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승, 이정현 영입은 신의 한 수였다
[이준목 기자]
지난 시즌 프로농구 최하위 서울 삼성 썬더스가 쾌조의 2연승을 달리며 두 자릿수 승리 고지에 올랐다. 12월 19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3라운드 경기에서 삼성은 16득점을 올린 베테랑 이정현의 활약을 앞세워서 울산 현대모비스에 78–68로 승리했다.
삼성은 10승 13패(.435)로 7위에 올라 6위 대구 한국가스공사(10승 12패)를 반 게임차이로 추격했다. 또한 지난해 10월 19일 이후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천적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7연패 사슬을 끊는 기쁨도 함께 누렸다.
삼성은 지난해 9승 45패(.167)로 최하위에 그치며 두 자릿수 승리 달성조차 실패했다. 이는 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서 54경기 체제가 정착된 이래 2005-06시즌 인천 전자랜드(현 가스공사)가 기록했던 8승 46패(승률 0.148) 에 이어 2번째로 낮은 승률이자, 삼성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이었다. 또한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내리 13연패로 마감했다.
시즌 내내 각종 사건사고로 어수선한 시즌을 보낸 삼성은, 성적부진과 선수단 관리 실패에 책임을 지고 구단 역사상 최장수 사령탑이던 이상민 감독이 불명예 사임해야했다. 그리고 올시즌에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삼성의 전력을 꼴찌 후보로 지목했다.
그런데 삼성은 2022-23시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불과 23경기 만에 지난 시즌 거둔 승수를 넘어서 벌써 10승 고지에 올라섰다. 시즌이 중반 가까이를 소화한 현재, 꼴찌 후보이던 삼성은 당당히 중위권에서 6강 경쟁을 펼치고 있다.
삼성은 지난 여름 은희석 연세대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한 데 이어, FA(자유계약선수) 최대어 중 한 명이던 이정현을 보수 총액 7억 원에 영입하여 반전을 노렸다.
은 감독은 현역 시절 삼성과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었던 데다, 대학무대에서만 오랫동안 활동하며 프로 감독으로는 '초보' 사령탑이었기에 파격 선임으로 여겨졌다. KBL에서 대학 출신감독들의 성공사례가 드물다는 것도 고개를 갸웃하게 했다. 이정현은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지만 30대 중반으로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에게 거액을 쓰는 데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두 사람의 영입은 삼성에게 있어서 '신의 한 수'가 됐다. 은희석 감독 부임 이후 삼성의 팀컬러가 가장 달라진 부분은 역시 끈끈한 수비다.
전통적으로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들을 앞세워 공격적인 농구가 강점이었다면, 올시즌에는 경기당 77점만을 내주며 최소실점 2위에 올라있다. 창원 LG(76.4점)와 더불어 70점대 실점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단 두 팀 뿐이다. 지난 시즌의 삼성은 무려 85.5점을 내주며 리그 최다실점을 기록한 팀이었다. 삼성이 74.4득점으로 득점력은 여전히 리그 꼴찌임에도 중위권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수비 덕분이다.
노장 이정현은 해결사가 부족하던 삼성 농구에 창의성과 뒷심을 불어넣었다. 이정현은 경기당 12.7점으로 마커스 데릭슨(13.8점)에 이어 팀내 두 번째이자 국내 선수중에서는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려주고 있다. 33.3%에 그치고 있는 저조한 야투율이 아쉽긴 하지만, 이정현의 진가는 역시 눈에 보이는 기록 이상으로 승부처에서 빛나는 결정력이다.
현대모비스전에서도 고비마다 이정현의 활약은 빛을 발했다. 경기 초반 고전했던 삼성은 2쿼터 들어 이정현을 중심으로 동료들의 스크린을 활용한 2대 2 플레이를 통하여 경기를 풀어나갔다. 이정현은 점프슛과 자유투 유도로 차곡차곡 득점을 적립했고 역전까지 이끌어냈다.
접전이 이어지던 4쿼터에는 이정현이 중요한 순간에 7득점을 터뜨렸다. 특히 현대모비스의 막판 추격이 매섭던 종료 2분 32초를 남기고, 이정현은 이매뉴얼 테리의 스크린을 활용하여 수비수를 따돌리고 오른쪽 45도에서 던진 결정적인 3점슛이 림을 가르며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최근 삼성은 은희석 감독 체제 이후 최대의 고비를 겪었다. 2라운드 초반까지 5할대 승률을 기록하며 7승 5패로 선전하던 이후 9경기에서 1승 8패의 부진에 빠지며 하위권으로 추락하는 듯했다.
이번에도 부상이 문제였다. 김시래, 이원석, 이동엽, 크리스찬 데이비드, 마커스 데릭슨 등 주축 선수들이 줄줄이 전력에서 이탈했다. 지난 시즌의 악몽이 되풀이되는 듯 했다. 자연히 이정현의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삼성은 지난 17일 전주 KCC를 제물로 5연패 수렁을 벗어난 데 이어, 현대모비스까지 잡고 연승 행진을 재개하며 고비를 벗어났다. 이정현은 KCC전에서는 4쿼터 18점 포함 시즌 최다인 30점을 폭발시켰다. 이어 현대모비스전까지 2경기 연속 승부처에서 좋은 활약을 선보이며 에이스 본능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득점은 물론이고 경기운영과 수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이정현의 존재감이 없는 삼성은 이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삼성은 올시즌 5점차 이내 접전만 벌써 10차례를 치렀고 5승 5패로 선방하고 있다. 지난 시즌과 달리 어떤 팀을 상대로 쉽게 무너지지 않고 최소한 접전으로 몰아갈 수 있었던 데는 이정현의 비중이 매우 컸다.
삼성은 이번 연말에는 가뜩이나 빡빡한 일정에 원정 경기만 연속으로 몰려있는 험난한 스케쥴이 기다리고 있다. 얇은 선수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으로서는 이정현의 체력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6강 경쟁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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