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길 부산에서도 만화 포기하지 않은 소년들 [부산에書, 읽고 씁니다]

박정선 2022. 12. 1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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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소년 만화가 열전>을 읽고

[박정선 기자]

요즘 화제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한 번쯤 제목은 들어보셨을 바로 그 드라마, <재벌 집 막내아들>(재벌 총수 일가의 궂은일을 모두 처리하던 비서(송중기 분)가 총수 일가의 손에 죽어 그 집안 막내아들로 회귀한 뒤 인생 2회차를 사는 판타지 드라마)이 그 주인공인데요. 저도 요즘 금, 토, 일 저녁이면 시간 맞춰 드라마를 볼 만큼 푹 빠져 있답니다.

이 드라마는 동명의 만화(웹툰)가 더 유명하다는 사실, 많이들 아실 거로 생각해요. 뭐 만화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안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수출하면서 만화도 k-콘텐츠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요.

특히 부산에는 2017년부터 '부산 글로벌 웹툰센터'까지 만들고 부산 지역 작가를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해 오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런 부산의 만화 전성시대가 오게 된 것은, 2017년부터 있었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어쩌면 오늘날 만화 전성시대는 이미 그때부터 예견된 일이 아닐까 싶은 일이 부산에서 있었더라고요.

피란길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아갔던 청소년 만화가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요. 그 옛날, 전쟁(6·25전쟁)으로 혼란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앞으로 만화를 그리겠다며 다부진 결심을 하고 열심히 그 길을 걸어갔던 청소년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부산으로 피난와서 말이죠.
 
▲ 1951, 소년만화가열전 글 박기준, 안지혜, 그림 강설송
ⓒ 도서출판 해성
 
그들은 제가 오늘 소개할 책 <1951, 소년 만화가 열전>의 주인공들인데요. 책은 1951년, 그러니까 6·25전쟁이 일어난 직후, 부산으로 피난 온 청소년들이 만화를 계속해서 그렸던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만화의 기초가 된 과정을 (만화로) 보여줍니다.

신기하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전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난 왔지만 나는 여기서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만화를 그릴 거야'라고 당차게 말합니다. 나이도 열일곱, 여덟 정도밖에 안 된 학생들인데 말이죠. 어떻게 저 혼란스러운 시절에 어린 학생들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하고 또 그 길을 흔들림없이 걸어갈 수 있었는지, 참 대단하지 않나요?

이런 놀라움을 준 분으로는 우리가 잘 아는 만화가 고우영 화백(사진의 <만화 삼국지>를 그린 만화가)도 있었어요. 만주 출신 고우영 화백은 형들도 모두 만화가였는데 이들 고삼영(고일영, 고상영, 고우영) 형제는 형편 때문에 '대북 전단'용 만화 그리는 일을 업으로 하면서도, 집에서는 자기들이 그리고 싶은 만화를 계속 그려나가죠.
 
▲ 만화 삼국지 2005년, 나름 큰맘 먹고 사서 재미있게 봤던 추억의 만화. 그 당시 사진이라 화질이 떨어진다. 방대한 역사의 한 부분을 고우영 화백 덕분에 술술 읽을 수 있었다.
ⓒ 박정선
 
이런 분들이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만화를 계속 그려왔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 만화가 초석을 다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이 책의 작가 박기준(부산에서 피난할 때 처음 만화를 접하고 서울로 돌아가 <크로바 출판사>, 잡지 <여학생> 등을 경영하고 만화 학원, 만화과 교수를 거쳐 한국만화사를 전문적으로 연구 중)님이 말씀하시는데요. 얼마나 만화가 좋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싶고요,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지금까지 하고 계신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후배이며 이 책의 공동작가인 안지혜(글), 강설송(그림)님에게도 이어져 만화를 전공하고 만화 관련 일을 하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이 책을 출판하는데 그분들의 마음과 뜻도 하나로 모아진 것 같아요. 

아마도 이분들은 마음속에 온통,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좋아하는 만화를 좀 더발전시킬 수 있을지,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그리면 만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 그 생각만으로 가득할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첫걸음으로 한국 근대 만화사를 뒤돌아보고 정리하는 일을 하신 것 같고요.

전쟁 중에 뿌려진 씨앗, 오늘날 K-만화로 꽃 피어

피난지 부산에서 한국 근대 만화를 그린 분들은 그저 만화가 좋아서 그리셨겠지만, 이분들이 휴전 후 서울로 돌아가 한국 현대 만화의 중추 세력으로 자리 잡고 현대 만화를 일으키는 토양이 되었다고 하니, <재벌집 막내아들>을 키운 8할은 이분들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당시처럼 청소년들이 만화계를 이끈 것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희귀사례라고 하니 그 시절 소년 만화가로 활동하신 분들의 성함을 불러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한 분 한 분 적어 보게 되네요.

왜냐하면 서봉재, 신동우, 박현석, 고우영, 박기준, 서정철, 손의성, 토니장(장병욱), 김원빈, 오명천, 김학수, 이상열, 이덕송, 전상균, 김우영과 같은 분들이 계셔서 오늘날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흥미진진한 만화를 우리가 볼 수 있는 거니까요.

16부작 <재벌집 막내아들>은 지금 한창 클라이맥스로 가면서 (14회까지 방영) 최고 시청률 24.9%를 찍었어요. 내용이 흥미진진하다 보니 만화에서는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나 궁금해져 웹툰이라고는 거의 본 적 없던 저도 만화 <재벌집 막내아들>을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원작 웹툰을 본 사람들 대부분이 웹툰이 훨씬 재미있다고 하니, 저도 만화 <재벌집 막내아들> 때문에 오래간만에 만화를 몰아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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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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