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점심시간] "여기 국밥 하나요" 음식만 주문한 게 아닙니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김지영 기자]
유독 길었던 가을이 지나가고 칼로 무 베듯이 겨울이 왔다.
"날이 너무 추워졌어요. 이제 진짜 겨울인가 봐요."
"그러게 말이에요. 하루 아침에 이렇게 기온이 바뀔 수도 있네요!"
요즘 같이 갑자기 기온이 변했을 때의 첫 인사는 역시 날씨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추위에 당황하는 날에도 우리는 어김없이 점심 메뉴를 고민해야 한다. 대화의 주제는 날씨 이야기로 시작해서 추운 날 먹고 싶은 음식으로 흐른다.
▲ 기본에 충실하여 다른 거창한 반찬이 필요 없는 국밥 |
ⓒ 김지영 |
국밥은 제육볶음, 돈가스와 함께 당당히 아재 음식 삼대장 중의 하나로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요즘은 레트로 감성을 찾는 2030 MZ 세대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고.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밥은 우리 식문화의 중심에 있다. 국이 없으면 밥 못 먹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국 또한 한국 식문화의 기본이다.
이 두 가지 음식 이름을 붙여서 만든 '국밥'. 기본에 충실하여 다른 거창한 반찬이 필요 없는 메뉴 국밥. 국과 밥에 전념한 나머지 이름마저 '국.밥'이라니 왠지 멋지지 않은가? 게다가 단출한 이름과는 다르게 국밥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국밥
술 마신 다음 날에는 황태를 푹 고아 뽀얗게 국물을 내고 두부를 넣고 계란을 풀어서 부드럽게 속을 달래 줄 황태 국밥이 제격이다. 콩나물을 한 줌 넣어서 끓이기도 하고, 칼칼하게 먹기를 원하면 청양 고추를 썰어 넣기도 한다.
황태에는 간을 보호해주며 해독과 숙취 해소에 효과적인 리신과 메티오닌이라는 아미노산이 풍부하다고 한다. 또한 콩나물은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해서 숙취 해소에 도움을 주는 음식이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원할 때는 콩나물 국밥을 먹기도 한다. 맑은 국물에 콩나물이 가득 들어간 단정하고 깔끔한 국물에 얌전하게 계란 한 알이 올라 앉아 있는 모양새는 언제 보아도 먹음직스럽다. 나는 보통 국밥에 밥을 말아 먹지 않고 따로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콩나물 국밥 만큼은 뜨거운 국물에 토렴해서 먹는 것을 좋아한다.
토렴이란 원래는 예전에 식은 밥을 데울 요량으로 뜨거운 국을 식은 밥 위에 부었다가 따라내고 부었다가 따라내는 식으로 밥을 데운 후 뜨거운 국물을 얹어서 주는 방식을 말한다. 토렴식으로 먹는 콩나물 국밥은 밥알이 국물을 가득 머금어서 살짝 퍼진 것이 매력이다.
칼칼한 것이 먹고 싶은 날에는 김치 콩나물 국밥이나 무를 넣고 고춧가루를 풀어 (경상도에서는 소고기 뭇국을 빨갛게 끓인다) 시원하게 끓여낸 소고기 국밥을 찾는다. 김치 콩나물 국밥을 선택하는 날에는 잘 익은 김치의 시큼하면서 얼큰하고 칼칼한 맛에 뜨거운 줄 모르고 한 입 두 입 넘기다 보면 어느새 추위가 훌쩍 물러가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경상도식 소고기 뭇국은 혹자는 육개장에 빗대기도 하는데 육개장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육개장은 양지를 삶아 식혀서 찢어 갖은 양념을 해서 또 각종 야채(주로 나물)를 넣고 끓이는 음식으로 간이 좀 더 세고 진한 맛이라면, 소고기 뭇국은 들어가는 재료가 간단하면서 (소고기, 무, 파, 콩나물 등) 손이 많이 가지 않도록 냄비에서 한 번에 조리가 가능하다.
또 무가 들어가서 진하기 보다는 시원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가볍지만 든든한 한 그릇이 먹고 싶을 때 자주 찾게 된다. 비슷한 음식으로는 따로 국밥이 있는데 기본 베이스는 소고기 뭇국과 비슷하고 가게에 따라 선지나 우거지가 조금 더 들어가는 식이다.
▲ 마음이 시린 날에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위로라는 말이 떠오른다 |
ⓒ 김지영 |
국밥은 마음이 추운 날에도 생각나는 음식이다. 우울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 왠지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지는 날이면 진한 육수의 돼지 국밥이 떠오른다. 나는 특히 내장이 가득 들어간 것을 좋아한다. 쫄깃하고 퍽퍽하고 기름진, 여러가지 식감이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뜨끈하고 뽀얀 국물과 함께 떠 먹으면 하루의 피로가 싹 다 풀리는 기분이다.
바깥 날씨와 상관없이 어떤 이유에서든 마음이 시린 날,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위로'라는 말이 떠오른다. 혼밥 메뉴로도 제격인데, 단출한 반찬이지만 뚝배기에 뜨끈한 국과 밥을 한 술 두 술 뜨다 보면 내가 혼자 와 있다는 생각을 잊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꾸밈도 없이 뽀얗게 우러난 국물을 우선 한 술 떠본다. 식당에 따라 염도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간을 보고 취향껏 새우젓을 조금 첨가한다. 돼지고기를 먹을 때는 그 형태가 수육이든, 보쌈이든, 족발이든, 국밥이든 새우젓이 꼭 함께 나온다. 찬 성질의 돼지고기의 소화를 돕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음식 궁합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맛있다.
부추 무침이 나오는 식당이라면 부추 무침도 듬뿍 덜어서 국밥에 넣어준다. 밥을 따로 먹는 것을 선호하는 나는 밥을 한 수저 떠서 입에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부추 무침을 고명으로 올린 국물을 한 술 떠서 먹고 중간 중간 돼지고기 건더기를 건져 먹는다.
반 쯤 먹었을 때가 되어서야 남은 밥을 말아서 먹는다. 처음에는 국물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나중에는 밥과 국물의 환상의 케미를 입 안 가득 느끼기 위해서. 반찬으로는 시원한 깍두기와 오이 고추 한 두 개면 충분하다.
소박하면서도 든든한 국밥 한 그릇을 먹을 때면, 뱃속이 따뜻해지면서 마음까지 데워지는 느낌과 함께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마음이 올라온다. 국밥의 다른 말은 위로가 아닐까? 그렇게 날도 춥고 마음도 추운 날에, 국밥이라고 쓰고 위로라고 읽는 음식을 한 뚝배기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면서 또 며칠 잘 버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다음 국밥이 또 먹고 싶어지기 전까지.
겨울이 더 깊어지면 굴 국밥을 먹으러 가야 한다. 해산물이 들어간 국물 특유의 연한 푸른 우윳빛이 감도는 매력적인 굴 국밥은 보양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매생이가 들어간 굴 국밥을 먹을 때는 입 천장이 데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매생이에 덮여서 아래의 국이 좀처럼 빨리 식지 않기 때문이다. 매생이 굴 국밥을 먹다가 입 천장 데인 적이 있는 경험자의 말이니 새겨 들으시기를. 국밥 한 그릇에 몸도 마음도 따뜻한 계절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의 개인 SNS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왜곡된 전기요금 부작용 누가 감당하나
- 이태원 생존자의 죽음... 모두 무너져내리는 기분입니다
- 여드레째 곡기 끊은 화물노동자가 윤 대통령에게
- '보배' 딸의 하루 늦은 49재, 남몰래 훔친 아빠의 눈물
- 이 글을 읽고 두물머리에 가면 좋습니다
- 이태원 분향소 찾았다 황급히 떠난 한덕수 향해 "섬뜩하다"
- 밭 한가운데서 볼 일... 깻잎 한 장에 깃든 불법 노동
- 일본 '반격능력 선언'에 북한 반발 "행동으로 보여줄 것"
- 국힘 "발목잡기" - 민주 "용산 아바타냐"... 예산 협상 '평행선'
- [오마이포토2022] 환노위원장 만난 정의당 "노란봉투법 꼭 만들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