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장관 "주69시간은 선동일뿐…내달초 노동개혁안 낼 것"

김기찬 2022. 12. 2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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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인터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미래연이 권고한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나 대체근로 등은 균형과 중립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다. 김성룡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손을 감싸 잡았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조건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법과 원칙 확립,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라며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윤 대통령은 15일 '국민과의 대화'에서는 "노동개혁을 못 하면 정치도, 경제도 망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윤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7월 꾸려진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이하 미래연)가 개혁 과제를 권고(12일)한 뒤 속도가 붙는 형국이다.

이 장관은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내년 3월 초 입법예고를 하고, 상반기 중에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추진 계획을 공개했다. "다음 달 중으로 미래연의 권고안을 토대로 정부 입장을 정리한 뒤 발표하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을 통해 2월 말까지 노사정 조율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거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도 밝혔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 여부와 관련해서는 "대통령의 입장도 상대를 부정하면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과는 협치도 되고, 사회적 대화도 하고 모든 걸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가 되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처럼 민주노총을 끌어들이려 목매지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민주노총을 배제하더라도 노동시장 개혁은 추진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노동계 인사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첫 직장이 한국노총이었다. 부처 장관 보좌관 등으로 외도를 하기도 했으나 다시 한국노총으로 돌아갔다. 김대중·김영삼 정부에서 노사개혁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노동개혁 협상가로 나서기도 했다. 지난 인사청문회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다른 부처 장관 후보자와 달리 그에게 유독 우호적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30년 노동 인사로 잔뼈가 굵은 그의 노동시장 개혁 의지는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불법과 타협하는 것은 약자에게 피해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불법 행위에 대한 대응이 어느 정부보다 강하다.
A : "해방 이후 지금까지 민주를 가장해서 남의 자유를 박탈하는 부류가 있다. 이게 노동시장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대충대충 불법과 타협하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결국 약자에게 피해로 돌아간다. 화물연대 사태 대응 과정도 큰 그림에서 보면 개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노사가 걸핏하면 '정부 나오라 또는 나서라'며 힘만 앞세우지 않는가. 자율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런다. 이건 법을 우습게 보는 거다. 불법으로 얻을 게 없다는 걸 확고하게 해야 한다."

Q : 장관도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노조(한국노총)에서 일했는데.
A : "힘이 세지면 그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의 와그너법이나 태프트하틀리법, 랜드럼그리핀법이 잇따라 제정된 이유가 뭐겠는가.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을 거치면서 노조의 힘이 세졌다. 그런데 그 이후 너무 막 나갔다. 그래서 노조의 부당노동행위(태프트하틀리법)를 제어하고, 그래도 안 되니 노동단체도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라며 회계 보고를 의무화(랜드럼그리핀법)한 것이다. 마치 지금 우리 노조의 막강한 힘과 다르지 않다. 미래연이 대체근로나 노조의 부당노동행위에 문제를 제기한 것도 그런 차원으로, 균형 잡혀 있다. 곧 관련 제도 정비에 나설 것이다."
노동시장 개혁을 속전속결로 진행하는 느낌이다.
A : "지체된 개혁이다. 근로기준법은 1953년 제정된 뒤 70년 넘게 갇혀있고, 노사관계는 87년 투쟁 체제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국가와 산업현장이 낡은 제도의 철창(iron cage)에 갇혔다. 이래서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나. 미래세대에 부강한 한국을 어떻게 물려줄 수 있겠는가. 예컨대 잔업(연장근로)을 주12시간으로 관리하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많은 월급을 받는 호봉제가 주류인 곳도 한국뿐이다. 이런 기형 구조를 산업이나 경제 구조에 맞게 현실 적합성을 갖도록 바꾸자는 것이다. 더 미룰 이유를 찾을 수 있는가. 언제까지 70년 전의 체계로 국가나 법이 시시콜콜 규제해야 하나. MZ세대는 현 직장에 모든 것을 바치려 하지 않는다.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졌고, 개인 취향과 선택도 다양해졌다. 회사나 정부가 획일적으로 개인의 삶을 규제하고 관리하는 게 아니라 자기 관리를 원한다. 자기 결정권이 지금 법체계에는 미비하다."

Q : 2015년 노동개혁 때도 그 문제로 장관이 직접 협상했지 않는가.
A : "당시에도 노동계는 고민이 많았다. 공장법이 안 맞다는 걸 다 인지하고 있었다. 대신 높아진 소득수준과 근로자 의식을 고려할 때 자율·자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공감했다. 그래서 당시 고려됐던 게 '개방조항'이었다. 노사가 합의할 경우 그걸 우선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이는 자율을 팽개치고 툭하면 법원으로 달려가는 사법 의존과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필요하다. 지금 노동시장 개혁도 그런 자율에 바탕을 두고 있다."

Q : 사법 리스크가 심각하다고 판단하나.
A : "사사건건 법원이 개입한다. 최근에는 스마트팩토리의 기본 중의 기본인 MES(생산관리시스템)를 두고 지휘감독 시스템이라며 불법파견으로 대법원이 판결했다. 스마트팩토리는 글로벌 기업 누구나 서두르고 있다. 이걸 어떻게 지휘감독 체계로 보는가. 파견을 중간착취 프레임으로 보는 것 같다. (MES 판결은) 사내 하도급에서 가장 큰 사법 리스크가 됐다. 사법화 경영으로 번지고 있는데, 이건 막아야 한다. 자치의 영역을 어떻게 법으로 다 규율하는가. 자율과 자치를 존중해주는 게 아니라 (산업현장) 전체를 흔들고 있다. 사회적으로 크게 공론화가 필요하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미래연의 근로시간제도 개편 권고안은 자율 선택의 폭을 넓히면서 근로시간은 줄이고, 그러면서 임금은 다 받는 시스템이어서 장시간 근로와는 정반대"라고 설명했다. 김성룡 기자

Q : 미래연의 권고안에 대해 노동계나 정치권 일각에선 개악이라고 한다.
A : "팩트를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만 해도 그렇다. 현재 주(週) 단위로만 관리하는 걸 연간으로 관리할 수 있게 확대하니까 장시간 노동을 조장한다고 얘기하는데, 거짓이다. 연간으로 관리한다고 치자. 어느 때에 많이 일하고, 적게 할 것인지 선택 메뉴가 늘어난다. 특히 연장근로시간 총량은 주 단위 관리 대비 70%만 허용한다. 근로시간을 활용할 자율성은 확대되고, 연장근로시간은 30%나 감축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임금은 안 줄어든다. 돈은 그대로 받고, 근로시간은 줄고, 선택권은 확대되는데 어떻게 장시간 노동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주69시간 근무 체제'라는 주장도 선동에 불과하다. 특정주에 69시간 하면 나머지 주에는 그만큼 연장근로가 줄어든다. 팩트로 확인하면 거짓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지하에서 바깥으로 끄집어내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Q : 개혁안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을 고려하면 사회적 대화가 잘 될지 걱정이다.
A : "끊임없이 사회적 대화를 시도해야 하고, 노력해야 하는 기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한데 민주노총에는 큰 기대를 안 한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이므로 논의가 될 것으로 본다.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1월 17일)가 끝나면 협의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고용부 업무보고인 1월 5일쯤 노동시장 개혁 관련 정부 입장을 정리해 낼 것이다. 이어 2월까지 이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고, 3월 초에는 정부 입법안을 낼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정기국회에 입법안을 제출할 수 있을 것이다. 설득하고 설명하면 국민 여론이나 조합원들이 판단할 것으로 본다. 팩트에 기반해서 서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책임 있는 노동운동이라면 국민 여망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Q : 야당의 반대도 만만찮아서 법 통과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A : "막무가내로 반대할 수는 없을 거라고 본다. 내용을 가지고 설득이 가능하다. 근로자에게 불리할 게 없는 내용이고, 삶의 패턴이 개별화하는 비스포크(bespoke) 시대에 국가 주도의 획일주의가 통할 리 없지 않은가. 노동자의 의식도 많이 높아졌다. 법도 잘 안다. 외면하기 힘들 것이다."

Q : 법안 통과가 지연되면 대안은 있는가.
A : "적극적으로 행정 해석을 해서 노동시장 개혁과 부합하면 허용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다. 부분 대표제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그중 하나다. 직종이나 부서 단위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자신들에게 맞는 임금체계나 근로시간 시스템을 선택해서 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허용하는 법원의 판례도 쌓여있다. 다만 행정해석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판례를 제도개선으로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해당사자들에게 콩 내놔라, 팥 내놔라 하는 게 말이 되는가. 노조 조직율 10% 정도로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가. 노조의 힘을 뺀다고 주장하는데, 어불성설이다. 갈수록 다양한 형태로 이해관계가 나타날 텐데, 그 의견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 고용부도 행정해석을 적극적으로 하겠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제도로 확립해나가야 할 것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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