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BM 저평가에, 김여정 "곧 알게 될 일"…美안방 위협했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태평양으로 쏘는 ‘정상 각도 발사’를 예고했다. 그간 북한은 ICBM을 줄곧 고각으로만 발사해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완전한 장거리 타격 능력을 입증하지 못했다.
지난달 18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화성-17형’을 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의 20일 담화에서 이 같은 평가를 비웃듯 “곧 해보면 될 일이고 곧 보면 알게 될 일”이라고 겁박했다.
북한은 이번 담화를 통해 지난 18일 발사한 정찰위성 관련 운반체들의 실험 성과를 재차 강조하면서 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대해서도 자신했다.
김 부부장은 “만약 대기권 재돌입(재진입) 기술이 미흡했다면 조종전투부(탄두부)의 원격자료를 탄착 순간까지 받을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고각 발사만으로는 입증할 수 없고 실제 각도로 쏴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란 논거로 우리 전략 무기 능력을 폄훼하려 들 것이 뻔하다”며 “곧 해보면 될 일이고 곧 보면 알게 될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는 이른 시일 내 ICBM을 정상 각도로 발사하겠다는 뜻이다. 이 경우 1만㎞ 이상 떨어진 동태평양 공해상에 ICBM이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을 자극할까 미 본토 가까운 곳을 노리진 않았도, 미국의 안방과도 같은 곳으로 쏘겠다는 초고강도 행보다.
90년부터 극비리 재진입 기술 연구
그간 한국과 서방의 전문가들도 북한이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시험하기 위해 ICBM 정상 발사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ICBM을 정상 각(30~45도)으로 쏘면 마하 20(음속의 20배) 정도의 속도로 대기권에 재진입해 6000~7000도의 고열과 충격을 받는다.
반면 기존처럼 고각으로 발사하면 미사일이 거의 수직으로 올라갔다가 떨어지기 때문에 대기권 재진입 시 견뎌야 하는 고열 발생 시간이 짧고 온도도 덜 하다.
이와 관련,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북한은 동구권이 몰락하자 1990~92년 사이 러시아와 동구권 전문가 30~50명을 극비리에 북한으로 불러들여 재진입체 관련 방열 재료에 관한 기술 지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2017년 7월 북한이 쏜 ICBM급 화성-14형이 하강할 때 화염에 휩싸이는 모습이 포착돼 북한의 재진입체 기술 확보는 아직 불분명하다.
북한이 ICBM의 파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여러 목표물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다탄두 개별 목표설정 재진입체(MIRV)' 기술을 확보했는지도 관건이다. 김 부부장의 담화에는 이와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
권 전 교수는 “북한이 내년 4월 정찰위성 발사를 예고한 만큼 이때 여러 개의 위성을 한꺼번에 분리하는 기술을 선보인다면 MIRV 기술 확보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을 실제 타격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언 윌리엄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미사일방어프로젝트 부국장은 최근 미국의소리(VOA)와 인터뷰에서 “사거리가 1만5000㎞ 이상인 화성-17형으로 알래스카 및 미 서부의 미사일방어요격망을 피하기 위해 남극 쪽에서 올라오는 방향으로 쏘는 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며 “북한의 ICBM이 미국의 지상기반요격미사일 체제를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회성 시험에 누가 고성능 쓰나"
한편 북한은 이번 담화에서 정찰위성 운반체에 대한 국내 분석을 강하게 반박했다. 특히 저해상도로 촬영된 서울ㆍ인천항 흑백 사진과 관련해선 “누가 830s(초)에 지나지 않는 1회성 시험에 값비싼 고분해능(상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 촬영기를 설치하고 시험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전날 밝히지 않았던 운반체 발사 수에 대해선 “두 발의 운반체를 쏘았다”며 “첫 번째는 송신기로 신호만 송출해 지상관제소가 추적ㆍ수신하는가를 시험했고, 두 번째로 발사한 발사체로 이미 공개한 해당 시험을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군 당국은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MRBM) 두 발을 쐈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또 “위성 개발을 위한 시험이 아니라면 하등의 필요도 없이 파철 같은 구형 미사일은 왜 쏘았겠는가”라며 노동 계열 미사일을 재활용했다는 전문가들의 관측을 시인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와 관련,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상 식별 능력이 20m급 수준인 저해상도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실험을 했다고 해서 고해상도 데이터 전송 능력을 입증했다고 보긴 어렵다. 정찰위성의 촬영한 데이터를 고속으로 송·수신하는 것도 고난이도 기술”이라며 “이례적으로 일찍 반박에 나선 것으로 미뤄 김정은이 지시한 전략무기들의 진행 상황을 공개하는 선전선동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엿보인다”고 짚었다.
일각에선 “북한의 주장을 겁박으로만 보지 말고 차분히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 전 교수는 “무기체계 관점에만 집중해선 곤란하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군사뿐 아니라 정치ㆍ외교ㆍ경제 등 포괄적 안보 차원에서 대응 방법과 수단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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