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 몰려와 위기 빠진 돌고래떼…우두머리가 치매 걸린 탓?
얕은 물에 좌초된 돌고래 뇌에서 사람의 알츠하이머병과 비슷한 병리학적 증상이 관찰됐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됐다.
이에 따라 고래나 돌고래 떼의 좌초가 치매에 걸린 우두머리가 방향을 잘못 잡은 탓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과 영국 글래스고대학·에든버러대학 등의 연구팀은 최근 돌고래 4마리에서 알츠하이머 유사 증상이 관찰됐다는 내용의 논문을 '유럽 신경과학 저널(European Journal of Neuroscience)'에 발표했다.
좌초한 이빨고래류 24마리 조사
분석 대상은 큰코돌고래(Grampus griseus) 2마리, 참거두고래(Globicephala melas) 7마리, 흰부리돌고래(Lagenorhynchus albirostris) 5마리, 쇠돌고래(Phocoena phocoena) 5마리, 큰돌고래(Tursiops truncatus) 2마리다.
연구팀은 베타(β)-아밀로이드 펩타이드 플라크, 과인산화-타우(pTau) 축적, 신경아교증(gliosis)과 같은 알츠하이머병의 신경 병리학적 특징의 존재 여부를 면역조직화학(IHC) 방법으로 조사했다.
베타-아밀로이드 펩타이드 플라크는 신경 시냅스 활동 조절에서 역할을 하는 베타 아밀로이드(βA)라는 단백질이 뇌에서 제거되지 않고, 과다 생산·축적되면 끈적한 막이나 덩어리를 형성해 뇌에 쌓이는 것을 말한다.
신경세포를 안정화하는 역할을 하는 타우 단백질의 경우도 변형되면서 과인산화돼 축적되면 신경섬유 매듭(Neurofibrillary Tangles, NFT)을 형성해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경아교증은 중추신경이 손상을 입었을 때 그 주위에 신경아교세포(glia)가 분열 증식하는 것을 말한다.
4마리에서 알츠하이머 유사 증상
이러한 증상은 일반적으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인간의 뇌에서 관찰되는 것이다.
다른 참거두고래 1마리에서는 과인산화 타우 축적은 뚜렷하게 관찰됐지만,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는 보이지 않았다.
연구팀은 "돌고래에서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한 신경 병리학 증거가 존재하지만, 이것이 알츠하이머병 증상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사람의 경우도 78세로 사망한 노인을 검사하면 알츠하이머병 관련 신경병리학적 증상이 뇌에서 발견될 확률이 20~40%에 이르지만, 실제 살아있는 78세 노인이 알츠하이머병 증상으로 진단 받을 확률은 5~1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병든 리더' 이론 뒷받침
'병든 리더'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건강한 동물 무리가 혼란스러워하거나 길을 잃은 그룹 리더를 따라간 후 위험할 정도로 얕은 물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인간의 경우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인지 저하의 첫 번째 증상은 시간과 장소의 혼란, 잘못된 방향 감각"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좌초 현상이 흔한 참거두고래의 경우 모계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데, 암컷이 집단 이동을 주도한다"며 "참거두고래 소그룹의 리더가 신경 퇴행성 관련 인지 저하로 고통을 받는 경우 방향 감각 상실로 소그룹을 얕은 물로 이끌고, 결국 좌초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많은 고래·돌고래 종류, 특히 이빨고래류가 매우 협동적인 그룹으로 살아가고, 특히 이빨고래 여러 종에서 질병에 걸리거나 죽어가는 개체에 대해 보살피는 행동이 자주 관찰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런 이타적인 행동 때문에 인지 장애를 보이는 개체도 비교적 오래 생존할 수 있고, 다른 야생 포유류보다 노화와 관련된 장애에서 병이 더 발전된 단계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팀도 언급했듯이 좌초된 그룹에서 어느 것이 소그룹의 리더인지 찾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고, 때로는 좌초한 그룹에서 질병을 앓은 개체가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남세균 독소가 치매 원인일까
미국 마이애미대학 연구팀은 지난 2019년 3월 미국 공공과학 도서관 온라인 학술지(PLOS ONE)에 발표한 논문에서 "남세균이 생산한 독소인 베타-메틸아미노-알라닌(beta-Methylamino-L-alanine, BMAA)이 좌초된 돌고래 뇌에서 검출됐다"고 밝혔다.
BMAA는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 루게릭병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돌고래 14마리 중 13마리의 뇌에서 g당 20~748㎍(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 수준의 BMAA를 검출했다.
연구팀은 독소 노출과 신경병리학적 변화 사이의 상관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뇌 조직을 현미경으로 검사했는데, 고농도로 노출된 돌고래일수록 청각 피질에서 베타-아밀로이드 플라크가 증가한 것이 관찰됐다.
미국 연구팀은 "남세균 녹조 발생 여부와 먹이 종류가 돌고래 뇌의 BMAA 농도에 영향을 미치는데, 돌고래와 같은 최상위 포식자에게는 먹이사슬을 통해 BMAA가 축적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번 관찰은 호수와 연안 해역에서 녹조가 점점 더 빈번해지는 상황에서 BMAA에 대한 만성 노출이 인간 건강에 잠재적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8월 낙동강 보 수문 개방으로 낙동강 녹조가 밀려오면서 일시 폐쇄됐던 부산 다대포해수욕장 바닷물에서 부경대 이승준 교수팀에 의해 BMAA가 처음 검출된 바 있다.
이에 앞서 지난달 하와이 대학과 플로리다 대학 등 미국 연구팀은 하와이 연안에 좌초한 고래류에서 톡소플라스마(Toxoplasma gondii) 기생충에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를 '수생 생물 질병(Diseases of Aquatic Organisms)' 저널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고양이와 사람 등에 감염하는 톡소포자충 탓에 긴부리돌고래가 연안에 좌초돼 폐사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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