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소아청소년 진료 붕괴 막으려면
두 살 서연이와 엄마는 항암 치료와 수술을 위해 아빠와 떨어져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근처 원룸에서 사는 ‘항암 유랑민’이다. 이 가족이 사는 A지역의 대학병원에는 소아암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서연이가 밤에 열이 나면 아빠는 서울 방향 고속도로를 제한 속도로 내달려야 한다.
지금 전국 소아 응급실의 3분의 2는 밤에 문이 닫혀 있다. 소아암 환자와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숨을 쉬지 못하는 튼튼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는 두 살 서준이,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은 민서, 당뇨 혼수로 쓰러진 시우도 마찬가지다. 내년에는 응급 소아 환자에 대한 상시 진료가 가능한 병원의 수가 전국에 열 개도 안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2019년 이후 의대 전공의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면서 최근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의 대다수는 응급실과 입원환자 당직 진료의 일부를 교수들이 담당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내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의 지원율이 급기야 17% 밑으로 떨어졌다. 이제 더는 교수 투입만으로는 대학병원 진료를 유지할 수 없는 한계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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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아응급실 대다수 밤에 문닫아
해당 전문의 양성체제 서둘러야
저출산 예산도 과감히 투입해야
」
인천의 유명 대학병원이 소아 환자의 입원 진료를 중단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앞으로 소아외과와 소아신경외과 같은 어린이 환자 수술을 담당하는 다른 과 전문의의 지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대학병원이 몇 개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천성 기형이 있거나 암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더 잦아질 것이다.
대학병원의 소아 진료 인력 부족은 지방으로 갈수록 더 심각하다. 야간에 수도권 대형 병원 소아 응급실은 지방에서 밀려온 환자와 인근 대학병원에서 흡수하던 환자 수요까지 합쳐져 점점 더 북새통이 되고 있다. 당직 의사는 병실이 없어 다른 병원 자리를 알아보느라 경황이 없고 진료를 받지 못해 불만인 부모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의 미숙아 생존율과 소아암 완치율 등 중증 소아 치료 성적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소아 환자와 가족의 불안과 불편을 해소할 시설과 인력에 대한 진료 지원은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예컨대 유럽과 미국의 대형 어린이 병원 입원실과 신생아와 소아 전용 중환자실은 대부분 가족이 아픈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1인실 구조로 전환되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 어린이 병원은 다인실이 대부분이다.
복합 기형, 선천성 대사 질환, 소아 중환자를 담당하는 전문 의료인 부족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상황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생명과 직결된 소아 진료 분야는 환자가 소수라도 앞뒤 제쳐 놓고 일단 응급 소생술을 해놓고 봐야 한다.
소아 중증 의료 시스템 구축 및 지속성의 핵심 요인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지속해서 배출하는 것이다. 어린이를 좋아하고, 생명의 놀라운 회복력이라는 작은 기적을 경험하는 특권을 매일 누리길 원하는 젊은 의사들은 항상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들도 막상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지원하려는 순간 수련 과정이라는 현재와 전문가로서의 미래를 동료 의사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장차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일차 진료를 담당하는 개원의부터 입원 진료와 중증 희귀 질환 환자를 담당하는 종합병원 의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부심 넘치는 선택지가 될 수 있는 진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소아청소년과 학회와 의사들은 소아 진료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긴급 대책으로 입원과 진료 수가의 획기적 인상, 전공의의 수련 지원 및 장려책 시행, 고난도 중증 응급 질환의 전문의 중심 진료체계 전환, 필수 의료 지원 및 정책 전담 부서 신설 등을 정부에 제안해 왔다. 그러나 아직 정부의 움직임은 없고 소아청소년과의 맥박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지난 십 수년간 300조원 넘게 쏟아붓고도 출생률 급감을 막지 못한 저출산 대책 예산을 소아 진료 시스템 개선을 위한 소생술에 과감히 투입해야 한다. 튼튼이·민서·서준이·시우 같은 소중한 우리의 자녀와 조카, 그리고 손자·손녀에게 닥칠 수 있는 불행을 막기 위한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병섭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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