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 딸의 하루 늦은 49재, 남몰래 훔친 아빠의 눈물

소중한 2022. 12. 1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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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미현씨] 아빠바라기 효녀, 엄마같은 누나, 자랑스런 친구를 떠나 보낸 날

[소중한 기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미현(25)씨의 49재가 지난 17일 경기도의 한 사찰에서 엄수됐다. 미현씨의 아버지 고용석(53)씨가 딸의 영정 앞에서 회한에 잠겨 있다.
ⓒ 소중한
아버지는 딸의 영정에 절을 올렸다. 갓 성인이 된 동생은 누나의 영정 아래 향을 피웠고, 동갑내기 20대들은 친구의 영정을 마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 이들의 일상에 자리 잡고 말았다.

고미현. 아빠바라기 효녀이자, 엄마 같은 누나였으며, 숨소리만으로도 행복을 전했던 친구. 이태원 압사 참사로 스물다섯 삶을 마감한 그의 49재는 '고미현'이라는 우주를 떠나보내는 날이었다.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의 한 사찰. 미현씨가 세상을 떠난 지 49일째인 이날 그의 가족·친지·친구들이 고인을 떠나보내는 의식인 49재를 위해 모였다.

아버지 고용석(53)씨는 전날 49재를 치른 다른 유족들보다 하루 늦은 날을 49재 날짜로 정했다. 미현씨의 사망 진단이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후 자정을 넘어 10월 30일 새벽 1시에 내려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비롯해 49재에 참석한 이들은 감로수를 따르고 절을 올리며 미현씨의 이승 마지막 여정을 함께했다. 딸의 영정에 절을 올린 아버지는 남몰래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의 두 마음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미현(25)씨의 49재가 지난 17일 경기도의 한 사찰에서 엄수됐다.
ⓒ 소중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미현(25)씨의 49재가 지난 17일 경기도의 한 사찰에서 엄수됐다. 미현씨의 아버지 고용석(53)씨가 합장을 한 채 딸의 명복을 빌고 있다.
ⓒ 소중한
미현씨는 아버지에게 두 번째 삶을 선물한 큰딸이었다. 3년 전 딸에게 골수이식을 받아 급성 백혈병을 떨쳐낼 수 있었던 아버지는 "지금이라도 딸의 죽음과 나의 죽음을 바꾸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젠 답장할 수 없는 딸의 마지막 편지를 아버지는 읽고 또 읽는다. 딸은 편지에서도 아버지의 건강 걱정뿐이었다. 49재 동안 두 손을 모은 채, 아버지는 빌고 또 빌었다.

"제가 휴대폰에 딸을 '보배'라고 저장해뒀거든요. 우리 보배는 분명 그곳에 가서도 예쁨 받는 귀한 사람이 될 거예요. 미현아, 좋은 데 가서 좋은 것만 누리고 살으렴. 여기서 미처 하지 못한 것 다 할 수 있길 기도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미현(25)씨의 49재가 지난 17일 경기도의 한 사찰에서 엄수됐다. 미현씨의 아버지 고용석(53)씨가 49재 중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소중한
 
딸을 보내줘야 한다는 마음, 그렇지 못하는 마음. 아버지는 자꾸 두 마음이 교차한다.

"49일이란 시간 동안 조금씩 일상을 찾아가곤 있는데요. 모르겠어요. 제가 괜찮아지고 있는 건지, 괜찮아지는 게 맞는 건지. 49재 치르면 이제 딸을 보내줘야 한다는데, 그래야 좋은 데 간다고 하는데... 그래야 하겠지만 어떻게 잊겠어요. 일을 하는 중에도 문득문득 딸이 찾아와요. 우리 딸, 제 마음 속엔 항상 살아 있겠죠."

49재가 끝난 후 미현씨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때론 잔잔한 회한이, 때론 소소한 웃음이 그들의 대화 사이에 깃들여 있었다.

"미현이는 진짜 E(외향형 MBTI)였지."
"미현이랑 찍은 인생네컷(즉석사진)을 찾으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네."
"내 카톡 프사(프로필 사진)는 다 미현이가 찍어준 거야. 프로필 사진이 없으면 꼭 불러내서 사진을 찍어줬었다니까."
"나도 잘 찾아보면 고등학교 때 수행평가로 미현이 노래 부르는 영상이 있을 거야. 그땐 미현이 놀리려고 찍은 거였는데."

친구들은 미현씨 가족에게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아버지는 친구 한 명, 한 명을 가리키며 "쟤는 식사 잘 챙기라고 이것저것 보내준 친구" "쟤는 지난주에, 쟤는 이번주에 밥 먹자고 찾아온 친구"라고 소개했다.

친구들은 곧 다가오는 미현씨 동생의 생일파티도 준비하고 있다. "OO아, 어떤 케이크 좋아해"라는 누나 친구들의 물음에 미현씨보다 6살 어린 동생은 쑥스러운 듯 답을 얼버무렸다. 49재 내내 엄숙했던 아버지와 동생의 얼굴에서 옅은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친구의 믿음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미현(25)씨의 49재가 지난 17일 경기도의 한 사찰에서 엄수됐다. 미현씨의 친구들이 영정 앞에 서서 친구의 명복을 빌고 있다.
ⓒ 소중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미현(25)씨의 49재가 지난 17일 경기도의 한 사찰에서 엄수됐다. 미현씨의 아버지와 동생이 조화에 적은 메시지.
ⓒ 소중한
미현씨의 절친 남보라(25)씨는 아직도 친구가 떠났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49일이란 시간이 지났다는 것 또한 믿기지 않는다. 그저 휴대폰에 녹음된 미현씨 목소리를 듣고, 또 들을 수밖에 없다.

"예전에 녹음해둔 미현이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미현이가 어딘가에 꼭 살아 있을 것만 같아요. 49재를 치르며 미현이가 좋은 곳으로 가길, 거기선 좋아하는 고기 많이 먹고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고 웃을 일만 가득하라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생에도 꼭 또 만나자고 기도했습니다. 사실 미현이가 꿈에 나와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줘서 이미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보라씨에게 '미현씨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보라씨는 미현씨를 "숨소리만 들어도 편한 친구" "같이 걷기만 해도 행복했던 친구"라고 떠올렸다.

"사랑하는 미현아.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지만 우선 제일 하고 싶은 말은... 보고 싶어 미현아. 내가 카톡 보낸 거 읽은 건지, 내가 바랐던 거 꿈에서 다 해줘서 고마워. 너를 다시 따뜻하게 안아볼 수 있어서 행복했어.

길다고 하면 긴 시간이었는데 너랑 못 해본 게 참 많더라. 같이 나이 먹으면서 하나하나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널 보내게 돼서 슬프고 아쉬움이 참 많이 남아. 아무 때나 전화하면 얘기 안 하고 그냥 숨소리만 들어도 편하고 좋았는데. 언제든 만나서 같이 걷기만 해도 행복했는데. 우리 같이 하기로 한 거 정말 많은데...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는 우리 말했던 것처럼 벽에 똥칠할 때까지 친구하면서 하나하나 다 해보자! 너랑 친구여서 너무너무 행복했고 자랑스러웠어. 여기 걱정은 말고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어! 나 믿지? 내가 잘할게!

보고 싶고 사랑해. 미현아 잘 있어! 그리고 종종 꿈에 놀러와 줘."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미현(25)씨의 49재가 지난 17일 경기도의 한 사찰에서 엄수됐다.
ⓒ 소중한
 
[관련 기사] 
골수이식까지 해준 '껌딱지' 딸 잃은 아버지의 울분 http://omn.kr/21rfl
딸의 빈방에 선 아버지 "대한민국 어디든 안전해야죠" http://omn.kr/21w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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