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명함 없이 일했던 진정한 가장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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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이 흔하지만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를 냈다. 우리가>
남대문시장에서 칼국수 집을 운영하는 72세 손정애씨, 'K장녀'로 태어나 '집사람'으로 살아온 자원활동가 62세 장희자씨, 딸과 아들에 손녀딸까지 키웠으며 서예를 즐기는 64세 소통 전문가 인화정씨, 32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며 오빠 학비를 대고 세 딸을 키운 고등학교 3학년 68세 윤순자씨, 복사꽃 마을 부녀회장 경력 10년째인 과수원 대표 66세 이광월씨, 농사지으며 세 아들을 키운 파 농사 전문가 74세 김춘자씨, 37년 경력 베테랑 광부 66세 문계화씨, 20여 년 동안 봉사활동을 했고 아이들에게 동화 구연을 하는 이야기 할머니 64세 이안나씨, 결혼 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틈틈이 배움과 도전을 멈추지 않은 20년 경력 관광해설사 69세 김태순씨, 결혼 후 성차별 심한 시아버지와 한량 남편을 데리고 아이들을 키운 후 50대에 자신의 삶을 살게 된 55세 교육 전문가 이선옥(가명)씨, 열네 살에 처음 일을 시작했고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앞장섰으며 파업지지 편지를 보내는 페미니스트 베테랑 미화원 65세 김은숙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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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규 기자]
▲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책 표지 |
ⓒ 휴머니스트 |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에 나오는 주인공 11명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우리 어머니들이다. 단지 명함이 없고 "그들의 노동을 사회에서 '일'로 인정하지 않았을 뿐" 쉼 없이 평생을 일한 사람들이다(4쪽). "가족의 생계부양자였으며, 진정한 가장"이었던 'N잡러' 여성 노동자들이다(148쪽).
"어느 날 60세 이상 여성들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 가사 및 육아 도우미와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의 절반이, 돌봄 및 보건 서비스 종사자 10명 중 4명이 사라지게 된다. 6만여 명의 가사 및 육아 도우미가 출근하던 가정에서, 22만여 명의 돌봄 및 보건 서비스 종사자가 일하던 요양병원과 복지시설에서, 55만여 명의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이 오가던 사무실과 길거리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손과 발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 그 공백은 사회를 멈춰 세우고도 남을 만큼 크지만, 그만큼 중요한 그 노동은 너무도 값싼 비용으로 유지돼왔다." (107~109쪽)
딸들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재밌게 살고, 힘들게 살지 마." (129쪽)
딸들이 자신과 다른 시간을 살기를 바라는 어머니들의 바람은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일하는 여성이 당연한 세상으로 변했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은 아직도 여성의 어깨를 더 무겁게 누르고 있다"(137쪽). 딸들 사이의 격차가 커졌으며 설명하기가 더 어렵고 복잡해졌을 뿐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딸들이 일을 시작한 2000년대, 눈에 보이는 차별은 대부분 사라진다. … 하지만 딸들은 생각과는 다른 현실에 당혹감을 느낀다."
(142~143쪽)
"여성만 일과 가정의 양자택일을 요구받는 상황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어머니 세대가 일 대신 가정을 선택했다면, 딸 세대는 가정보다 일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졌을 뿐이다. 딸들 간의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145~146쪽)
이상하게, '요즘 세상에 성차별이 어디 있어?'라고 화를 내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리적 성별'이라는 껍데기를 내려놓고 존엄성을 지닌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본다면, 차가운 숫자들이 의미하는 현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합당한 사회경제적,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우리 사회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내 가족이고 이웃이며 건물과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다. 세상에 대한 시선을 조금만 움직인다면, 누가 화를 내고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많이 변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하는 일에 따라 노동 가치를 차별하고 가사와 돌봄을 특정 성별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떠넘기고 있다. 학력과 학벌, 일하는 장소와 지위, 자격증과 직업이 어떤 사람의 가치를 보여준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사람의 가치는 숫자나 등급으로 매길 수 없으며, 모두가 똑같다. 이 단순한 생각이 우리가 그토록 자주 입에 올리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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