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고 두물머리에 가면 좋습니다 [중앙선 역사문화기행]
[최서우 기자]
금강산 내금강에서 시작해 화천, 춘천, 가평을 관통하는 북한강과 태백산에서 발원해 영월, 단양, 제천, 충주, 여주를 지나가는 남한강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양평 두물머리. 양수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강원도 정선에서 남한강을 거쳐 한양 마포나루로 가는 길목이었기에 주막들과 나룻배들로 가득했다.
양수대교와 신양수대교가 나룻배 기능을 이어받은 후, 두물머리는 생태관광의 중심지가 되었다. 두 물이 흘러오는 좌우의 산들이 어우러져 이제는 드라마와 광고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상인들을 위한 주막은 사라졌지만, 여름에는 연꽃, 겨울에는 억새풀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 오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카페들로 가득하다.
조선시대 교통의 요지에서 양평에서 대표하는 생태관광지로 탈바꿈한 두물머리로 지난달 26일 떠났다.
철 지난 세미원을 거닐며
두물머리는 경의중앙선 양수역에서 도보로 약 40분 정도 걸린다. 그래서 보통은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세미원에서 연꽃을 본 다음 배다리를 건너서 두물머리를 감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배다리를 부잔교로 교체하는 중이라 차량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상당히 많이 걸어야 한다.
서울에서 차로 출발하면 6번 국도를 타고 조안 나들목에서 내려 45번 북한강로를 잠시 따라 간 다음 양수대교를 건너자. 그리고 전통시장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두물머리로 갈 수 있다.
나는 먼저 연꽃 정원인 세미원으로 향했다. 사실 연꽃은 한여름인 7~8월이 최절정기인데, 지금은 이미 겨울에 접어들어 연꽃이 시들었다. 철이 지난 아쉬움이 있지만, 정원 자체가 워낙 설계가 잘 되어 있어서, 좋은 풍경들을 인적이 드물 때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
▲ 수수깡으로 이어붙인 듯 한 벤치와 장독대들. 여름에는 장독대 위로 분수가 솟아오른다 |
ⓒ 최서우 |
가장 먼저 눈에 띈 곳은 메마른 우리내 징검다리를 지나면 보이는 장독대 분수. 동절기라 분수대가 가동하지는 않지만, 중앙의 나무와 그 앞에 수수깡들을 이어 붙인 듯한 의자가 겨울의 누런 잔디와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선사해 준다.
▲ 페리기념연못. 시든 연꽃 뒤로 작은 석탑과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한여름이 되면, 미국의 저명한 연꽃 학자인 페리 슬로컴(Perry D. Slocum)이 손수 개발한 연꽃들을 볼 수 있다. |
ⓒ 최서우 |
이제 겨울잠에 들어간 백련과 홍련들이 있는 연못을 뒤로하면, 원형 구조물에서 시작하여 양쪽에 작은 소나무들이 도열을 이루는 빅토리아 연못과 그 뒤로 열대수련정원이 있다. 수련들도 올해는 역할을 다했지만, 용머리 모양의 당간과 청화백자들로 장식한 분수대가 눈에 띈다. 정원 뒤로는 김명희 갤러리 엄마의 정원이 전시되어 있는데, 어린 시절 우리들을 위해 고생하신 엄마의 모습들이 소조상으로 잘 담겨 있다.
▲ 열대수련정원과 김명희 갤러리 엄마의 정원. 겨울을 맞이하는 열대수련정원에는 청화백병과 용머리당간으로 장식한 분수대들로, 엄마의 정원은 어린시절 우리를 위해 고생한 엄마의 여러 모습들이 소조상으로 담겨 있다. |
ⓒ 최서우 |
겨울을 맞이하는 두물머리를 거닐며
아쉽게도 배다리가 수리 중이어서 세미원에서 바로 건널 수는 없었다. 대신 차로 빙 돌아서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수련과 연꽃으로 가득할 때는 수많은 인파로 두물머리로 들어가는 길이 지옥과도 다름없다고 하는데, 철이 지나서인지 쉽게 두물머리 가까이에 들어가 차를 댈 수가 있었다.
조용했던 세미원과 달리 두물머리에는 가족 단위로 나온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들어가자마자 가장 눈에 띈 것은 약 400년 된 느티나무. 가까이서 보니 좌우 작은 나무가 중앙의 큰 나무를 호위하는 형상이라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보인다. 이 나무의 이름은 '도당 할매'.
▲ 멀리서 바라본 두물머리 도당할매 느티나무. 한 때 황포돛배로 가득했던 모습을 느티나무는 기억하고 있다. 음력 9월 2일에는 양서면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도당제가 열린다. |
ⓒ 최서우 |
400년 느티나무 말고도 두물머리의 경치가 워낙 좋아 사진가들과 드라마 작가들이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한 줄로 나란히 서 있는 다섯 그루의 메타세쿼이아 그리고 남한강 새벽 물안개와 어울리는 나무가 있는데, 드라마 로맨스 신을 찍기 딱 좋은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가. 새벽 물안개와 어울리는 나무 뒤편으로 커다란 액자가 있는데, 두물머리의 풍경을 액자 안에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 두물머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액자에 담아 보자. 액자 왼편에는 한 줄로 나란히 서 있는 다섯 그루의 메타세콰이아 나무들이 보인다. |
ⓒ 최서우 |
▲ 옛 두물머리 나루터. 남한강 상류인 정선과 단양에서 마포나루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
ⓒ 최서우 |
조선 후기에는 상인들 뿐만 아니라 두물머리를 그림 폭에 담은 화가도 있었다.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독백탄>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면 중앙에 큰 섬이 보이는데, 팔당댐 건설로 이젠 얼마남지 않은 족자도다. 독백탄은 족자도 좌우를 지나는 여울을 말하는데, 팔당댐 건설 전 두물이 합쳐진 곳은 족자도 남쪽 끝이었던 것이다.
▲ 겸재 정선 <독백탄>그림을 새긴 동판과 조형물. 왼쪽에 산자락은 정약용 생가가 있는 오늘날 남양주시 조안면 일대다. 그 건너편으로 족자도가 있는데, 오늘날 일부만 남고 수몰되었다. 당시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진 곳은 족자도 남쪽 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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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진 액자에 두물머리 느티나무를 담았으면, 나루터에서 남서 방향으로 향하는 산책로로 계속 걸어가 보자. 끝까지 가면 옛 지도를 바닥에 새겨놓았는데, 보물 제1951호 해동지도에서 옛 광주부를 나타낸 것이다.
▲ 팔당댐 준공 이후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인 두물경. 두물경 표지석 아래 지도는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부를 그린 보물 제1951호 해동지도다. 표지석 앞 강 건너 족자도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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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길목이었기에 해방 직후에도 주막들과 돛배들로 가득했던 옛 두물머리 선착장. 1962년에 남양주와 양평을 잇는 양수대교가 개통되고, 10년 후 팔당댐 건설로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자, 돛배는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었다. 400년 느티나무 앞에 있는 돛배 장인이 만든 배가 옛 모습을 그나마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나루터 기능은 잃었지만, 두물머리는 연꽃으로 유명한 세미원과 함께 수도권 근교 생태관광지로 거듭났다. 7~8월 한여름에는 연꽃들이, 10월 가을에는 단풍이 맞아주기에, 이때만 되면 전국 각지에서 오는 인파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주변 카페들이 이제 옛 주막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한때 시끌벅적한 상인들과 짐꾼들로 가득했던 두물머리는 바쁜 일상으로 지친 사람들의 휴식처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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