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 먹는 미역국 맛이 다 같을 수 없는 이유

이유미 2022. 12. 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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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이 낳고 먹은 미역국에 대한 특별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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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기자]

간밤에 둘째가 38.8도 열을 내며 아팠다. 아이가 열이 오르면 덜컥 겁부터나고 가슴이 쿵 내려 앉는다. 해열제를 먹여 재우고 수시로 물수건을 대줬다. 다행히 새벽 3시쯤 내 손에 닿은 이마가 미지근한 기운을 풍겨왔다.   

열과 사투를 벌여 이긴 둘째 덕에, 지금 나는 아침 7시에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 큰아이 생일이기 때문이다. 생일의 표상같은 이 미역국은 사실 생일이 아니라도 아이가 있는 집에선 자주 끓이는 국중 하나다. 워낙 많이 끓이다보니 인이 박혀 다른 음식은 늘 검색으로 레시피를 참고하지만 오직 미역국만은 너무도 흔한 나만의 방식으로 끓인다. 

전날 불려놓은 미역, 미리 해동해 둔 소고기. 졸린 눈을 비벼가며 참기름에 고기를 볶고 다진 마늘을 넣는다. 고기의 붉은빛이 사그라들면 미역을 넣고 볶는다. 그리고 다시마 불린 물을 넣는다. 이때 미역국이 끓기 전 액젓 한 스푼을 넣어준다. 

이 액젓이 감칠맛을 내는 포인트다. 그전엔 국간장 소금 정도만 넣었는데 언젠가 친한 지인이 "액젓을 한 스푼 넣어봐"라고 지나가듯 던진 한 마디가 미역국에 감칠맛을 불어넣어 주었다.
 
 생일이면 먹는 소고기미역국
ⓒ 이유미
 
참기름의 꼬순내가 부엌을 가득 메우고, 보글보글 끓여지는 미역국을 한참 바라보니 5년 전 오늘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콩꼬투리만한 생명이 내게 처음 찾아온 날, 나는 뛸듯이 기뻤고, 또 목놓아 울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소식을 엄마에게 전해줬을 때 수화기를 타고 내 귀에 흘러든 그 담담한 목소리 때문에.

"엄마 유방암이래, 괜찮아 엄마 이겨낼 수 있어. 내게 시련 하나 던져주고 너한테 좋은 소식을 주었나보다. 우리 딸 축하한다. 이제부터 네 몸 잘 돌보아라."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엄마의 슬픔을, 첫 아이의 임신 소식과 함께 접했던 것 같다. 엄마의 수술, 치료, 투병기간 동안 나는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한 번도 곁에 있어주질 못했다. 그 죄책감으로 마음이 저려왔지만 그 마음을 떨쳐버리려, 내게 온 생명을 온전히 길러 엄마에게 "세상에 가장 예쁜 것"을 선물하자고 다짐했다.

엄마에 대한 걱정으로 잠 못 이룰 때, 내 뱃속 그 작은 존재가 그것을 희미하게 만들어줄 때가 많았다. 그렇게 10개월을 뱃속에서 자라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첫 아이가 이 세상에 한 존재로서 점을 찍었다. 

딸의 출산 소식에 멀리서 한달음에 달려온,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수척한 얼굴을 한 엄마는 내게 "미역국은 먹었어?"라는 말로 축하 인사를 대신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끓여줄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프기 전까지 엄마는 생일날 내 미역국을 한 번도 빠짐없이 끓여주었다. 결혼 후엔 택배로 보내기까지 하는 수고로움까지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미역국을 떠올리면 혀끝에 반사신경이 달린 것처럼 그 맛을 생생히 느낀다.

출산 후 처음 맛 보았던 미역국 맛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여태껏 생일날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의 그 맛과 달랐다. 엄마라고 부르던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처음 먹는 미역국, 국을 한술 뜨며 무거운 책임감도 한 술 떠 넣는 것 같았다. 엄마라는 책임감으로 앞으로 먹게 될 미역국의 맛은, 철없던 딸로서 먹었던 미역국의 그 맛으로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것임을 그때 알았다.

그 후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인생 전반에 걸쳐 먹게 될 미역국을 한번에 몰아 먹은 것 같다. 미역국은 그 종류도 다양했다. 소고기 미역국에 길들여졌던 나는, 홍합,조개, 황태 등등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달 가량 그 다양한 미역국들이 로테이션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식탁에 차려졌다. 그때 내 몸을 타고 도는 것은 혈액이 아니라 미역국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나는 미역을 좋아해서 쉬이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으나, 남편은 그때 도우미님이 쉴새없이 끓여다 바치는 미역국에 질려 지금도 잘 먹지 않는다. 하지만 첫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모유를 통해 수많은 미역국을 간접적으로 맛봐서일까? 미역국을 끓여주면 밥 한 그릇 뚝딱하고 나를 향해 엄지손을 들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려 지금 나는 새벽녘부터 그 옛날의 엄마가 그러했듯 미역국을 끓이는 노동을 감수하고 있다.

보글보글 끓는 미역국이 구수한 내음과 함께 졸아든 물의 형상을 하고 내게 불을 끄라고 재촉해온다. 이런저런 생각 동안 한 시간에 걸쳐 미역국이 다 끓여졌다. 앞으로 미역국을 끓일 때마다 나는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될 것 같았다. 

생일이면 당연스레 끓이고 또 먹게 되는 미역국, 그 미역국 맛이 다 같을 수 없는 건 단순히 재료보다 미역국을 먹는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들이 다 달라서이지 않을까? 미역국에 액젓을 한 번 추가해 감칠맛이 나듯, 그 사연들이 미역국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 테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겐 미역국이 어떤 맛으로 다가올까? 그들이 느끼는 맛을 내가 온전히 알 순 없겠지만, 적어도 미역국을 먹는 순간만큼은 소중한 어떤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맛은 모두 달라도, 생일날 우리의 아침은 어쨌든 미역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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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미역국을 끓이며, 먹으며 저마다 떠올리는 추억하나쯤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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