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필수의료 붕괴, 의료비 인상은 해법 아니다
인천 가천대 길병원이 소아청소년과 병동을 폐쇄했다. 전공의가 없어서라고 한다. 내년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16.6%로 최저를 기록했다. 얼마 전에는 국내 최대 규모인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가 뇌출혈이 생겼는데도 수술할 의사가 없어 사망했다.
의료계는 필수의료 ‘수가’가 낮아 생기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수가는 의료행위의 가격으로, 환자 본인 부담과 건강보험 재정으로 의료기관에 지불된다. 이 가격이 낮아 ‘필수의료는 하면 할수록 적자’라는 것이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수가 2배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8일 정부도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수가 인상책을 발표했다. 필수의료 문제를 수가로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낮은 수가’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의사 적정소득을 얼마로 볼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2010년 동네 의원 순수익이 1억1450만원인데 ‘원장의사 인건비’가 1억2717만원이라서 1267만원 적자라고 주장했다. 한국 의사 수입은 노동자 평균의 5~6배다. 이는 외국 2~3배의 갑절이나 된다.
이국종 교수도 외상센터가 적자라는 아주대병원 측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 적이 있다. 외상센터가 골칫덩이 취급받은 이유는 적자여서가 아니라 돈벌이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른 부문은 과잉진료도 비급여도 많지만, 응급환자는 ‘일부러’ 만들어 낼 수도 없고 비급여도 적어 민간병원이 투자를 꺼린다. 실제 2009년 정부가 흉부외과 수가를 2배로 올려준 적이 있지만 전공의 지원은 늘지 않았다. 병원이 전문의를 추가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문의 일자리가 없으니 전공의가 지원할 리 없었다. 흉부외과 수가 인상은 환자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졌고 병원 수입은 늘었다. 하지만 병원이 고용을 늘리지 않아 흉부외과 의사들은 여전히 하루 12시간 넘게 일한다.
길병원 사태도 다르지 않다. 길병원은 2020년 368억원 흑자를 냈지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고용하지 않고 전공의에 의존하다 지원자가 없다며 문을 닫았다. 서울아산병원도 2020년 순이익이 280억원인데도 뇌수술 가능한 최소한의 전문의를 확보하지 않았다. 이들 병원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돼 가산수가 등 온갖 혜택을 받는데, 벌어들인 돈으로 필수인력 채용이 아니라 병상 증설에 혈안이다.
필수의료 붕괴의 진원은 민간의료기관이 전체의 95%를 차지하는 한국의 고질적 의료 시장화에 있다. 지역의료도 붕괴할 수밖에 없다. 인구가 적은 지역에 민간이 병원을 지을 리 없다. 전국 228개 지자체 중 응급·분만 취약지가 각각 100개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공공병원이 대부분인데 한국은 정반대다. 한국의 활동 의사 10만여명 중 3만명이 미용·성형에 종사한다. 많은 의사가 ‘수십명 소아 진료하느니 쌍꺼풀 수술 한 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을 내버려 둔 채 필수의료에 상업의료만큼 보상하라는 것은 환자 지갑만 더 열라는 소리다. 시장 실패를 시장으로 해결하려는 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뿐이다.
근본적 해결책은 공공의료를 살리는 것이다. OECD 나라들 대부분처럼 국가가 공공병원을 늘리고 의사도 양성해 필요한 곳에 배치해야 한다. 사람들의 기본적 생활조건에 해당하는 학교와 병원은 삶이 존재하는 모든 지역마다 있어야 하고, 교사도 의사도 공공적으로 양성하고 배치해야 한다. 그런데 학교와 달리 왜 병원과 의사는 시장에 내맡겨두나.
당장 아이를 치료할 의사가 모자라고 중환자를 돌볼 의사가 부족한 필수의료 붕괴 상황에 윤석열정부는 의료 민영화 추진에 여념이 없다. 의료로 돈 벌어 ‘성장동력’ 삼으라 하고, 건강보험 보장정책이 포퓰리즘이라며 부정한다. 공공병원은 필요 없다며 늘리지 않고, 민간병원 배불리는 수가 인상책만 내민다. 이런 정치가 필수의료 붕괴의 원인이다.
전진한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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