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해외 불법 체류하며 병역기피한 유학생 공소시효 정지"
병역법상 '국외여행허가의무 위반죄'는 즉시범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 인정돼 공소시효 정지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10대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간 뒤 해외여행 허가기간을 넘겨 불법 체류를 하다가 입영의무가 면제되는 나이가 되자 귀국한 40대가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됐다.
병역법상 '국외여행허가의무 위반죄'의 공소시효를 두고 하급심 법원의 판결이 엇갈렸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법원이 확실한 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45)에 대해 면소 판결을 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면소 판결은 공소제기된 사건에 대해 이미 확정판결이 있거나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등 형사소송 요건이 결여된 경우 유·무죄에 대한 판단 없이 소송절차를 종결시키는 종국 재판이다.
재판부는 "원심은 피고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었다는 점에 관한 아무런 증명이 없다고 봐 이 사건 범행의 공소시효가 정지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며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공소시효 정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A씨는 14세였던 1992년 미국으로 출국해 생활해왔다. 제1국민역에 편입된 18세부터는 당시 병역법에 따라 병무청의 '국외여행 연장 허가'를 받았으며 1∼2년씩 모두 네 차례 기간 연장이 이뤄졌다.
병역법 제70조(국외여행의 허가 및 취소) 1항은 병역의무자 중 25세 이상인 병역준비역 등이 국외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병무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 같은 조 3항은 '국외여행의 허가를 받은 사람이 허가기간에 귀국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기간만료 15일 전까지, 25세가 되기 전에 출국한 사람은 25세가 되는 해의 1월 15일까지 병무청장의 기간연장허가 또는 국외여행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병역의무를 기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이 같은 허가를 받지 않고 출국하거나, 국외에 체류하거나, 정당한 사유없이 허가된 기간내에 귀국하지 않을 경우 같은 법 제94조(국외여행허가 의무 위반) 1항에 따라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받게 된다. (이 사건 발생 당시 병역법에 따르면 3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
A씨는 최종 국외여행 허가 기간 만료일인 2002년 12월 31일 이후엔 추가 기간 연장 없이 계속 미국에 머물렀다. 병무청은 2003년 4월 A씨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2년 뒤인 2005년께 A씨의 비자마저 만료됐다. 비자가 없어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그는 불법체류 상태로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입영 의무가 면제되는 36세를 넘어 41세가 된 2017년 귀국했고 곧장 재판에 넘겨졌다.
1십은 A씨의 병역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A씨의 국외여행허가의무 위반죄의 공소시효가 완성됐다고 판단, 면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원용해 A씨의 국외여행허가의무 위반에 따른 병역법 위반죄는 국외여행 허가기간 만료일 15일 전까지 기간연장허가를 받지 않은 채로 허가기간 내 귀국하지 않았을 때 곧바로 범죄가 성립되고 완성되는 즉시범이라고 판단했다.
이와 달리 검찰은 해당 범죄의 경우 감금죄처럼 범죄가 종료될 때까지 구성요건적 행위가 계속되는 '계속범'이기 때문에 허가를 받지 않고 해외에 체류하다가 귀국했을 때를 공소시효 기산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처벌 조항에서 허가기간 내에 귀국하지 않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았을 뿐, 허가기간 이후에 귀국하지 않는 것까지 범죄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즉 마지막 허가기간이 만료된 2002년 12월 31일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돼 3년 뒤에 공소시효가 이미 만료됐기 때문에 2017년 12월에 제기된 공소는 면소 판결해야 된다는 결론이었다.
대법원도 국외여행허가의무 위반죄는 즉시범이기 때문에 마지막 허가기간 만료일부터 공소시효가 기산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2심 재판부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에게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진행되지 않고 정지됐기 때문에 검사의 공소제기가 유효하다고 봤다.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은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된다'고 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공소시효 정지에 관한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의 입법 취지는 범인이 우리나라의 사법권이 실질적으로 미치지 못하는 국외에 체류한 것이 도피의 수단으로 이용된 경우에 체류기간 동안 공소시효 진행을 저지해 범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형벌권을 적정하게 실현하는 데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따라서 위 규정이 정한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은 국외 체류의 유일한 목적으로 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범인이 가지는 여러 국외 체류 목적 중에 포함돼 있으면 족하다"며 "범인이 국외에 있는 것이 형사처분을 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고, 위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과 양립할 수 없는 범인의 주관적 의사가 명백히 드러나는 객관적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 한 국외 체류기간 동안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은 계속 유지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피고인의 국외 체류 목적 중에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을 인정할 여지가 있고, 달리 이와 양립할 수 없는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A씨가 유학을 위해 출국해 미국에 체류하던 중 18세가 돼 제1국민역에 편입됨에 따라 병무청장으로부터 국외여행허가를 받은 다음 4차례에 걸쳐 기간연장허가를 받은 점에 비춰 국외에 계속 체류하기 위해서는 병무청장으로부터 기간연장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정을 알았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최종 허가기간 만료일 이후 기간연장 허가를 받지 않고 계속 체류한 점 ▲광주·전남지방병무청장이 허가기간 만료일 이후 두 차례에 걸쳐 A씨에 대한 귀국보증인인 A씨의 외조부 등에게 국외여행 미귀국통지서를 송부한 점 ▲비자기간이 만료된 후 학업을 중단해 비자기간 연장을 받지 못하게 되자 불법체류 상태로 입영의무 등이 면제되는 연령인 36세에 이르는 날(2012년 11월 15일)을 넘어 2017년 4월 18일 귀국할 때까지 장기간 미국에서 체류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같은 범행의 공소시효 기산점에 관해 하급심의 판단이 통일돼 있지 않았는데, 이번 판결을 통해 '국외여행 허가기간 만료일'임을 명확히 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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