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잘 마치고 내 집에 돌아왔구나, 환영한다” 하나님 품에 안긴 장로님

박용미 2022. 12. 19.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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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통합 원목협의회 병원선교 수기 (1)동행-천국가는 순례자
조선태 원목이 경북 칠곡 언더로뎀요양병원에서 환자에게 병동 세례를 베풀고 있다. 조선태 원목 제공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밤새 긴장된 상태로 있어서 잠을 푹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올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수화기 속 목소리는 박 장로님의 임종 소식을 알렸습니다.

며칠 전 아침 회진을 마친 주치의 원장님께서 장로님 상태가 안 좋다고 말했습니다. “혈압을 올리는 약을 좀 쓸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호자가 목사님이니까….” 원장님은 연세도 있는데 인위적으로 약을 쓰는 것보단 순리적으로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게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저에게 동의를 구하듯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원장님, 그렇게 합시다”라고 대답하고 중환자실에 계신 장로님을 심방하면서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장로님은 가족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장로님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병원비를 내야 하거나 물품을 갖다 드려야 할 때, 환자의 건강 상태와 병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병원에서는 원목실에 있는 저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장로님은 한센병 환자였습니다. 16~17세 때 한센병이 발병했다고 했습니다. 소록도에서 치료받고 생활하시다가 완쾌되셔서 대구 애락원에서 한동안 지내셨고 마지막으로 한센인 공동마을에 오셨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평안히 지내시던 어느 날 장로님이 갑자기 각혈하는 응급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결핵이었습니다. 다행히 치료를 잘 받아 결핵은 완치되었지만 예전처럼 혼자 계실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장로님을 도우시던 애락원 목사님께서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병원을 찾던 중 제가 사역하는 언더로뎀병원을 아시고 장로님을 이곳으로 입원시켰습니다.

장로님의 임종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해졌습니다. 그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함께 할까 하는 생각에 긴장과 안타까움이 더해만 갔습니다. 임종을 앞둔 순간, 저는 장로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님, 예수님의 보혈로 저의 죄를 용서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하늘나라의 백성입니다. 이 땅에서 수고의 시간이 끝나면 하나님이 두 팔 벌려 우리를 맞이하실 것입니다. 내 아들 수고했다, 이 땅의 삶의 시간을 잘 마치고 수고를 끝내고 내 집에 돌아왔구나, 환영한다, 하고 하나님이 저를 맞이하실 것입니다. 장로님, 이제 하나님 품에 안기십시오.”

장로님은 고개를 끄덕여 “아멘” 하셨습니다. 장로님의 얼굴을 보니 너무나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생명이 삶을 마감했습니다. 가족이 없어 누구도 함께 해 주지 못한 순간이었습니다.

입관 예배를 드렸습니다. 찬송하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장로님 생전에 장례를 대비하여 마련해 놓은 주민등록등본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확인서 1통을 가지고 행정부처에 신청해 대구명복공원에서 화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 안치실에서 구급차로 시신을 운구했고 저도 뒤따라 갔습니다. 장로님의 장례를 홀로 집례했습니다.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필요치 않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한 사람이면 족했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죽음으로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서게 되는 것임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늘나라는 혼자 가는 길이였습니다.

화장 후 장로님의 유골함을 품에 안고 나와 2시간 반을 운전해 공설납골당에 도착했습니다. 가족이 없는 유골함은 신발장처럼 5개씩 넣도록 칸막이로 되어 있었습니다. 부부 유골함이나 가족 유골함에는 사진도 있고 꽃도 붙어 있었지만, 무연고자 유골함에는 어떤 글씨도, 꽃도, 사진도 없었습니다. “장로님 잘 계십시오.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왔습니다.

나오는 길에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순간 어지럽고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인생이구나 싶었습니다. 이제 나는 남은 자로, 남겨진 자로 장로님의 삶의 흔적을 추억하기 위해 장로님이 사시던 집으로 운전대를 잡고 방향을 틀었습니다. 집 대문은 녹슨 채 철사 고리로 채워져 있었고 문패만 대문에 달려 있을 뿐이었습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마음이 너무 무겁고 힘들었습니다.

가족이 없는 장로님의 장례를 마치면서 아내에게 이 말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살아주어서 고맙습니다. 지금 이 시간을 같이 보내는 동반자가 됨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당신은 내게 귀하고 존귀합니다.” 저녁에 식탁 앞에 앉아 이 아내에게 말을 전했습니다. 그리고는 쓰러지듯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장로님을 천국으로 보내드렸습니다.(조성태 언더로뎀요양병원 원목)

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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