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판 다윗과 골리앗', 역사적인 주식 전쟁의 전말
[김형욱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월스트리트에 한 방을> 포스터. |
ⓒ 넷플릭스 |
2020년 코로나19로 전 세계 주식시장이 크게 하락한 뒤 급반등한 후 너도나도 주식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코로나19에 대응하고자 기준금리를 크게 내린 후 사실상 제로금리 시대에 주식밖에 할 수 있는 투자가 없어서이기도 했을 텐데, 하여튼 주식으로 인생 역전했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코로나19가 오프라인은 박살냈지만 온라인엔 대박 기회를 심어줬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2021년 1월, 채 한 달도 안 되는 새에 미국의 어느 망해 가는 회사의 주가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치솟았다. 채 20달러도 안 되었던 주가가 350달러까지 오른 것이다. 그 이면에는 '개인 투자자 집단'과 '헤지펀드' 간의 긴박한 전쟁(?)이 있었다. 헤지펀드가 망해 가는 회사의 주식을 공매도해 큰 돈을 벌고자 했지만, 개인 투자자 집단이 알아채고 반격을 시도해 이겨 버렸다.
언론지상에서 '21세기판 다윗과 골리앗'이라고 일컬었던 역사적인 주식 전쟁의 전말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월스트리트에 한 방을: 게임스톱 사가>에서 감상할 수 있다. 승리자인 개인 투자자 집단의 배후에는 초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의 주식 토론 게시판 '월스트리트베츠'가 있었고, 패배자인 헤지펀드는 멜빈 캐피털 등이었으며, 전쟁터인 회사는 게임스톱이었다.
▲ 넷플릭스 <월스트리트에 한 방을: 게임스톱 사가>의 한 장면. |
ⓒ 넷플릭스 |
당시 회사 '게임스톱'의 상황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게임스톱은 미국의 오프라인 게임 소매점으로 한때 잘나갔다. 미국 전역에 체인점이 있었고, 수많은 이들이 게임 패키지를 사고자 방문했다. 하지만 어느새 게임을 다운로드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더군다나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시장 전체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넷플릭스가 부상하자 당대 최고의 비디오 대여점 블록버스터가 사라지고 말았던 것처럼 게임스톱도 오래가지 못 할 거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게임스톱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에 월스트리트베츠(아래 WSB)의 몇몇 빅마우스가 이의를 제기하며 주가가 올라갔지만, 일부 기관은 게임스톱이 곧 저물 거라는 데 배팅했다. 멜빈 캐피털 등 여러 헤지펀드가 공격적으로 공매도에 나섰다. 그동안 봤던 대로 게임스톱 주가는 계속 떨어질 테고, 그동안 했던 대로 공매도에 나선 헤지펀드는 계속 돈을 벌어들일 것이었다. 헤지펀드가 마음 먹고 출전했는데 그 앞을 막아설 이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WSB를 중심으로 모인 개인 투자자 집단이 그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방어해 나가는 데 성공했다. 헤지펀드의 파상공세를 나름 뭉친 개인 투자자들이 막아내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곧 공매도 압박이 있을 것이고 헤지펀드가 손해를 메꾸고자 주식을 사들일 거라는 관측들이 나오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더 몰렸다. 뭔가 큰 일이 있을 것 같은 모양새였다.
치솟는 '게임스톱' 주가의 이면
헤지펀드의 공매도에 맞서 게임스톱의 주가를 지킨 주요 인물이 몇몇 있다. 시작은 '망할딥밸류'라는 닉네임의 레디터다. 그는 게임스톱에 5만 달러 넘게 투자하곤 매달 업데이트했다. 하지만 큰 변동은 없었다. 그러던 2020년 8월, 미국 최대 애완동물용품 온라인 쇼핑몰 츄이 설립자이자 전 CEO '라이언 코언'이 게임스톱 주식을 대거 매수했다. 헤지펀드가 공매도를 그만두진 않았지만 많은 개인 투자자가 게임스톱에 관심을 갖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주가도 올랐고 말이다.
그리고, '로링 키티'라는 이름의 개인방송이 개인 투자자들로 하여금 게임스톱 주식을 매수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사실 그는 위에서 언급한 '망할딥밸류'와 동일 인물이었는데, 2020년 들어 꾸준히 생방송으로 게임스톱 주식 얘기를 했다. 애초에 워낙 개성 있고 또 믿을 만해서 많은 이의 존경을 받고 있기도 했다. 화산 폭발 직전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이제 결정적인 한 방만 있으면 터질 것이었다. 과연 누가, 언제, 어떻게 터뜨릴 것인지?
그는 다름 아닌 라이언 코언이었다. 그가 주식을 더 많이 매수해 이사회에 세 석을 얻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주가가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외의 곳에서 호재가 터졌는데, 멜빈 캐피털 등과 함께 게임스톱 공매도에 나섰던 시트론 리서치의 대표가 방송에 나와서 곧 게임스톱 주식이 곤두박질칠 거라고 호언장담한 것이다. 이에 개인 투자자들이 더더욱 많이 몰렸고 주식은 수직상승했다.
여기에 유명인들이 참전한다. 개인 투자자들의 친구(?) 억만장자 차마트 팔리하피티야, 페이스북의 아이디어를 최초로 떠올렸다고 알려진 캐머런 윙클보스, 그리고 당시 트위터 팔로우가 1억 2500만 명에 육박했던 현재 전 세계 최고 부자 일론 머스크까지 게임스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치솟는 게임스톱 주가를 말릴 이는 누구도 없어 보였다.
짧고 굵었던 '게임스톱 사가'
그때 석연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게임스톱 주식 거래의 중심지였던 온라인 주식 거래 플랫폼 '로빈후드'가 게임스톱 주식 매수를 막아 버린 것이다. 당연하게도 게임스톱 주식은 곤두박질친다. 청문회를 열어 의원들이 로빈후드 CEO에게 질문을 퍼부었지만 돌아온 건 투자자들을 보호하려 했다는 해명뿐이었다. 실상은 은행에 예치해 둔 돈이 다 떨어져서 로빈후드 자신을 보호하려 했는데 말이다.
짧고 굵었던 '게임스톱 사가'는 석연치 않게 막을 내리고 말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이 월스트리트에 크게 한 방 먹인 건 분명했다. 로빈후드가 꼬리를 내리고 매수를 막아 버리며 강제로 일단락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로빈후드의 배후엔 누군가가 있었으니, 바로 초대형 헤지펀드 '시타델 증권'이었다. 로빈후드 앱에서 주식을 거래할 때 수수료를 전혀 내지 않는데, 로빈후드가 시장조성자 시타델 증권에게 주문 정보를 팔아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진정한 배후였다.
21세기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손쉽게 역사에 남을 게임스톱 사가의 전말은 월스트리트뿐만 아니라 수많은 개인이 연루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헤지펀드라는 게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한 후 투자해 목표 수익 달성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펀드인 한편, 게임스톱 덕분에 로빈후드는 사상 최대 거래량을 보였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개인 투자자들이 모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 <월스트리트에 한 방을>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전통적인 자본주의 투자 체제를 비웃듯 온갖 '밈'의 향연이 펼쳐진다. 다분히 개미, 원숭이(개인 투자자)의 편인 것 같다. 시장과 월스트리트에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었던 게임스톱 사가를 신명나고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그렇다고 결코 장난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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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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