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게임이용장애’ 도입 확정적… 민관협의체 ‘무용론’ 부상

이다니엘 2022. 12. 2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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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질병 코드’로 불리는 ‘게임이용장애’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ICD) 결정 번복 없이는 사실상 국내 도입이 확실시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이용장애의 국내 도입 여부를 판가름하겠다며 지난 2019년 국무조정실에서 출범한 민관협의체는 애초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심지어 민관협의체 출범 당시 산정한 질병코드 도입 시기에도 오류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 “WHO 번복 없인 국내 도입 불가피”
게티이미지

1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민관협의체 무용론’이 정부와 국회, 게임 산업계 안팎에서 확산 중이다. 발단은 얼마 전 민관협의체 회의에서 통계청 관계자가 “WHO의 결정이 번복되지 않는 한 게임이용장애를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다. 그러자 참여자들은 “그럼 지금까지 무얼 한 건가”라며 황당해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내용이 사실인지 정부 측에 직접 확인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계청에서 제출받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관련 답변서’에서 통계기준과 담당자는 “현재까지 ICD에 수록한 내용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서 제외한 경우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통계법 제22조에 의해 국제 분류 기준의 특정 내용을 빼고 국내에 도입하면 통계법 위반”이라면서 “오히려 질병코드를 확장하면 했지, 일부를 제하고 들여온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은 4년여 동안 운영된 민관협의체의 ‘무용론’에 무게를 싣는다. 민관협의체는 WHO의 ICD 도입이 ‘권고’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지난 2019년 7월 국무조정실은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에 각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자 국무총리의 지시로 단일 협의체인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당시 국무조정실은 정책브리핑을 통해 질병코드 국내도입 여부를 이 조직을 통해 논의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문체부가 공동간사를 맡았고 교육부, 과기부, 여가부, 통계청 등 관계부처도 참여했다. 민간은 의학계, 게임계, 법조계에서 차출했다.

민관협의체 출범 당시 국무조정실은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국내에 도입할지 여부와 만약 도입한다면 언제 어떤 방식이 될지를 논의하는 기구”라고 조직 기능을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통계청에서 관련법을 근거로 ‘제외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자체적으로 게임이용장애 도입 여부를 연구·결정할 수 있다는 여론이 완전히 뒤집히는 형국이 됐다. 통계청이 민관협의체 참여자로서 이같이 중요한 사실을 수년간 공유하지 않은 건 상당한 의문점을 남긴다.

한 민관협의체 참여자는 “섭외 당시 게임이용장애 도입 여부를 민관협의체를 통해 결론 낸다고 들었다. 그게 안 된다면 (민관협의체를) 운영할 이유가 없지 않았겠느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또 다른 참여자는 “민관협의체 활동 로드맵을 ‘게임이용장애의 국내 연착륙을 위한 연구’로 새로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혼란스러운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게임이용장애 도입 시기도 오류

ICD-11 도입 시기 산정에도 크나큰 오류도 있었다. 국무조정실은 민관협의체를 출범하며 “WHO가 2022년 1월 발효하기 때문에 국내도입을 결정하는 KCD 개정은 빨라야 2025년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현재 한국은 ICD-9 기반의 KCD-8을 시행하고 있다. 준비 중인 KCD 9차 개정안의 경우 ICD-10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는 2025년 7월 고시해 2026년 시행 예정이다. 이대로라면 게임이용장애가 들어간 ICD-11는 일러야 2031년 1월 도입하는 KCD-10에서 반영된다. 다만 ICD-11이 30여년 만에 개정돼 내용이 방대하다보니 국내에선 2028년부터 3년간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최근 입장을 번복했다. 국무조정실은 이상헌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통계청이 준비중인 ICD-11의 KCD 도입 관련 일정을 고려해 논의해 나갈 계획”이라면서 2031년 시행을 기준으로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결국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 여부에 대한 강제력 있는 결정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도입 시기 산정에도 오류가 있었던 만큼 민관협의체는 전제부터 잘못된 채 출범했다고 볼 수 있다.

이상헌 의원은 “여러 정황을 종합해 봤을때 이 이슈에 대한 정부의 이해가 부족했거나 혹은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국민을 호도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통계법 제22조에 의거, 강제 조항임에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통계청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과 관련해 모든 사실을 국민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임 질병론’ 힘 잃어가는데… 도입 시 산업계 막대한 타격
코로나19 창궐 전인 2019년 11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인 ‘지스타 2019’에 구름 관중이 몰린 모습. 지스타조직위 제공

지난 6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연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질병코드 도입에 따라 국내 게임 산업 규모는 1차 연도에 4조원(약 20%), 2차 연도엔 4조8000억원(약 24%) 감소할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보고서에선 게임 산업 매출액이 20% 감소할 경우 총생산 감소 효과는 5조6192억원, 줄어드는 취업 기회는 3만6382명으로 추정했다. 2년간 44% 감소한다고 가정하면 총생산은 12조3623억원 줄고 취업 기회도 8만39명이 감소한다.

게임이용장애 도입에 대한 찬반 갈등도 적잖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내 인구수를 기준으로 사회적 비용을 산정했을 때 도입 반대에 1조6801억원, 찬성엔 1조6109억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각계에서 진행 중인 연구 결과는 ‘게임 질병론’에 힘을 떨어뜨리고 있다. 비교적 중립이었던 교육계뿐 아니라 ‘게임 질병론’에 무게를 뒀던 의학계에서도 게임을 중독 물질로 분류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의 과학적 근거 분석’ 연구를 진행한 안우영 서울대 교수 연구팀은 결과보고서를 통해 “WHO가 게임이용장애 질병 등재 과정에서 참고한 다수의 연구 논문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표본 대표성을 확인하기 어려워 연구 결과를 일반화하는 데에 제약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지난 7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개최한 발표회에서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를 해 온 조문석 한성대 교수는 ‘게임 과몰입’ 군으로 분류되던 이들이 대부분 1년 이내에 호전됐다면서 “게임 과몰입은 지속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기보다 개인이 처한 내외적 특성에 따라 발현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WHO의 질병코드 기준에 따르면 1년 이상 게임 관련 장애 행동이 지속하면 게임이용장애로 분류한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연구’에선 의료 전문가 대부분은 게임이용장애 치료에 앞서 게임을 하게 되는 원인이나 공존 질환(함께 앓고 있는 질환)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공존 질환을 게임 탓으로 오인하면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에선 의료진 90%는 우울증 같은 공존 질환이 없는 게임이용장애 환자는 10% 미만이었다고 응답했다.

현실적 대안은?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출범식 모습. 공대위 제공

이상헌 의원실에 따르면 현행법상 통계청은 ICD를 기준으로 KCD 개정 시안을 작성하고 심의위원회·국가통계위원회 등의 심사를 거쳐 개정 확정안을 고시한다. 이 과정에서 각계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있는데 민관협의체의 의견도 여기에서 청취할 것으로 보인다. 민관협의체가 진행 중인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 관련 연구가 어떠한 결론에 이른다 해도 참고용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결국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한국에 입성하지 않으려면 WHO가 지난 2019년 의결한 ICD-11에서 게임이용장애가 빠져야 한다. WHO는 매년 10월 ‘WHO-FIC(Family of International Classifications)’을 열고 보건관련 통계를 논의하는데 여기에서 ICD에 들어간 질병코드도 심의한다. 국내에선 통계청이 이 회의에 참여한다.

통계청 관계자는 “보건의학적으로 게임이용장애가 타당했는지에 대해 국내에서 정립이 되고 의견이 WHO에 제공되면 심사를 통해 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은 민관협의체의 결정 의견을 WHO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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