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 비싸서, 맛없어서…머나먼 건강식탁 [청년 식생활 빨간불①]
“점심에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자주 사 먹어요. 떡볶이랑 볶음밥을 같이 주문하면 더 맛있는데, 혼자 가면 볶음밥을 먹을지, 말지 한참 고민해요. 그렇게 주문하면 비싸지거든요. 친구랑 둘이 가서 먹을 때는 고민 없이 볶음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서울 용산구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유수빈(23세)씨는 매일 점심을 외식으로 해결한다. 1일 수빈씨가 학교 앞에서 고른 메뉴는 고기가 들어간 떡볶이와 볶음밥이다. 떡볶이만 주문하면 가격은 7000원이지만, 볶음밥을 추가해 1만원을 지출했다. 수빈씨는 “혼자 볶음밥까지 먹는 것은 평소보다 약간 사치”라고 말했다.
수빈씨는 식사 메뉴를 정하는 기준으로 맛과 가격을 꼽았다. 수빈씨가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벌어들이는 소득은 50만원, 이 돈에서 주거비를 포함한 모든 생활비를 지출한다. 외식물가가 비교적 저렴한 대학가에서 수빈씨가 한 끼에 지출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원래 5000~6000원이었다. 하지만 물가가 급등한 최근에는 최소한 8000원은 지출해야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수빈씨는 8000원 내에서 그날 가장 입맛에 당기는 메뉴를 찾는다.
수빈씨: “비빔국수, 파스타, 김치볶음밥을 좋아해요. 간단하고 맛도 좋은 음식을 찾아 먹어요. 집에서 데우기만 하면 되는 마트 PB제품도 저렴하고 맛있어서 자주 사 먹어요. 냉동볶음밥이나 샌드위치가 후다닥 먹기 좋아요. 메뉴를 고를 때 건강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너무 짜거나 달거나 기름진 음식이 해롭다는 건 아는데, 당장 눈앞에 버블티를 먹기 전에 ‘여기에 당이 얼마나 들어있나’를 고민하지는 않아요. 지금 딱히 아픈 곳 없이 건강해서 그런 고민을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이날 떡볶이와 볶음밥은 저녁까지 수빈씨 곁을 지켰다. 수빈씨는 1시부터 2시까지 1시간가량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남은 음식을 챙겨 오후 수업에 들어갔다. 오후 3시부터 4시10분까지 전공수업이 진행됐다. 수업이 끝난 직후 수빈씨는 중앙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위한 공부를 했다. 코딩테스트를 10문제를 해결하고, 적성검사 기출문제도 1회 풀었다. 자바스크립트 교재 한 챕터를 읽고, 친구들과 준비 중인 공모전 과제도 해결했다. 점심에 남긴 떡볶이와 볶음밥은 오후 7시경 수빈씨의 저녁식사가 됐다.
직장인의 식생활도 대학생 수빈씨와 큰 차이가 없는 모습이다. 경제적인 사정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음식 선택의 최우선 기준은 맛이다. 외식과 배달음식에 의존하는 경향도 변하지 않는다. 회사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직장인 정도혁(27세)씨는 “회사 구내식당이나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며 “메뉴를 선택할 때 건강보다는 맛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혁씨가 재직 중인 회사는 구내식당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도혁씨는 평일 점심과 저녁 두 끼를 구내식당에서 해결한다. 아침잠이 많은 탓에 아침식사는 거르는 날이 대부분이다. 주말에는 집 근처 식당에서 외식을 하거나, 배달음식을 먹는다. 배달음식은 일주일에 3번가량, 주로 저녁 식사로 이용한다. 도혁씨는 따듯한 국물을 곁들인 식사를 즐긴다. 밥보다는 면 요리를 좋아하고, 맵거나 짭짤한 자극적인 맛을 선호한다.
도혁씨: “출근 시간이 오전 10시라서 퇴근도 오후 7~8시에 하고 있어, 회사에서 점심과 저녁식사를 모두 해결해요. 구내식당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메뉴도 다양한 편이라서 정말 편리합니다. 회사 근처에서 외식을 하면, 한 끼에 적어도 1만5000원 이상 지출하게 됩니다. 구내식당이 없었으면 엄청 불편했을 것 같아요. 대학생 때부터 독립해서, 자취를 한지 5년 정도 됐는데,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먹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아침 거르고 외식·배달음식… 냉장고는 ‘텅’
청년들의 식탁은 안녕하지 못하다. 한국가정과교육학회지에 게재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식생활교육 프로그램 개발’ 논문에 따르면 청년(19~39세)들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하면서 독립해 혼자 생활하며 건강 문제, 식생활 문제를 겪는다.
연구에서 청년들은 식사량은 충분했지만, 질은 고려하지 못한다(47.8%)고 답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음식의 양이나 질을 챙기지 못하는 이들(50.3%)도 적지 않았다. 혼밥하는 청년들이 선택하는 식사 메뉴 1위는 라면, 그 뒤로는 빵, 삼각김밥, 샌드위치가 이어졌다. 혼밥이 식품 다양성을 저하하고 영양학적 불균형을 유발한다는 우려다.
연구진들은 청년의 식생활에 △아침 결식 △잦은 가공식품·패스트푸드 섭취 △외식 의존 △잦은 혼밥(혼자 밥 먹기) 등의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들의 식탁과 냉장고는 연구진의 우려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청년에게 아침식사는 귀찮기만 하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자취 중인 직장인 노모(35세)씨는 아침식사를 거르다가, 이달 들어 식사 대용으로 약과를 1개씩 먹고 있다. 노 씨는 “아침에는 식사를 차려 먹기 귀찮고, 시간도 없다”며 “뭐라도 먹고 나가자는 생각으로 인터넷에서 약과 40개를 주문했다”고 말했다.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그는 약과와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1일 아침은 약과, 점심은 외식으로 돈가스·우동을 먹었다. 저녁 역시 외식으로 라볶이, 튀김, 맥주를 먹었다. 2일에는 아침에 약과를 먹고, 점심에는 외식으로 동태탕을 먹었다.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3일에도 약과로 하루를 시작했다. 점심은 떡볶이 밀키트를 조리해 먹었고, 저녁은 돼지고기와 아보카도가 들어간 포케를 배달시켜 먹었다.
외식·배달음식이 끼니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 먹는 음식의 특성상 다양한 반찬 없이, 단일 메뉴로 식사를 하는 날이 많다. 자취를 하는 20대 취업준비생 이소운씨는 매일 아침식사로 우유 한잔과 바나나 1개를 먹는다. 6일 아침식사 역시 바나나와 우유를 먹었다. 점심에는 외식으로 부대찌개를 먹었고, 저녁식사는 즉석밥과 즉석 어묵탕으로 해결했다. 7일 아침도 바나나와 우유를 먹었다. 점심은 식당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저녁식사로는 냉동 너겟과 볶음밥을 조리해 케첩을 곁들여 먹었다.
외식·배달음식 의존도가 높다 보니, 청년들의 냉장고는 할 일이 없다. 자취를 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차종관(28세)씨의 냉장고에는 맥주 2캔과 다양한 숙취해소제가 항상 자리 잡고 있다. 요깃거리가 될만한 것은 얼마 전 생일선물 받은 귤 한박스가 전부다. 나머지 케첩과 과일청에 대해 종관씨는 “살다 보니 냉장고에 남아있다. 왜 남아있는지는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도혁씨의 냉장고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맥주 2캔과 땅콩, 과일잼이 전부다. 노씨의 냉장고에는 고추장, 된장 등의 양념류와 아몬드 음료가 들어있다. 냉동실에는 인터넷에서 주문한 떡볶이 밀키트가 들어있다. 소운씨의 냉장고에는 고추장과 남은 배달음식이 들어있다. 콜라, 요구르트, 주류, 토닉워터, 우유, 오렌지주스, 생수 등의 음료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냉동실에는 너겟, 핫도그, 만두 등 냉동 즉석식품이 들어있다.
자극적인 ‘아는 맛’ 떠나야… 같이·즐거운 식사 필요
메뉴는 물론 식사 습관까지, 청년들의 식생활은 개선의 여지가 컸다. 최정은 한양대병원 임상영양사, 이나래 세브란스병원 임상영양사와 함께 수빈씨, 도혁씨를 비롯한 청년들의 식탁과 냉장고를 들여다봤다. 최 영양사와 이 영양사는 아침식사를 거르는 습관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열량이 높은 한가지 메뉴만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습관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영양사: “아침식사를 통한 영양소 공급은 인지능력을 향상시키고, 혈당을 조절하며, 저녁식사의 과식을 예방하여 체중 조절에 도움이 됩니다. 아침식사 결식은 두뇌활동에 필요한 에너지 부족, 고혈당, 체중 증가, 각종 대사질환 유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게다가 섭취한 일품요리가 공통적으로 고열량, 고지방, 고나트륨 식품이며 한두 가지의 식재료만으로 구성됐습니다. 이런 특징을 지닌 일품요리만 자주 먹으면 체지방이 증가하고, 편중된 영양소 섭취로 인한 영양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어요. 비빔밥이나 소고기야채죽처럼 맛이 담백하면서도 곡류, 어육류, 채소류, 지방류가 균형적으로 함유된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청년들의 식탁에서 과일이나 채소류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공통점도 문제로 꼽혔다. 오직 맛을 기준으로 식사 메뉴를 선택하는 습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자극적인 ‘아는 맛’만을 즐기지 말고, 식재료 고유의 맛을 경험해보려는 시도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영양사: “곡류, 고기·생선·달걀·콩류, 채소류, 과일류, 우유·유제품류, 유지·당류를 골고루 섭취해야 하는데, 청년들의 식사 대부분이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3가지 영양소만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간편하게 먹더라도 영양소를 균형 있게 섭취할 수 있는 메뉴가 있어요. 가령 김밥, 채소와 단백질이 포함된 샌드위치, 비빔밥 등이 좋습니다. 또 냉동식품이나 가공식품보다는, 다양한 재료가 포함되어 있는 밀키트를 구매하는 것이 낫습니다. 양파나 양배추처럼 손질이 간단하고 구하기 쉬운 채소를 따로 구매해 조리할 때 첨가해보기를 추천해요. 집에서 요리를 직접 하기 어렵다면, 적절한 외식메뉴나 배달음식을 선택할 수 있어요. 달고, 짜고, 매운 자극적인 맛보다는 담백하고 식품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식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튀기거나 기름에 지진 음식 보다는 찌거나 삶은 음식을 권하고 싶습니다.”
혼자 ‘해치우듯’하는 식사는 의식적으로 피해야 한다. 어떤 음식을 먹는지와 별개로, 혼밥은 식사량과 소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쁘고 귀찮아도, 함께하는 식사자리를 가지라는 조언이다. 서희선 가천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혼자 밥을 먹으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더 빨리 먹게 된다”고 경고했다.
서 교수: “다른 사람과 같이 밥을 먹으면 대화를 하거나 상대와 먹는 속도를 맞추면서 음식을 더 오래 씹게 되고, 포만감을 충분히 느끼게 됩니다. 불편한 직장 상사나 어색한 지인이라도 무조건 같이 밥을 먹으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또 날마다 매 끼니를 빠짐없이 다른 사람과 함께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주기적으로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친밀한 사람들이 모여,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지요. 신체는 물론 정서적으로도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세살 식습관 여든까지… “쌤, 급식에 통곱창 해주세요”
청년들의 식탁은 언제부터 탈이 나기 시작했을까. 식습관 형성을 위한 지도 없이 방치된 청소년기가 문제의 시발점으로 지목됐다. 경기도 소재 고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허진여 영양교사는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에 가장 예외 없이 해당하는 것이 바로 식습관”이라며 바람직한 식습관을 형성하기 어려운 교육환경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허 교사: “학교 급식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인기 있는 메뉴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신기하게도 초·중·고등학교까지 모든 급의 학교에서 순댓국과 감자탕이 꼽혔어요. 아이들 입맛에 맞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국밥류가 인기 있습니다. 영양교사들이 학술회에서 이 현상에 대해 나름의 원인을 추적했어요. 대형 식품기업들이 판매 중인 밀키트, 즉석식품(HMR)에서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순댓국, 감자탕 등 국밥류의 판매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1인 가구뿐 아니라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도 이런 제품을 소비하는 경향이 확산하고, 어릴 때부터 먹은 ‘익숙한 맛’이 아이들의 기호로 확립되기 쉬운 거죠”
허 교사는 급식 잔반을 분석하며 청소년들의 우려스러운 식습관을 체감하고 있다. 한식문화 경험을 돕기 위해 한식 중심 반찬을 마련한 날이었다. 기본적인 밥과 국은 검정콩밥, 소고기뭇국으로 준비했다. 반찬은 총 4가지로 구성했다. 당근과 양파 등 갖은 채소와 함께 볶은 돈육간장불고기를 제공했다. 밥과 다른 반찬을 곁들여 싸 먹을 수 있도록 양배추쌈과 수제 쌈장을 넣었다. 채소류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도록 실곤약 채소무침과 배추김치도 제공했다.
이날 허 교사가 제공한 식단은 영양학적으로 완벽에 가까웠다. 탄수화물인 밥에 검정콩을 섞어 식물성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함께 섭취하도록 했다. 국에 들어있는 소고기와 주찬인 돈육간장불고기로 단백질과 지방을 섭취할 수 있도록 했다. 양배추쌈, 실곤약 채소무침으로 식이섬유, 비타민, 무기질 섭취도 보장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입맛은 허 교사의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다.
허 교사: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은 채소가 많이 들어간 실곤약 채소무침에서 실곤약 면만 건져 먹었습니다. 나머지 채소들은 모두 잔반통에 버려졌죠. 검정콩밥의 검정콩 역시 대부분 버려졌습니다. 콩만 골라내고 밥을 먹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돈육간장불고기는 꽤 선호되는 반찬이지만, 아이들의 눈에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음식으로 취급되기도 해요. 그래서 이날은 100명 정도의 아이들이 급식을 먹으러 식당에 아예 오지 않았습니다. 큰 아쉬움이 남았던 하루였어요.”
식생활 교육에는 수업 시수가 충분히 할애되지 않는다. 영양교사도 수업권이 있지만, 법적으로 보장되는 영양교육 시수는 연 2회에 그친다. 허 교사에 따르면, 실제 교육은 한 학기에 1회 창체(창의적 체험활동)시간을 활용해 영상을 송출하는 요식행위에 그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무리 이상적인 식단을 마련해도, SNS나 대중매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음식들이 청소년들의 입맛을 지배한다.
허 교사: “아이들이 마라탕, 마라샹궈, 통곱창 등 SNS나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음식을 굉장히 먹고 싶어 해요. TV 프로그램에 나온 음식을 보고 와서는 제게 ‘쌤(선생님), 우리도 이런 거 해주세요!’ 하고 사진을 내밀기도 해요. 채소 샐러드, 나물류 등 영양학적으로 뛰어난 식단을 마련하면, 그날은 잔반량이 늘어납니다. 대중매체가 자극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음식이 유행하도록 부추기고, 아이들이 그런 유행에 그대로 노출돼요. 성인이고, 영양교사인 저도 자극적인 음식을 보면 ‘맛있겠다’, ‘먹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런 교육 없이 아이들이 스스로 식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절제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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