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해진 조폭①]3세대로 변화한 조폭… ‘M&A·주가조작’까지 마수
"마약 손대면 조직 와해" 옛말… ‘돈되면 뭐든지 다 한다’
[아시아경제 허경준 기자] 조직폭력단체(조폭)가 시대 변화에 따라 합법을 가장한 사업에 뛰어들면서, 조폭이 저지르는 범죄가 갈수록 지능·고도화되고 있다. 과거 갈취나 폭력을 일삼는 원초적인 범죄 형태에서 기업형 조직으로 변모하거나 조직원들을 감축하고 타 조직과의 연대를 강화하면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조폭이 생존 전략을 다변화하면서, 사회의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과거와 달리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조폭 관리는 느슨해지고, 이른바 ‘기업형 조폭’으로 불리는 폭력조직들의 현황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어서 조폭의 진화현상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0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현재 검찰이 일반 관리하고 있는 조폭은 236개 계파, 3745명이다. 특별관리 대상은 지난해 기준 173개파, 505명에 달한다. 2017년 157개파 453명, 2018년 167개파 468명, 2019년 169개파 465명, 2020년 163개파 594명으로 검찰의 특별관리 대상 조폭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2세대 조폭, 유흥업소 등 운영… 갈취·폭력으로 이권 개입1940년대부터 나타난 조폭은 정치세력과 연계돼 소위 ‘정치깡패’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가 4·19혁명을 기점으로 사라졌다. 이후 1960년대 후반 대대적인 단속에서 살아남은 조폭들이 명동과 충무로, 을지로 등 중심가에서 업소들로부터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고 폭행 등 범죄를 저지르면서 1세대 조폭의 탄생을 알렸다.
1970~80년대 조폭들은 정계와 재계의 인사들과 친분관계를 맺고 세력을 다지면서 서방파·양은이파·오비파 등 신흥조직으로 번성, 전국적으로 수많은 조직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영세상인을 상대로 돈을 빼앗고, 도심 한복판에서 칼부림을 하면서 상대 조직에게 세력을 과시했다. 또 조직 간의 연합으로 범서방파와 같은 거대 조폭이 등장하면서, 마피아·야쿠자·삼합회처럼 거대 조직으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는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조폭 소탕에 나섰고 전국 단위 조직의 두목급 인물들이 구속되며 세력이 약화됐다.
범죄와의 전쟁 이후 조폭은 음성적으로 각종 이권과 분쟁에 개입해 청부폭력을 행사하거나 고리대금업(사채), 성매매업소, 유흥주점, 사행성오락실 등을 직접 운영하는 방식으로 조직자금을 마련하면서 명맥을 이어왔다. 현재까지도 지방에 거점을 두고 있는 소규모 조폭들은 이 같은 행태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3세대 조폭으로 불리는 이들은 2010년 이후 기업인수·합병, 주가조작에 관여하는 등 갈수록 지능·기업화하고 있다. 조폭들이 갈취나 폭력 등 눈에 보이는 불법행위로 입건되는 사례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조직원의 수를 늘리면서 세를 과시하기보다는 조직을 슬림화하면서 조직의 수괴가 사업가로 변신하거나, 조직 자체가 사업체로 위장해 ‘기업형 조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역 활동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자선단체에 기부 등을 하면서 겉으로는 건실한 사업가 행세를 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전북 전주지역 조폭 두목이었던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2010년 쌍방울 인수 과정에서 쌍방울 2대 주주의 지분을 인수한 A씨와 공모해 80개 차명계좌로 수천여 차례에 걸쳐 통정·가장매매, 고가·물량 소진 매수, 허수매수 주문 등으로 350여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으로 김 전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조폭이 약 230억원대 무역금융 대출사기에 가담(서방파, 수유리파, 인천부평식구파, 광주백운동파)하거나, 해외 인터넷 불법 선물 사이트를 개설해 약 19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사례도 있다. 또 약 2400억원대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 개설, 440억원대 불법 스포츠토토 도박사이트 개설과 보이스피싱 범죄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필로폰 등 ‘마약’까지 손대는 신흥 조폭… 야쿠자도 개입1~2세대, 3세대 초기 조폭들은 "마약에 손대면 조직이 와해된다"며 마약 유통·투약과는 거리를 뒀다. 하지만 최근 조폭들은 ‘돈되는 것은 무엇이든 한다’는 방식으로 운영 기조가 달라지면서, 마약시장까지 뛰어들었다. 조직 유지 차원에서 마약을 금기시하던 조폭들이 최근에는 마약을 조직의 자금줄로 인식해 마약에 적극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는 조폭들이 대규모 마약 밀수·밀매 등 유통에 개입하거나, 유통 과정에서 밀수·밀매업자들의 신변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고 SNS 등을 통해 직접 판매까지 나서고 있는 것으로 수사기관은 보고 있다.
부산을 거점으로 하는 하단파와 사상통합파의 두목과 조직원들이 대량의 필로폰을 판매하고 투약까지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채팅앱을 통해 필로폰을 유통한 조직이 검거되기도 했고, 일본 야쿠자와 대만 폭력조직이 필로폰 8649g을 밀수하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1960년대 무렵에는 조폭들이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는데, 정부에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인 이후에는 조직이 와해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손조차 대지 않았다"며 "최근에는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우선 마약의 문턱이 낮아지고 공급량이 많아지면서 조폭들이 ‘우린 건달이야, 우린 달라’라는 문화도 없어져 가고 있다"고 말했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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