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전기요금 부작용 누가 감당하나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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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기]
▲ 한국전력 서울본부 전력수급 상황 현황판 모습. 2022.12.5 |
ⓒ 연합뉴스 |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상위 10개 나라에 속한다. 1인당 전기 사용량이 캐나다와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일본, 프랑스, 독일 등과 비교하면 월등히 많은 수준이다.
전기 사용량이 많은 나라 순위는 전기요금이 낮은 나라 순위와 비슷하다. 쌀수록 많이 사용하니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주택용 전기요금을 비교하면 대한민국은 MWh당 103.9달러로, OECD 회원국 중에서 4번째로 낮고 OECD 평균 170.1달러와의 격차도 매우 크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경우 이보다 심하지는 않지만 OECD 평균 미만이고, 주요 선진국 중에서는 미국과 캐나다 다음으로 낮다.
이렇게 전기요금이 낮은 것은 발전원가의 변동이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요금 결정을 정부에 맡기게 되면 정책적 고려, 정치적 이해 관계, 요금인상에 대한 국민적 저항 등의 이유로 요금인상을 꺼릴 수밖에 없다. '요금 폭탄' 운운하며 국민을 선동하는 후진적 정치와 이를 받아쓰는 언론의 행태가 문제를 가중시킨다.
전력 도매가격이 상승해도 낮은 전기요금이 유지되는 이런 구조적 병폐의 최대 수혜자는 값싼 산업용 전기를 공급받는 대기업, 재벌 기업집단 그리고 높은 도매가격에 전력을 판매하는 민자 발전사들이다. 그리고 최대의 피해자는 한국전력공사(한전)와 발전공기업, 한전의 적자와 부채를 짊어져야 할 현재와 미래의 대다수 국민들이다.
사실상 정부가 결정하는 의사결정 구조 하에서 만들어지는 전기요금의 경직성은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중대한 걸림돌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에너지 전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아직도 요원하다. 가계와 기업이 이 문제의 절박성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값싸고 경직적인 전기요금이 경제 주체들의 뒤처진 인식과 안이한 행태를 부추긴다. 국민이 바뀌어야 정치가 바뀌고 정치가 바뀌어야 삶과 미래가 바뀐다.
경직적인 전기요금 체계, 원가보다 낮은 전기요금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21년 1월부터 도입된 것이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이다. 연료비 변동분을 주기적으로 전기요금에 반영하여 가격신호에 따라 합리적인 전기 소비를 유도한다는 것이 제도의 도입 취지이다. 전기요금이 휘발유 가격처럼 원료 가격 변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동할 수 있다는 것도 기대효과였다.
그러나 연료비 조정 상한선이 kWh당 3원으로, 이런 취지와 기대효과를 실현하기에는 너무 낮았다. 게다가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했으나 그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2021년 2분기와 3분기 연속으로 연료비 상승을 반영해 전기요금을 인상하려 했으나 정부 개입으로 무산되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국민들의 고충과 물가상승 우려가 이유였다.
최근 수년간 지속되어 온 글로벌 경제의 연료 가격 상승이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못했다. 그 결과 전기요금이 발전원가에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고, 한전의 적자와 부채가 늘어나는 추세가 지속되었다. 한전의 부채 문제는 올 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천연가스를 비롯한 연료가격이 급등하면서 매우 심각해졌다. 이렇게 급등하는 원가를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한다면 한전의 부채 역시 급속히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했다.
▲ 한국전력이 발전사들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도매가격인 SMP(계통한계가격)의 상한제가 12월부터 1개월 단위로 시행된다. 사진은 서울 한 주택가 전기계량기. |
ⓒ 연합뉴스 |
실제로 한전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kWh 당 평균 94원이었던 전력 도매가격이 연료가격 급등으로 인해 지난 9월 평균 177원까지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그러나 전력 소매가격(전기요금)은 2021년 한해 동안 kWh당 108원에서 116원으로 상승하는 데 그쳤다. 한전이 발전사에 지불하는 도매가격은 급등했지만 한전이 전력 소비자로부터 받는 소매가격은 소폭 증가에 그쳐 전력 판매가 이뤄질 때마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이 이어져 왔던 것이다.
산업부는 한전의 올해 말 적자 폭이 30조 원을 넘어갈 것이고 내년 3월까지의 한전 채권 발행 잔액(72조 원)이 현행법상 발행한도(40조 원)를 초과하는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한 미봉책이 한전의 채권 발행한도를 늘리는 법 개정이다. 이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안'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많은 논란이 일어났다.
부결된 주된 이유는 채권 발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자 부담을 늘리고 적자를 지속하여 위험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뒤늦게나마 문제 해결에 행정부와 입법부가 팔을 걷고 나섰는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고 발등의 불만 끄겠다는 미봉책만 보이니 한심한 노릇이다.
원가 미만의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사채 발행을 최소화하고 재무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선에서 논란을 봉합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강요에 의한 무리한 재무개선은 한전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요금인상으로 발생하는 취약계층과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타격을 최소화하도록 정부가 에너지 복지, 보조금 지원 등의 정책도 준비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전기요금에 대한 의사결정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의 책임을 두려워하고 정략적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권과 정부가 개입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통화량과 이자율처럼 전기요금도 독립적인 규제기구를 통해 정부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합리적이고 투명한 절차에 의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기구는 금융통화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과 같이 독립성 확보가 중요하다. 그래야 정권이 6번 이상 바뀌어도 탄소중립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일관된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전력 수요자와 전력 공급자를 매개하는 가격신호로서 전력가격과 전기요금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력가격 규제의 실효성을 살리고 에너지 전환을 실현하기 위해 합리적인 전력가격과 전기요금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연료비와 발전 비용만이 아니라 송배전 비용, 탄소배출과 환경오염의 사회적 비용, 배출권 거래 비용이나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정책비용 등을 적절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 주병기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 주병기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셜 코리아>의 편집·운영위원과 서울대 경제연구소 분배정의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미 캔자스대와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재직했으며 한국응용경제학회장, <Journal of Institutional and Theoretical Economics>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시경제학, 재정학, 정치경제 등이고 분배적 정의, 불평등과 소득분배, 공정한 경제기제 등의 주제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분배적 정의와 한국사회의 통합>,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시간>, <혁신의 시작>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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