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칼럼] 사랑받을까, 무서워질까
부모나 회사의 부장·사장이건 리더 자리의 이들이라면 늘 겪는 고민이 있다. 베풀어주고 밑의 열 중 하나의 잘못을 짐짓 모른 척도 하며 감싸안아 이끌어갈까, 아니면 욕 좀 먹는 건 개의치 않고 자신의 힘과 권위에 모두 순종토록 해 무질서를 용납지 않을 것인가. 사랑받을까, 아니면 무서울 것인가쯤이겠다. 유독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유년기부터 겪어 온 우리 다수야 전자를 먼저 꼽을 수 있겠다. 그래서 일도 잘 풀리고 본인이 그럴 만큼의 덕성을 지닐 수 있다면야 말이다. 그러나 권력을 쟁취, 유지해야 하는 약육강식의 정치에서 그 정답을 헤아리기란 좀 어려워진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처음엔 사랑받는 지도자를 꿈꾼 듯했다. “경쟁은 끝났다. 모두 하나가 되자.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며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 당선 소감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취임 직후 “영수회담에서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만들겠다. 바른 길로 간다면 정부·여당의 성공을 먼저 두 팔 걷고 돕겠다”고 했다. 그러나 거기가 마지막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진영 갈라치기로 반반 쪼개진 나라다. 소득주도성장·탈원전·최저임금·부동산 정책 등 지난 5년의 구도를 뒤엎어야 하는 윤 대통령이 다수의 사랑을 받는 길을 택하기란 애초에 불가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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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모두 처음엔 사랑 꿈꾸다
강성 야당·노조 벽에 무서움으로
‘무서운 통치가 더 안전하다’지만
반복되는 무서움 늘 불운한 결말
」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더 이상 불법을 방치하진 않겠다.” 최근 민주노총의 파업과 민주당의 무한 정치 공세에 맞닥뜨린 윤 대통령은 아마도 단호하고 무서운 리더의 길을 택한 듯 보인다. 제1 야당과의 협치·대화도 이재명 대표를 최종 겨냥한 검찰의 대장동 수사와 여야의 날선 대치 속에 물 건너간 듯하다. ‘핵 공갈’의 김정은에겐 한층 결연해졌다. “처음부터 그리 하라 뽑아준 것 아니냐”는 보수진영의 환호에 윤 대통령 지지율은 30%대에서 서서이 올라가고 있다. 총선 주도권을 향한 기싸움이 거세질 내년부터 ‘강(强) 대 강(强)’이야 더욱 강해질 터다.
이 어려운 선택에 자신 넘친 정답을 낸 이는 마키아벨리였다. “사랑받을까, 두려워질까. 이 둘을 모두 결합하기는 어렵다. 둘 다가 될 수 없다면 통치자는 두렵게 여겨지는 게 사랑받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란다. “인간은 원래 은혜를 잘 모르며 변덕스럽고 위선적이라 위험을 멀리하고 제 이익만 탐하기 때문”이다. “잘 대해 주거나 위험이 멀리 있을 때야 당신의 사람이고 목숨까지 바칠 기세지만 당신이 위험에 처하면 모두들 등을 돌릴 것”이란 이유다. 그러니 “자신의 힘을 믿어야 하며 결단을 주저할수록 신중함은 악을 휘몰아 온다”고 했다(『군주론』). 뭐 독실한 신자 아니라면 그런 인간의 군상을 부인하기도 쉽지는 않다.
역대 대통령을 보자. 취임 초엔 다 사랑받길 소망했다. “지지하지 않은 모든 분도 제 국민으로 섬기겠다”(문재인), “정부와 국민이 서로 믿고 동반자의 길을 걸어가겠다”(박근혜),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이 따로 없다. 국민을 지성으로 섬기겠다”(이명박), “도약의 디딤돌은 통합, 저부터 야당과 대화·타협하겠다”(노무현). 그러나 야권, 반대 진영의 아수라장(또는 본인들의 실수로) 속에 좌절·분노하면서 무서움의 유혹은 찾아온다.
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박근혜 탄핵 수사를 시작으로 문 대통령은 5년 내내 대통령 2명, 비서실장·국정원장·장관 등 200명 이상을 구속했다. 폐족들의 멸문(滅門)을 묵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무적의 레이저 광선’이란 별명을 들었다. 통합진보당 해산, 전교조 법외노조화, 역사교과서 국정화, 개성공단 폐쇄 등 정치적 적에겐 관용이 없어졌다. 유승민·김무성 등 같은 편도 삐딱한 이들은 레이저를 맞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무회의에서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던 한 장관이 들은 단 한마디는 “그만하세요”였다. 밉보인 한 언론사는 여당의 집중 공세 속에 최고위 간부가 망신당하며 물러나야 했다. 인자한 겉보기와 달리 가장 무서웠던 대통령? 문재인이었다. 반대 진영의 제언엔 철벽을 쌓았다. 모든 공직을 자기편만 골라 쓰며 포용이란 단어 자체가 사라졌다. 하긴 검찰·경찰·국세청·공정위 등등. 남 잘되게 하긴 그래도 누굴 망가뜨리기에 대통령이란 그 수단이 너무 많다.
마키아벨리가 원래 무서워지라고 제안했던 대상은 혁명·암살만 없으면 임기가 영원한 군주들이다. 무서워도 그럭저럭 먹고살게만 해주면 자신의 안위가 크게 위험스럽진 않을 터다. 그러나 5년 단임 대통령이라면 다르다. 가장 무서웠던 전두환·박정희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모두 마지막이 불운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운은 또 어떨까.
마키아벨리가 자기 해답이 좀 과하다 싶었던지 사족을 붙여놓았다. “그러나 통치자는 사람들에게 단 한 번 해를 가해야지 이를 매일 반복해선 안 된다. 무서움의 강도(强度)란 건 계속 커져 가기 마련이다. 가혹함은 단 한 번 단호할 때만 제대로 쓰인 것이다.”
대통령도 자기의 길이 있을 터다. 자신보다 나라를 우선하는 원칙 위의 두려움이라면 택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이 늘 반복되는 두려움만은 아니기를 기대해 본다. 그 모든 것의 역사적 책임 역시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이다. 참 어렵긴 하다. 사랑이냐, 두려움이냐.
최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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