봐서인지 우리카드 와서는 적응이 쉬웠다. 같은 나이 친구(송희채, 오재성)도 있고, (같이 뛴 적이 있는 이)강원이 형도 있고, (최)석기 형도 있어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우리카드 주포 나경복과의 재회가 반가웠다. 두 사람은 인하대 2년 선후배다. 황승빈은 "워낙 출중한 공격수니까 급할 때는 경복이를 찾게 된다"고 웃으며 "트레이드 연락을 받자마자 경복이가 전화했다. '한 팀에서 뛰자고 얘기하지 않았냐'고 하더라. 속내를 잘 아니까 편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세터에게 이적은 어려운 도전이자 과제다. 10명이 넘는 팀내 공격수들이 좋아하는 코스와 구질을 파악해 맞춰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승빈은 빠르게 팀원들과 잘 맞춰나가고 있다. 시즌 도중에 온 아가메즈와도 처음엔 힘들었지만, 부상 직전엔 아주 좋은 호흡을 보였다.
황승빈은 풀타임으로 뛴 게 1시즌 밖에 되지 않았다. 대한항공엔 국가대표 세터 한선수(37)가 있었기 때문이다. 황승빈이 군복무하는 동안 유광우(37)까지 입단해 황승빈은 좀처럼 뛸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여러 팀에서 탐내는 기량을 가졌고, 그 덕분에 두 번이나 이적했다. 연봉도 단숨에 리그 10위(6억9000만원, 옵션 포함)까지 뛰어올랐다.
세트 2위(10.611개)를 기록하면서 팀을 잘 이끌고 있다. 황승빈은 "감독님께서 해준 얘기 중에 '네가 있어야 남이 있는 거'라는 게 생각난다. 여러 뜻이 있겠지만, 남들 생각하느라 네 걸 놓치지 말라는 걸로 생각했다. 중심을 잡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코트 밖에서 보낸 시간은 황승빈의 재산이 됐다. 황승빈은 "많은 분들이 한선수가 있었기 때문에 못 뛰었다고 하지만, 그 7년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코트엔 못 섰지만, 구단에서 내 실력을 인정해줬고, 리그 정상급 선수와 같이 훈련했다. 매일매일 배운게 쌓여 지금의 내 배구를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황승빈은 "지금도 선수 형과는 매일 연락한다. 선수 형을 보면서 '참 리더'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황승빈은 "전역 후 마음이 조급해지긴 했다. 하지만 군복무를 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상무에서 국제대회에 출전하고, 주전 세터로 뛰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이 기량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잘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결국 대한항공은 황승빈을 트레이드하기로 했고, 이후 황승빈은 날아올렀다.
황승빈의 올 시즌 목표는 '팀원들의 믿음을 얻는 것'이다. 황승빈은 "너무 당연한 존재가 되고 싶다. 당연히 잘 해줄 거라는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 어렵게 리시브돼 '못 올리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잘 올려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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