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은 니치 중의 니치 향수 브랜드 5_선배's 어드바이스 #148

박지우 2022. 12. 1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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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정신, 전문성, 향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춘 독립 퍼퓨머리 모음.zip
Pexels

언어에 따라 니치 또는 니시로 발음하는 ‘niche’는 ‘틈새’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보통 니치 향수라고 하면 전통적인 퍼퓨머리나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선보이던 주류 향수가 아닌, 조향사의 창의성과 전문성이 가득 담긴 강한 개성의 소수를 위한 향수를 의미한다.

문제는 특별한 것을 찾고자 하는 대중들의 욕망이 강해지다 보니, 기존의 니치 향수 브랜드가 오히려 주류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같은 향수를 뿌린 사람을 맞닥뜨리거나, 향 피라미드 전체를 베끼는 것도 모자라 이름마저 비슷하게 붙인 유사품까지 난무하게 되었다. 이에 국내 니치 향수업계는 팬데믹 기간에도 승승장구하며, 각 수입사나 유통업체 또한 니치 향수 전문 편집 매장을 통해서라도 더욱 특별한 브랜드를 유치하는 데 열을 올리는 중이다.

정작 시장은 작지만 희소한 향료를 다량 사용하는 바람에, 오늘날 ‘니치 향수=고가’라는 공식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점점 ‘지속 가능성’이 대두되며, 최근에는 합성 향료를 비롯해 공급이 원활한 천연 원료를 쓰는 경우도 많이 늘었다. 광고비와 용기에 드는 비용을 대폭 절감해 의외로 저렴한 제품까지 생겨났다. 이처럼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특별한 향의 세계, 그중에서도 니치 중의 니치 향수로 꼽히는 희소성 있는 브랜드를 소개한다.

「 에따 리브르 도랑쥬 Etat Libre d'Orange 」
에따 리브르 도랑쥬 인스타그램 @etatlibreorange
1902년에 사라진 남아프리카의 네덜란드인 자치 공화국의 이름에서 비롯된 브랜드명은 조향사 에티엔느 드 스워드가 태어난 지역이자, 그곳을 대표하던 자유, 자연, 독립성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2006년, 그는 모든 관습으로부터 탈피해 스스로와 모두에게 “오늘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묻는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얼터너티브’ 향수 컬렉션을 만들기로 결심한 뒤, 젊음으로 가득한 파리 마레 지구에 퍼퓨머리를 열었다. 용기 자체에는 비용을 들이지 않았지만, 다양한 원료와 어코드를 담아 창조한 30가지 이상의 향기에는 각각의 독특한 이름과 마치 시 한 편을 읽는 듯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KEY PRODUCT 헤르만 Hermann A Mes Cotes Me Paraissait Une Ombre

오 드 퍼퓸 30mL 9만 5천원, 50mL 15만 원, 100mL 21만 원.

빅토르 위고의 시에서 딴 이름은 그림자를 의미. 경험, 기억, 의미를 모두 담은 자신의 그림자를 형상화한 스파이시 우디 계열 남성 향수다. 블랙페퍼, 갈바넘, 블랙커런트가 상쾌하면서도 톡 쏘는 첫인상을 만들고 인센스, 흙냄새 나는 지오스민과 로즈 앱솔루트가 대지에 그려진 영혼의 투영이 떠오르게 한다. 베이스노트의 암브록산, 베티버, 패출리는 자연 속 동물인 인간을 표현한다.

「 엑스 니힐로 Ex Nihilo 」
엑스 니힐로 인스타그램 @exnihiloparis
라틴어로 ‘무(無)’를 뜻하는 니힐로(nihilo)에 ‘ex’가 붙어, ‘무로부터’라는 의미를 지닌 브랜드명 엑스 니힐로. 참조할 만한 과거조차 없이, 완전히 새로운 창조를 하겠다는 결심을 기반으로 세 명의 설립자가 2013년 파리에서 탄생시킨 브랜드이다. 마스터 조향사 12명은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으며, 마다가스카르산 바닐라와 같은 고가 향료 사용의 제약과 조향 금기에서 벗어난 ‘아방가르드’ 향을 창조했다. 파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향부터 용기까지 개별 맞춤을 거친 이니셜과 바빌론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으며, 뚜껑의 경우 원하는 보석으로 장식해 주얼리로도 활용 가능하다.

KEY PRODUCT 상탈 콜링 Santal Calling

오 드 퍼퓸 50mL 28만 원, 100mL 40만 원.

신비로운 샌달우드를 중심으로 현대 파리의 감성을 표현한 우디 플로럴 계열. 밀키 어코드 위에 아이리스와 장미가 피어오르면 캐시머란이 부드럽게 감싸 안고 샌달우드와 머스크, 마다가스카르 바닐라가 어우러진 베이스 노트가 깊고 따스하게 여운을 남긴다.

「 니콜라이 NICOLAÏ 」
니콜라이 인스타그램 @nicolai_perfume_kr
겔랑 가문 출신 첫 여성 조향사이자 프랑스 향수 박물관장 니콜라이 드 파트리샤가 패션산업의 일부가 되어버린 버린 향수업계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1989년 론칭한 창의적인 향수 브랜드로, 니치 향수의 1세대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 부근 파리 연구소에서 자체 생산한 원료 에센스를 루아르 계곡 자사 공방으로 옮겨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향수의 경우, 천연 성분 비율이 81.3~99.1%에 달한다. 향수에 쓰는 알코올 또한 프랑스산 비트를 발효해 얻고, 보존제와 인공 색소는 사용하지 않으며 단순한 용기는 재활용 유리와 지속 가능한 종이로 만든다. 대표 파트리샤는 지금까지도 경영을 맡은 아들과 함께 직접 조향하고 품질을 감독한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향이 주를 이룬다.

KEY PRODUCT 휘그 티 Fig-Tea

오 드 트왈렛 30mL 8만 4천 원, 100mL 19만 8천원.

이름처럼 무화과와 차가 떠오르는 달콤하고 향긋한 프루티 플로럴 계열로, 2000년 파트리샤가 창조한 이래 아시아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 왔다. 톱 노트는 오스맨터스, 무화과, 오렌지, 미들 노트는 재스민, 과일 향이 도는 다바나, 코리앤더라 기분 좋아지는 향이 이어지다가 마테, 과이악우드, 앰버가 가볍지만은 않게 마무리한다.

「 아무아쥬 Amouage 」
아무아쥬 인스타그램 @amouageofficial
과거 향료 무역의 중심지답게, 고가 천연 향료를 아낌없이 쓰는 것으로 잘 알려진 오만의 향수 브랜드. 오만 왕실이 타국 왕족에게 선물하는 향수기도 하다. 오리엔털 계열의 이국적이고 성숙한 이미지 향이 주류이며, 에센스 함량의 경우 오 드 퍼퓸은 24% 이상, 엑스트레는 40~50%대이다. 향유 그 자체인 아타르도 다양한 만큼, 단 한 방울만 써도 풍부한 발향을 자랑하며 지속시간 또한 월등히 높다. 스와로브스키 주얼리와 이탈리아산 유리 용기를 사용하며, 나무 상자 포장 또한 ‘프리미엄’을 강조한다. 같은 이름으로 여성용과 남성용이 함께 준비된 제품이 많아, 커플이 쓰기에 안성맞춤.

KEY PRODUCT 아너 Honour

100mL 40만 원.

오페라 〈나비 부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튜베로즈, 재스민, 가데니아, 은방울꽃 등 화이트 플로럴 향이 톱 노트와 미들 노트에 집중적으로 포진됐고 앰버, 유향, 백지향, 레더 등 깊이 있는 베이스 노트가 오래 지속된다.

「 골드필드 앤 뱅크스 Goldfeild & Banks 」
골드필드 앤 뱅크스 인스타그램 @goldfield_and_banks_australia
프랑스, 벨기에인 창립자 디미트리 웨버가 호주 여행 중 대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브랜드이다. 브랜드명 가운데 ‘뱅크스’는 호주 최초 식물학자이자 박물학자인 조셉 뱅크스로부터 따온 것이다. 호주산 씨, 나무, 꽃, 지의류, 수지, 잎, 과일 등에서 추출한 천연 에센스를 핵심으로, 프랑스에서 제조 과정을 거친다. 붉은 모래 사막, 푸른 숲, 찬란하게 빛나는 바다처럼 누구나 쉽게 떠올릴 만한 제품명과 자연스러운 향이 특징적이다. 성별과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는 향을 지향하기도. 간결한 외관과 달리, 전 제품이 에센스를 20% 이상 함유하고 있어 발향과 지속력이 굉장히 우수하다.

KEY PRODUCT 선셋 아워 Sunset Hour

퍼퓸 50mL 17만 2천 원, 100mL 24만 3천 원.

광활한 호주 서부 자연이 떠오르는데 파릇파릇한 느낌은 아닌, 풍부한 프루티, 우디 향을 스파이시 향이 강조하고, 머스크, 바닐라가 감싸 안는 해 질 녘 따스한 대지와 해안 같은 향. 호주산 샌달우드와 데저트 피치가 특징적으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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