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의 중요성, 발목이 부러져보니 알겠다

김연순 2022. 12. 19. 16: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휠체어 리프트는 모든 항공사에서 이용할 수 있어야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평생 처음 발목이 부러져보니 몰랐던 것도 너무나 많고 새롭게 알게된 것도 많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교통약자의 이동권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기자말>

[김연순 기자]

[이전 기사 : 훨체어생활 분투기... 비행기를 이용하면서 알게된 것들 http://omn.kr/21y32]

탑승 전에 공항 사정상 연결통로가 안 될 수 있다는 설명은 들었다. 그래도 휠체어 탄 사람을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 방법은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한 내가 잘못인 건가? 이 상황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승무원들은 내가 진짜 계단을 못 내려 가는지 연신 확인을 한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발목이 부러졌고 계단은 한 칸도 오르내릴 수 없는 상황이란 말을 들은 승무원들도 당황하기는 매한가지.

저가항공사는 휠체어 리프트가 없다는 걸 몰랐다. 탑승 전에 설명을 들은 바 없다. 왜 사전에 설명해주지 않았는지, 리프트가 없다면 도착지 공항에서 연결통로로 갈 수 있도록 연락했어야 하지 않나 승무원들에게 물었다. 시원한 답을 들을 순 없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기내로 청소노동자들이 들어왔다. 이제는 정말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며 땀도 나고 화도 났다. 승무원들이 제안해 결국 공항의 남자 직원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아 내려가기로 했다. 낯선 남자들의 어깨에 양팔을 걸치고 의지한 채 한 발로 콩콩 뜀을 뛰며 내려갔다.

중간중간 쉬었고 한 칸 한 칸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양쪽에서 나를 부축하는 두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몹시 미안하고 신경 쓰였다. 땅에 도착하자 비로소 안도감이 들었다. 연신 고맙다고 인사한 후 휠체어를 타고 셔틀버스로 갔다. 셔틀버스에는 경사로가 있어 무사히 공항청사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 항공사 셔틀버스 경사로 버튼을 누르면 경사로가 나왔다 접혀진다
ⓒ 김연순
 
낯선 남자 두 명에게 온몸을 의지한 채 신세를 진 경험, 만감이 교차했다. 너무 미안하고 민망하고 그리고 속상했다. 일상에서 우리는 누구나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산다. 나 역시 수시로 타인과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산다. 그러나 그렇게 무력감을 느끼며 일방적으로 신세지는 방식은 싫다. 내가 처한 상황에 맞게 도움을 받는 방법, 휠체어 리프트를 탄 채 이동하는 거다. 왜 교통약자들이 비행기를 탈 때 미리 휠체어 리프트가 가능한지를 매번 확인해야 하나?
국내선 비행기를 확인하니 시간대별로 저가항공사 운항이 훨씬 더 많다. 저가항공사에 휠체어 리프트 제도가 없다면 그건 교통약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일이다. 배제와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 휠체어 리프트는 모든 항공사에 있어야 있어야 한다.
 
▲ 휠체어 리프트 휠체어를 싣는 리프트. 내가 탔을 때는 휠체어가 3대가 함께 탔다. 직원이 함께 하며 고정장치가 있어 안전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저가항공사는 휠체어 리프트가 없는지 몰랐다.
ⓒ 김연순
 
집에서 지내는 동안 휠체어가 필요했고 아들에게 주민센터나 복지관에 휠체어 대여가 가능한 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주민센터와 장애인복지관은 모두 대여되었고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은 가능하대서 빌려왔단다. 이때부터 이 휠체어가 내 생활의 기반이 되었다. 집안에서는 물론 병원을 가거나 외식을 하거나 가끔 산책을 할 때도 휠체어는 필수였다.
한두 달 필요한 거라 굳이 사지 않고 공공의 기관에서 빌릴 수 있다는 건 내가 내는 세금의 유용성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다. 전에 없던 제도이고 '권리중심 복지'의 확대이다. 휠체어 대여는 전국의 모든 지자체 주민센터나 복지관에서 가능하면 좋겠다. 제도화 될 필요가 있다.
 
▲ 휠체어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에서 대여해 이용 중이다.
ⓒ 김연순
 
집 밖으로 나가니 온통 위험 투성이다. 평지로 보였던 보도블럭은 튀어나오거나 꺼진 곳이 많았다. 그때마다 휠체어는 툭툭 걸렸고 진동이 클수록 통증도 컸다. 지면에서 건물까지 입구에 경사로가 없는 곳은 아예 입장 불가다. 경사로가 있어도 기울기가 큰 곳은 위험했다. 달랑 한두 개의 계단도 나에게는 출입통제와 같다.

집 근처 식당도 엘리베이터 없는 2,3층 건물이 많아 1층을 찾아야만 했고, 카페도 1층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경치 보며 커피 마시는 거 좋아하는데,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 보며 커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먹고 싶은 것 혹은 경치 좋은 곳 보다는 그저 1층어야만 했다. 완만한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텐데 말이다.

내내 집에만 있기 답답하면 종종 동네 원당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휠체어는 나무데크 길이 가장 안전하고 편안했다. 반듯한 보도블럭 지날 때면 안심이 되었지만 아스팔트라 해도 울퉁불퉁하다면 조마조마했다. 평탄한 길로 보이는 야자수매트 길은 의외의 복병이었다. 휠체어에 최악이었고 온몸에 힘을 실어야 간신히 밀 수 있었다. 창포원 드넓은 공간에는 야자수매트 길이 많았는데, 이날 남편은 돌아오자마자 뻗었다.
 
▲ 창포원 나무테크 길 나무데크 길은 휠체어 이용에 최적이다.
ⓒ 김연순
 
건물을 드나들 때 자동문은 편안하지만 손잡이를 밀어야 하는 경우 혼자서는 힘들다. 힘껏 밀어도 조금 밖에 안 열리고 금세 닫혀 버린다. 누군가 와서 문을 열어주고 내가 나갈 때까지 잡아 주어야만 한다. 나는 혼자서도 하고 싶은데 그건 자동문이어야만 가능했다.

휠체어로 생활하는 동안 지인들이 수시로 찾아와 도움을 주었다. 온갖 나물 반찬에 각종 조림에 김치까지. 심지어 어떤 친구는 파스타까지 만들어 왔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할 거라고 휠체어 밀며 동네 산책도 시켜주었다. 정기적으로 병원도 데려가 주었다. 평일엔 학교 갈 때 빼고는 거의 집에 있는 작은 아들이, 밤과 주말엔 남편이 고생을 많이 했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고마웠다.

일정상 제주에 머물러야 했을 때도 지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찌 견뎠을까 싶다. 소소한 집 정리는커녕 혼자서 밥을 차려 먹기도 어려웠다. 지인들은 푸짐하게 잔뜩 싸들고 와서 음식을 만들어 주었고 청소도 빨래도 해주었다. 차를 태워 오가며 바닷바람도 쐬게 해주고 귤밭의 귤향기도 맡게 해주었다. 마음 깊이 고마웠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받은 도움은 특히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7주간의 깁스 생활 마치고 지금은 물리치료 받으며 목발 짚고 걷는 연습 중이다. 평소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갖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막상 교통약자가 되어 보니 몰랐던 것, 전에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누구나 살면서 장애를 겪을 수 있다. 나이가 들어 언젠가는 누구나 장애를 겪는다. 휠체어 리프트는 모든 항공사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 되어야 한다. 휠체어 대여 역시 전국의 모든 지자체에서 쉽게 이용 가능해야 한다.

전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기니 나 같은 교통약자 상태의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 덕에 나도 그 혜택을 누린다. 장애인을 위한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두 번에 걸친 글을 마무리 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