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어 귀국한 '병역 꼼수'…공소시효 끝난 그의 반전 최후 [그법알]
[그법알 사건번호 121] 입대 피하려는 '꼼수'?…여행 허가 없이 미국 머무르다 마흔 넘어 귀국한 남성
중학생이던 지난 1992년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A씨. 2년 뒤 18세가 된 그는 병역의무가 있는 병역준비역이 됐습니다. 당시 시행 중이던 병역법에 따라 A씨는 병무청으로부터 국외 여행 허가를 받아야 미국에 더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A씨는 1년 남짓씩 허가를 연장하며 유학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네 번의 연장 허가를 마지막으로, A씨는 2002년 돌연 잠적했습니다. 그러자 병무청은 2003년 병역법 위반으로 A씨를 고발했는데, A씨가 한국에 들어온 건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A씨의 나이가 마흔이 지난 시점인데요. 알고 보니 A씨는 2005년 비자 기간이 만료된 후에 학업을 중단해 비자 연장을 받지 못해 불법체류 상태로 미국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입영 의무가 면제되는 36세를 넘겨 귀국한 겁니다.
A씨는 뒤늦게 재판에 넘겨졌지만, 죄를 물을 수 있는지는 재판 내내 쟁점이 됐습니다. 공소시효가 지났는지 문제부터 살펴봐야 했죠.
관련 법령은?
A씨에게 적용됐던 구 병역법(2002. 12. 5. 법률 제674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70조에 따르면, 병역준비역이 되는 18세 전에 출국한 사람은 18세가 되는 해의 1월 15일까지 병무청장의 국외 여행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허가 기간 안에 귀국하기 어렵다면 기간이 만료되기 15일 전에 연장 허가를 받아야 하죠.
현재까지도 국외 여행허가 의무 조항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다만 법이 개정된 2007년부터는 18세라는 나이 기준이 25세로 올라갔습니다. 25세가 되는 해 1월 15일까지 국외 여행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병역법 제94조에 따라 이 같은 허가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습니다.
법원 판단은?
지난 2018년 1심 재판부는 A씨가 당시 병역법을 어긴 것이 맞는다고 보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검사가 형이 너무 가볍다고 항소했지만, 지난 2019년 2심 재판부는 면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병역법 위반죄 공소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한 겁니다.
공소시효를 언제부터 세야 할까요? 당시 검찰은 A씨가 귀국한 2017년부터 공소시효를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하지만 2심 재판부는 A씨 연장 허가 만료일인 2002년 12월 31일부터 3년을 셌습니다. 검찰이 기소한 2017년은 이미 공소시효가 한참 지난 뒤라는 거죠. 그러면서 재판부는 “A씨가 정해진 기간 내에 귀국하지 않은 시점에 범죄가 성립하고 완성됐다(즉시범)”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공소시효 제도의 의의도 곁들여 설명했습니다. “범죄의 사회적 관심이 미약해져 가벌성이 감소하고 범인이 장기간 도피생활을 하면서 정신적 고통을 받은 점, 증거가 흩어지고 없어져 공정한 재판을 하기 어렵다”, “범죄 후 일정한 기간 기소되지 않으면서 형성된 사실상의 상태를 존중해 법적 안정을 도모하고 형벌권의 적정을 기하려는 데에 그 존재 이유가 있다”는 과거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인용했는데요. A씨 사건에서도 귀국일부터 공소시효를 계산하게 되면 제도 취지와 어긋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습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면소 판결을 파기해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낸다고 20일 밝혔는데요. 대법원이 공소시효를 센 기점은 2심 판단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A씨의 공소시효가 ‘정지’됐다고 봤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53조 제3항에 따르면,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는 정지됩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여기서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은 범인이 가진 여러 체류 목적 중 하나에 포함되어 있다면 충분히 인정됩니다.
대법원은 A씨가 병역법 위반이라는 형사처분을 피하기 위해 미국에 계속 머물러왔다고 판단했습니다. 네 차례나 기간 연장 허가를 받아왔던 것을 보면, A씨는 자신이 병역법을 위반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했을 거라는 거죠. 2002년 12월 31일부터 공소시효는 시작되지만, A씨의 체류 기간 내내 멈춰 있다가 귀국일부터 3년을 계산하는 게 맞는다는 판단입니다. 대법원은 “범인이 우리나라 사법권이 실질적으로 미치지 못하는 국외에 체류한 것이 도피의 수단으로 이용된 경우, 체류 기간 동안 공소시효 진행을 저지해 범인을 처벌하고 형벌권을 적절하게 실현해야 한다”며 공소시효 정지 규정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 그법알
「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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