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은 만큼 세금 낸다”… 70년 유지한 상속세 개편 ‘속도’ [스토리텔링경제]

박세환 2022. 12. 20.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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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100년 운영’ 독일 벤치마킹 추진
부자감세 논란에 세수 감소 우려


정부가 70년 넘게 유지된 상속세 체계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피상속인의 유산 총액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의 현행 상속세 제도를 개별 상속인이 받은 만큼 세금을 내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상속세 손질을 처음으로 공언한 이후 정부는 해외 출장 조사와 태스크포스(TF) 구성, 연구용역 발주 등 전방위적 사전 작업에 착수했다. 정부는 내년 중순쯤 상속세 개편안을 공개하고, 내년 7월 발표할 세법 개정안에 이를 포함시킬 계획이다.

다만 유산취득세 도입을 두고 부의 대물림을 확대하는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상속자들이 상속분을 위장 분할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상속세, 왜 바꾸려 하나


19일 기재부에 따르면 한국의 상속세는 1950년 상속세법이 만들어진 뒤 지금까지 유산세 체계로 운영돼 왔다. 유산세는 피상속인이 사망한 시점에 보유한 모든 과세 대상 재산을 합쳐 상속세율을 매긴다. 과세 대상 금액이 1억원 이하면 10%, 1억원 초과 5억원 이하면 20%, 5억원 초과 10억원 이하면 30%, 10억원 초과 30억원 이하면 40%, 30억원 초과면 50%의 누진세율이 적용된다.

현행 상속세 제도하에서는 아버지가 30억원을 3명의 자녀에게 상속할 경우 3명이 10억원씩 상속받아도 30억원에 대한 세금이 부과된다.

반면 유산취득세는 자녀별로 각각 10억원에 대해서만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상속세 공제한도(10억원)를 적용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유산취득세가 도입되면 누진세율 적용을 피할 수 있어 상속인이 실제로 받은 상속분보다 더 많은 세금 부담을 떠안는 경우도 줄어들 전망이다. 기재부는 납세자의 담세 능력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는 ‘응능부담(應能負擔)의 원칙’도 지켜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유산취득세 도입이 세계적 트렌드인 점을 강조하고 있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국 중 독일과 일본, 프랑스 등 20개국이 유산취득세를 적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미국·영국·덴마크 4개국만 유산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유산취득세가 도입되면 기업 활동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50%)은 OECD 국가 가운데 일본(55%) 다음으로 높아 재계를 중심으로 세제 손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과도한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 경영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상속세 개편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현행 상속세에 대해 “받는 사람이 실제로 받는 이익에 비해 과도한 세율을 적용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약 70년 만에 상속세 손질에 나선 것도 윤 대통령의 소신이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벤치마킹 위해 독일로 떠난 공무원들


정부는 유산취득세 전환을 앞두고 자료 조사를 벌이고 있다. 기재부 세제실 직원들은 최근 독일로 출장을 다녀왔다. 현재 유산취득세를 운영 중인 독일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다. 1925년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상속세 체계를 바꾼 독일은 100년 가까이 해당 제도를 이어오고 있다. 기재부 공무원들은 독일 세정당국으로부터 유산취득세 운영 노하우를 전수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독일뿐 아니라 우리와 세금 제도가 비슷한 일본의 사례도 참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기재부는 지난 9월 ‘상속세 유산취득 과세체계 도입을 위한 법제화 방안 연구’ 용역을 냈고, 법무법인 광장과 삼정회계법인이 공동 수행자로 선정됐다. 광장 등은 내년 5월까지 유산취득세 도입 관련 주요 이슈를 파악하고, 해외 법제를 분석해 상속세 법령개정안 용역결과를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지난 10월 ‘상속세 유산취득 과세체계 도입을 위한 전문가TF’가 구성돼 운영 중이다.

제도 악용·세수 감소 가능성 우려

유산취득세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상속규모가 큰 고자산가들이 큰 혜택을 보는 만큼 ‘부자 감세’ 제도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상속세 개편과 관련해 “극히 일부의 최상층이 부담하는 세금을 깎아주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법인세 인하를 부자 감세로 규정해 비판해 온 더불어민주당이 유산취득세 도입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조세 회피 우려도 제기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OECD 회원국들의 상속 관련 세제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유산취득세 체계에선 세 부담의 감경을 도모하기 위해 허위의 분할신고가 성행할 우려가 있고 적정한 세무집행이 곤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속인들의 상속액을 꼼꼼히 따져볼 만한 행정체계가 갖춰진 상태에서 유산취득세를 적용해야 세수에 구멍이 생기는 걸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 당시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도 2019년 ‘재정개혁보고서’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소득세를 바꾸려면 과표구간 및 공제 제도 변경과 세율 인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산취득세가 시행되면 유산세와 비교해 세수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누진세율 구간 등도 개편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세 부담이 줄어든다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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