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심각한 상황… 이대로면 에너지발 외환위기 올 수도”
코로나19로 피로가 누적된 한국 경제가 이번엔 에너지 위기라는 난관에 봉착했다. 한국전력은 올해에만 30조원대 적자가 예상된다. 이 상황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이다. 언젠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야할 돈이고, 이로인한 과도한 한전채 발행은 일반 기업들이 빌릴 돈까지 다 빨아들이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급격히 늘어난 에너지 수입 가격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장기간 무역적자 기록을 유발했다. 이 복합적인 신호들은 기업 파산과 서민 일자리 상실로 귀결될 공산이 높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지난 16일 서울 양재동 녹색건축센터에서 만난 이상훈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은 “에너지발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가장 손쉬운 것은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다. 그래야 한전 부담도, 무역적자도 끌어내릴 수 있다. 전기요금 인상도 필요하다. 국민부담이 커질 수 있지만 망설일 때가 아니라는 평가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 대해 ‘에너지 재난’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상승과 함께 ‘에너지 안보’ 문제가 급부상했다.
“2010년만 해도 다자주의가 자리를 잡고 강대국 간 갈등은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그러다보니 에너지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세계 각국 모두 약해져 있었다. 좋은 시절에 잠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 때 화석연료를 줄이자는 세계적 움직임으로 관련 투자가 줄다 보니 공급이 줄었다. 반면 수요는 크게 줄지 않았다. 앞으로도 인도나 아프리카 국가들은 화석연료를 계속 쓸 공산이 높다. 이 상황에서 전쟁으로 수급 문제까지 생겼다. 자유무역주의가 붕괴된 상황이다. 에너지 안보가 항상 불안한 시대로 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 상황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한전 적자가 3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연료비가 올랐는데도 적자를 보는 한전같은 대규모 전력 회사는 전 세계에 없다. 이렇게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이 어디 있겠나. 지금 무역수지 적자가 에너지 수입 때문에 생기는 거다. 추위가 끝나도 한국 경제에 한파가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한전에 이어 한국가스공사도 채권 발행한다고 한다. 에너지 때문에 기업의 유동성 위기를 걱정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에너지 펑펑 쓰면 한국 경제가 끝없는 침체로 갈 수 있다. 에너지발 외환위기가 올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라고 보며 에너지 재난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문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에너지 문제는 에너지 시장에서 풀어야 한다. 우선 절약해야 한다. 그러려면 비싼 에너지를 싸게 쓰는 상황이 없어야 한다. 에너지 효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덴마크가 이를 달성할 수 있었던 정책이 결국 요금 정책이다. 다행인 건 이번 정부 들어서 커다란 에너지 정책 변화가 비용을 요금에 반영하겠다는 기조다. 정부가 속도는 고민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 구조를 만들겠다는 건 확실하다. 비용을 요금에 반영하지 않으면 결국 세금으로 메우게 된다. 이건 고통 분담이 아니다. 값싼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사람이 유리한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기회에 독립적인 ‘비용→요금 반영’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요금 인상 외에는 국민들 사이에 절약하자는 분위기 형성이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한국은 에너지의 93% 이상을 수입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그 동안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너무 잘해왔다. 한국은 외국과 달리 가격 신호가 없다. 수입 에너지 가격이 급등해도 전기·가스 가격이 인상하지 않으니 수요를 줄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국민들의 에너지 절약 동참이 필요하다.”
-요금 올리면 국민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요즘처럼 사람들이 아파트에 사는 상황에서는 전기요금이 관리비에 통합돼 나온다. 그러다보니 소비자들 중 전기요금 얼마나 내는 지 아는 사람이 절반도 안 될 거 같다. 가정용 전기요금 올린다고 저항이 크지는 않을 수도 있다. 대신 취약계층은 에너지 바우처 등 복지 시스템 통해 보호해야 한다.”
-요금 올리면 산업 부문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기업이 자발적인 에너지 감축 통해 비용 절감하고 온실가스 줄이는 일거양득 효과 얻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과 함께 규제도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 낮추는 방안도 절실하다. 그러려면 재생에너지 늘려야 한다. 다만 속도 조절 얘기가 나온다.
“한국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땅이 넓은 미국에서 태양광·풍력 신규 설치한다고 시위하는 일이 없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은 공간적 잠재력이 적으니 쥐어짜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에너지원별’ ‘규모별’ ‘용도별’로 인센티브 규정을 둬 경쟁을 제한했다. 경쟁이 제한되니 가격은 안 떨어지고 투명성은 떨어졌다. 앞으로는 한국도 합리적인 경쟁을 통해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정해지는 구조가 돼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제도(RPS)를 단순화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는 재생에너지를 늘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제도 개선과 함께 기술 주도형 보급에 집중해야 한다. 영농형 태양광, 건물일체형 태양광(BIPB), 박막 태양 전지 등 혁신적 기술 중심으로 보급할 필요가 있다. 일론 머스크가 말한 ‘태양광 지붕(솔라 루프)’을 한국이 실현해야 한다. 혁신형 기술 개발은 해외 보급(수출)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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