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포괄적 성교육
포괄적 성교육은 성에 대한 인지·감성·신체·사회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이다.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가이드’(2018)의 포괄적 성교육 커리큘럼에는 관계, 가치관·권리·문화·섹슈얼리티, 젠더의 이해, 폭력과 안전, 건강과 복지, 인체와 발달, 성적 행동, 건강한 성과 생식 등이 포함된다. 순결 교육이나 낙태 예방 교육처럼 성행위의 부정적 결과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건강하게 관계를 형성하는 삶의 기술과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관이다. 과학과 팩트에 기반을 둔 내용을 연령과 발달수준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는 국제적 합의이자 표준이기도 하다. 실제로 포괄적 성교육을 도입한 곳에서 성행위 시작 연령이 늦춰지고, 위험한 성적 행동이 줄어드는 등 성과가 나타났다.(유네스코, 2016)
한국에서는 이달 초 작고한 노옥희 울산광역시교육감이 지난해 국내 최초로 공교육 과정에 도입했다. 2020년 울산의 한 초등교사가 1학년 학생에게 속옷 빨래를 과제로 내고, 과제 인증 사진에 성희롱 댓글을 단 사건이 도입 계기가 됐다. 울산의 포괄적 성교육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노 교육감은 학부모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올해 재선에 성공했다.
최근엔 포괄적 성교육 커리큘럼이 반영된 책 『배정원 교수의 십 대를 위한 자존감 성교육』도 출간됐다. 사춘기 신체에 대한 변화나 임신·피임뿐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법, 이별하는 법, 성평등과 성소수자, 또래 압력이나 성폭력에 맞서 자신을 존중하는 법까지 두루 담겼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는 “제대로 된 성교육은 결국 인권·자존감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성에 대해 잘 알면 타인과 관계를 잘 맺으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국제적 흐름과는 반대로 갈 모양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는 최근 ‘성평등’과 ‘성소수자’ ‘섹슈얼리티’ 용어가 삭제된 ‘2022 개정 교육과정’ 심의본을 통과시켰다.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이 다른 소수자들을 배제한 셈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처럼 “내년부터 청년(18~25세) 콘돔 무료”라 선언하진 않더라도, 아이들이 제대로 된 성교육은 받도록 해주는 게 국가의 책무 아닐까.
이경희 이노베이션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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